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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되지 않습니다. 사랑할 뿐이고…", 시카고 성정하상바오로성당 차호찬 시메온 신부

그를 생각하면 베스트셀러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이 떠오른다. 이탈리아 한 시골마을, 돈 까밀로 신부와 예수, 읍장 뻬뽀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람 사는 이야기로 종교에 관계없이 독자들의 마음이 따뜻해진다.

2008년 1월 22일 시카고 정하상바오로성당에 30대 후반의 젊은 신부님이 부임했다. 그리고 2월, 인터뷰를 위해 사제관을 찾아 한국인 천년 웃음, 하회탈 웃음을 지으며 기자를 반겨준 차호찬 시메온 신부를 만났다. 그리곤 4년이훌쩍 지나갔고 이달 말로 다시 인천교구로 돌아간다. 차 신부 부임 이후 내·외적으로 본당이 부쩍 성장했다. 시카고에서는 누구나 차호찬 신부를 안다.

“외형적인 것 많지만 제가 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있을 때 일어났을 뿐입니다. 제가 했다고 말하기에는 어패가 있고 운이 있었습니다. 협력자로 봉사하는 좋은 사람 많이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가 이달 말로 임기를 끝내고 다시 인천교구로 이임한다. 20일, 새해 들어 시카고에 두 번째 폭설이 내렸다. 아침미사 후, 여전히 100만달러짜리 행복한 웃음을 짓는 차호찬 시메온 신부를 사제관에서 만났다. 얼굴의 웃음 근육도 많이 웃어 본 사람만이 생긴다고 한다.

차호찬
직업: 목축업
하는 일: 양치기
주소: 시카고 성정하상바오로성당


주일·아침 미사 포함 주 7일 미사 집전, 첫 성체거동 거행, 4개 성당 합동미사 제개, 종합문화학교·노인·음악학교 설립, 30대 중심의 새사랑회 부활, 테니스·골프·배드민턴·마라톤 등 동호회 활성화… 시카고 성정하상바오로성당(이하 성정하상 성당)이 지난 4년 동안 눈에 띄게 부쩍 젊어졌다.

한인 이민 1세들의 노령화로 천주교를 비롯해 시카고 교계가 전반전으로 고령화로 접어든 반면, 성정하상 성당은 차호찬 신부 부임 이후 주일 미사에는 늘 50대 이상 장년층과 30~40대 신자들이 본당 의자를 꽉 메운다. 미사 후 본당 입구에 서서 활짝 웃는 모습으로 두 손을 활짝 벌린 채 모든 신자들을 꼭 안아주며 “사랑할 뿐이고”라고 말하는 차호찬 신부를 20일, 아침 미사 후 만났다. -17°C, 반팔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사람은 믿지 마세요. 꼭 믿어야 될 것에 대해서 믿으십시오
사람 안에서 보여지는 것들이 기만적인 것이거나 타협하지 못한다면 미성숙한 것


▶벌써 4년이 됐습니다. 처음과 지금, 바뀐 4년을 정리해 주세요 ?

-2008년 1월 22일 왔습니다. 왔을 때 떠날 때 확연히 틀립니다. 이민자, 동포들이라는 이름이 낯선 곳에 대한 부담감, 영어에 대한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 보다는 같은 사람끼리 희망을 주고 격려해 주는 모습이 제일 어려웠습니다. 너무나 좁은 사회, 한정된 범위에서 살다보니 사람들이 여러 욕구라든지 그런 것이 잘 분출되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인상이었습니다. 개인 생각으로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억세지고 그렇게 살아야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를 보여줘야 된다는 중압감이 은연 중 베어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은 살면서 적응이 됐습니다. 어떤 게 같이 살아야 되는지에 대해서 더 많이 가까워졌습니다. 그들과 함께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신부님과 신자들 사이의 벽을 허무는 등 긍정·부정적 평가가 함께합니다.

-궂이 이런 말을 인용하기는 그렇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구냐’라는 말이 있듯이 뭔가를 할 때 순수 100%는 없는 것 같습니다. 20%가 결정을 짓는 다는 이론은 있을 수 있지만 그런거 말고 무언가 할 때는 각각 생각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방법들이 충돌적인 것인가 아니면 조금 더 잘해보려는 가능성을 보고 노력하는 것인가가 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게 부족하니까 사실 사람들로 하여금 내 뜻, 다른 뜻 분쟁을 일으킨다고 할까요. 별거 아닌 것에 갈라지고 상처받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언젠가는 그 뜻을 알고 사용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면…. 모든 것은 지금이 아니고 앞으로 멀리 바라보는 그런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성당에 돌아온 신자가 있는 반면 떠난 신자도 있습니다.

