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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귀연일기-7] "큰 아들이 돌아오니 줄줄이 일이 생기네…"

생로병사. 삶의 본질을 이보다 더 압축적으로 표현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이면 누구나 태어나고 나이가 들어가며 병이 들고 마침내는 유명을 달리하는 과정을 겪는다. 이 것은 인간을 포함한 세상 모든 생명의 숙명이기도 하다. 나는 지금 생로병사가 눈 앞에서 생생하게 드러나는 현장에 있다. 우리 집이 바로 그 현장이다. 이스트 밸리의 우리 집에는 모두 네 식구가 산다.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이들을 모신답시고 내가 함께 기거하고 있다.

우리 네 식구의 평균 나이는 75.3세이다. 할머니는 내년이면 100세 아버지와 어머니는 현재 각각 77세와 74세이다. 우리 집에서 가장 젊은 내 나이는 51세이다. 우리 동네 이스트 밸리에는 대략 40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일일이 물어보거나 조사를 한 건 아니지만 우리 집 나이가 우리 동네 평균 쯤이거나 혹은 평균보다 2~3세쯤 젊을지도 모른다.

시골 인구의 고령화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젊은 자식들이 일찍이 도시로 떠난 농촌에서 고령화 현상이 더 먼저 나타났을 뿐 도시라고 해서 고령화를 피할 수 없다. 서울이든 LA의 한인타운이든 평균 연령대는 앞으로 급속히 높아질 것이다.

"아이고 또 밤이구나. 으흐~ 이 밤을…."



옆의 큰 방을 쓰고 있는 할머니의 한숨 섞인 혼잣말이 두어 달 전부터 부쩍 잦아졌다. 해가 일찍 지는 긴긴 겨울 밤을 날 생각에 할머니는 몸서리를 치곤 하는 것이다. "저승사자는 왜 이 늙은이 목숨을 빨리 떼어가지 않는 것이냐." 노인이 있는 가정이라면 어느 집에서나 터져나올 법한 푸념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자주 듣는다.

젊은 시절부터 세상에 대해 또 삶에 대해 부정적이고 불편함 마음을 감추지 않았던 할머니였다. 나이가 들어 그 어둡던 마음이 더욱 짙어졌다. 50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는 손자로서 할머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이런 저런 간단한 수발을 들고 하루 세끼 식사를 준비하는 정도이다.

"편하게 마음 먹으세요." 귀가 어두워 소리를 질러야만 알아듣는 할머니에게 몇 차례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100년 가까이 유지돼 온 부정적 사고 방식을 내가 바꾸는 것은 달걀로 바위치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할머니는 허리가 90도 가까이 구부러지고 귀가 어두운 걸 빼고는 연세에 비해 무척 건강한 편이다. 지난해 추석 이후 어머니와 아버지는 완전히 와병 모드이다. 지난 추석 약 11년의 미국 생활을 일단 정리하고 귀국한지 일주일 가량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무료로 진행되는 노인 건강 검진 결과 어머니의 대변에 맨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현미경으로 관찰할 때 피가 많이 섞여 있다는 병원으로부터의 통보가 있었다.

즉각 공주에서 멀지 않은 대전의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 검진을 받아본 결과 대장암이 상당히 진행됐다는 의사의 진단이 나왔다. 그 뒤 어머니는 서울로 올라가 수술을 받고 지금은 항암 투병 중이다. 아버지는 그 사이 어깨가 아파서 MRI촬영을 했는데 인대가 끊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또 발이 저려서 허리 부위에 대해 초음파와 MRI촬영을 병행했는데 척추협착증이 상당 부분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약 보름 전에는 갑자기 혈뇨가 있어 급히 병원에 입원했는데 전립선 비대증 판정을 받았다. 즉각적으로 수술을 했지만 완치나 현저한 호전이 있을지는 앞으로도 얼마간 기다려봐야 알 수 있다.

"그 집 큰 아들이 미국에서 오더니 줄줄이 일이 생기네. 어쩌면 좋아."

길에서 만나는 동네 사람들이나 친인척들 모두가 위로를 겸해 너나 없이 한마디씩 내게 이런 말을 건넨다. "어쩌겠어요. 사람 사는 게 다 이런 거지요." 나는 특별히 우리 집에 불운이 찾아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균 나이 75세가 넘는 가정이라면 얼마든지 예상할 수 있는 일들이 지금 일어나고 있을 뿐이니까. 그러나 아버지 생각은 나와 전혀 딴판이다. 이런 사고 방식 차이가 한 집에서 사는 우리 부자 사이의 긴장감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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