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향기] 부처님의 나라에 살고 싶다
이원익/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불교의 극락이나 서방정토는 다른 종교에서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생명을 가진 중생이 죽으면 그 쌓여 온 업에 따라 여섯 군데를 돌고 도는데 하늘나라 사람 세상 아수라 짐승 세계 아귀 지옥 중 한 곳에서 다시 태어난다. 그런데 가장 바람직한 것은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하여 이 부처님이 다스리는 서방의 깨끗한 땅에 곧바로 태어나는 것이다. 서방정토 극락왕생이다. '나무아미타불'은 죽은 다음 여기에 가기 위해 평소에 부지런히 읊는 염불 구절이다.
어쨌든 그건 내가 죽은 다음의 이야기이고 만약 지금 발 딛고 서있는 이 세상이 극락과 비슷하게 된다면 이거야말로 나와 이웃 내 후손을 위해서도 확실히 좋은 소식이다. 왜 이런 바람이 생겼겠나! 대부분의 중생에게는 이 세상이 너무나 괴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싫고 괴로워도 참고 견뎌야 하는 땅 그렇다고 함부로 죽을 수도 없는 사바세계다.
그래서 도솔천에 계시는 미륵보살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이 땅을 부처님의 나라로 만드시면 된다. 용화 나무 아래로 내려와 괴로움에 빠진 중생을 구별 없이 모조리 건져 주시므로 그 때는 구태여 서방정토에까지 갈 필요도 없어진다. 미륵신앙이요 재림신앙이다. 그 때가 언제인가? 부처님 입멸 후 56억 7천만 년이라고도 하니 낙담할 만치 오랜 뒷날이다.
그래선지 이 시기를 엄청나게 앞당겨 미리 나타났던 미심쩍은 미륵들이 역사상 한둘이 아니다. 이들은 자신이야말로 바로 미륵의 화신이며 구렁텅이에 빠진 백성을 구하려 세상을 뒤엎어야 하는 지금이 용화세계를 이루어야 하는 바로 그 약속의 때라고 외쳤다.
용화수 아래의 고요한 깨달음과 고르고 따사로운 건짐의 손길이 아니라 민심을 휘젓는 거친 혁명의 횃불이었다. 그리고 백에 아흔아홉 그 크고 작은 횃불들은 엄청난 악업의 그을음만 남긴 채 한숨과 피눈물 속에서 푸시식 푸시식 꺼져 버리고 잊혀 갔다.
하지만 나는 이렇듯 잊히고 사라져간 횃불의 소용돌이가 아니라 부처님의 자비로움이 달빛처럼 골고루 비치는 나라에 살고 싶다. 그 땅은 그늘진 기슭마다 아직 삶의 괴로움과 세상의 부조리가 잔설처럼 남아 있는 곳이겠지만 이 밤이 지나고 새 날이 올 때마다 조금씩 업장이 녹아드는 세상이다. 이름에 따라 서로를 갈라붙이며 줄 세우는 곳이 아니라 이름이야 어째 됐든 누구나 마음을 열고 스스로 깨달아 함께 악업의 눈길을 치우는 마을이다. 그리하여 나날이 따스함을 더하는 어느 봄날 나는 그 아름다운 길을 밟고 멀리 서방정토로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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