-얼마 전 강론에서 이곳이 ‘시카고답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람이 많이 불어 윈드 시티, 겨울에는 혹독한 추위와 눈 그리고 반년 가까운 겨울이 있어야 ‘시카고답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게 결코 좋은 얘기는 아닙니다. 살기는 힘들지만 그게 없다면 누가 여길 시카고로 부르겠습니까.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나쁜 것 어려운 것 다 받아들일 때 그럴 때 ‘뭐뭐 답다’라는 이야기를 정말로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인답다’ ‘아버지답다’ ‘뭐 답다’할 때 그걸 적용 시키면 크게 문제될 게 없습니다. 갈라져 나간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고 떨어져 나간 사람위해 항상 기도합니다.

제가 뭐 잘못이 없다는 것 아닙니다. 누구나 인간의 한계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나랑 다르다고 그러면…. 그 사람은 나랑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개인의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한다면…. 배우자, 자식 그리고 아무관계 없는 생물도 마음에 안들 때가 있습니다. 누가 다 맞추고 살겠습니까. 절대 ‘뭐뭐 답게’ 산다는 것 깊이 있게 생각해 본다면 나머지는 문제없을 것 입니다. 내 것을 소중하게 알고 있는 사람만이 이 가치를 알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직장. 능력이 있더라도 그 사람 안에서 보여지는 것들이 기만적인 것이거나 타협하지 못한다면 미성숙한 것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다는 것 그 자체는 중요한 명제이지만, 자기가 싫어서 나가는 것 안타깝고 기억은 하지만 그 기억 속에 점점 멀어진다는 것 답답한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외향적인 것에서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올바른 것, 그것도 신앙으로 자리 잡혀 있으면 문제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번은 좋았다 싫었다 계속 그럴 텐데….

▶종교인으로 신자가 갖춰야 할 것은?

말씀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사실은 어떤 행동, 거룩해 보이는 행동, 남들이 봐왔던 습관에 빠지지 말고, 실지로 내가 어떻게 무장돼 있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그때는 알맹이가 점점 빠져나가는 껍데기만 있는 옷 만 걸쳐입고 온, 안에는 없는 투병인간이 된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 말씀이 살아있고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살고 있다면 왜 저 사람이 저럴까라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아니라 누가와도 ‘이 사람은 우리를 위해 있는 것이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한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 입니다. 어는 신부님이 강론에 신부의 직업란 쓰는 곳에 신부는 직업이 아니라 직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목축업이라고 썼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그런면 무엇을 기르는가 물어봐 양을 기른다고 신부님이 대답했습니다. 양을 얼마나 기르는가 물어봤더니 200마리 기른다고 대답했더니 물어본 사람이 대관령에서 왔습니까라고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런 자기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목자가 양들을 돌보는 구도는 예수님께서 주셨던 사명입니다. 그런 일들을 살짝 되짚어 보며 ‘그렇구나.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의 자녀입니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 입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고 뭔가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면 특별히 벗어나는 일은 줄어들 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신부님과의 관계는요?

-신앙인들이 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너무 큰 기대치를 갖지 않은 연습이 중요합니다. 신앙을 떠나서라도 사람에 대한 것들에 대해 변명거리를 만들어 주지 않는 것이 큰 배려인 것 같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이 너무 크면 당신이 그것을 못해줬을 경우 내가 가지게 되는 것 또는 상대방이 가지게 될 무게를 못 버팁니다. 어떻게 버티나, 여기서 벗어나고 싶고 속상해 집니다.

같이 있고 싶다는 느낌. 지금부터라도 같이 사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다음에 오는 신부님이 어떻다가 아니라 누가오더라도 우리는 같은 일을 해나가고 함께 기쁜 일을 해 나가는 연습만 된다면 아무 일 없을 것입니다. 행복해 질 것입니다. 사람들 관계에 있어 편협하고 제한적인, 우리 끼리만의 것이라면 고인물이 됩니다. 이 종교 저 종교 다 좋다가 아니라 모두가 다 똑같은 존재 안에서 서로의 존중감이 있다면, 마음이라도 편했으면…. 앞으로도 고민 해 봐야 합니다.

▶사제가 되신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제 인생에 어머니가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어떤 게 좋은 지 이정표는 어머니의 도움이 컸습니다. 어머니께서 적극적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천주교 신자였고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구교 집안은 아닙니다. 당시 시카고에 계셨던 정윤화 신부, 강근신 신부가 한국에 있을 때 본당 신부의 보좌신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첫 본당 생활하면서 신부님들과의 첫 만남, 재미있었던 경험이었습니다. 영향력있게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살아봐야겠다고, 초등 2~3년 잘 모를 때지만 저렇게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생각습니다. 누나와 4형제가 있습니다. 둘째 형님이 신부님이 되셨습니다 .그때도 어머님은 적극 권하셨습니다.

▶신부가 된 것을 후회한 적 있으세요.

어떤 일이든 쉬운 일은 없습니다. 쉽지 않은 선택 중에 이 길을 걸어온 것은 은총인 것 같습니다.

▶은총이란 무엇입니까.

주어져서라기보다 내 안에서 충만하게 채워지는 느낌들. 아 이런 거구나 하고 어떤 것들을 일상적인 생활 안에서 내 이 가치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이 모두 은총입니다. 깨닫는 그 순간, 아 이거였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바로 은총입니다. 신자와 신부 모두 받는 은총은 같습니다. 각자의 시각, 생각, 경험들이 반영을 주는 것 같습니다. 결국은 같은 것을 줘도 어떤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 가 있습니다. 언제든지 제일 좋은 상황은 자기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똑 같은 것도 자기 약이 있습니다.

▶신자 중에 사제의 길을 간다면요.

-적극적으로 추천해 주고 싶습니다. 프랑스적, 독일적 사고방식 등 현대는 예전의 인문사회과학이 많이 줄었습니다. 인문과학적 마인드가 게임 위주로,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구별이 안됩니다. 더 잔인해지는 것들은 내 안에 기능적 기계적인 것들은 만들어 놨지만 있는 인문적인 것들과 소양적인 것들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참고 인내하는 것은 표면에만 걸쳐있는 표어일 뿐이지 실제로 생활 속에서는 배어 있지 못합니다. 생활하면서 필요로 하는 것을 심어 줄 수 있다면 모든 삶이 쉽지는 않지만 한 번 왔다가 가는 삶 이런 생활도, 봉사하는 삶 사는 것, 기쁨을 추구하는 삶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신부님이라는 것은요.

-신부는 주교님이라고 불리는 그분들의 역할을 대신해주는 목자입니다. 예수님이 뭔가를 하려고 할 때 늘 제자를 뒀다. 그것은 왕초노릇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뭔가 가르치는, 같이 하느님 나라를 위해 노력하자는 뜻입니다. 교리 상, 성경에 나와 있듯이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실 때 베드로에게 수임권을 맡기셨습니다. 그것을 교황이 있었고 그 안에서 품계에 의해 주교님이 정해집니다.

그런데 주교님은 제한 적이고 많은 사람이 필요로 합니다. 지상 과제를 위해 그분들로 하여금 협력자의 역할을 하는 분이 사제입니다. 직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제는 뭐라고 하는 것, 남들이 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내가 아니라 주교님으로부터 파견 받고 와서 어디든 주교님의 역할을 가르치고 수행하는 보편적인 직무, 사제직을 하는 것이 사제의 역할입니다.

▶좋아하는 성경구절은요.

-서품 받을 때 선택한 요한복음 13장 34절(요즘은 기억이 확실치 않아서 맞나…. 웃음) ‘서로 사랑하여라’가 있습니다. 사랑의 깊이는 내 사랑이 아니라 그분이 했던 사랑, 내가 그분으로부터 받았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 아는 사람만이 줄 수 있습니다. 받아본 사람만이 줄 수 있습니다.

누구든 실수 할 수도, 잘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결점은 있지만 그 결점까지 뽑아 쓰시는 분이 참사랑의 주인이시라면 우리도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당연한 것입니다. 어려운 과제입니다. 어쩔 수 없이 그분에게 나가는 삶입니다. 기도도, 말씀도 필요합니다. 그것 이상의 방법은 아닙니다.

▶아쉬움이 남는다면요.

-늘 아쉽습니다. 신자가 늘었다 등 외형적인 것 많지만 내가 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있을 때 일어났을 뿐입니다. 내가 했다고 말하기에는 어패가 있습니다. 운이 있었습니다. 좋은 사람 많이 만났습니다. 협력자 중에…. 아쉬운 것은 시간이 짭다는 것입니다.

더 노력할 만 한 것이 있었습니다. 보편적인 것입니다. 쉰들러 리트스에서 주인공 쉰들러가 많을 사람을 구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일을 못했다는 것이 죄책감을 느끼는 것처럼 아쉬움은 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해 본 사람이 가치를 아는 것 분명합니다. 아쉬움은 누구나 있습니다.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내가 노력했다면…. 보편적인 아쉬움 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삶처럼 마음속에 간직하고 지켜보는 것이 필요할 때 입니다.

처음에 하는 것 낯설고 받아들이기 힘들어 합니다. 보수와 변화를 못 받아들이는 것 다릅니다. 왜 그런 것 만드는 지가 아니라 왜하는지 우리 다음에 누구에게 혜택이 갈 수 있다면 내 것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가치입니다.

거의 완공된 십자가의 길(본당 뒤 야외 성지 순례 길)이 누구에게나 개방되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노약자를 생각할 수 있지만 생활 속에 직접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턱이 없는 것을 자신의 생활 속에 만드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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