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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춘이다] 65세 단역배우 권희완씨

"내 안의 작은 '끼' 젊은 시절보다 더 신나요"

“젊은 시절보다 더 신납니다. 그런게 끼 아니겠습니까. 작은 재능이라도 있으면 건강한 이상 다 써먹을 겁니다.”

한국에서 극단 생활을 접고 미국 이민길에 오른 것이 벌써 25년 전. 더 나은 벌이를 위해 새 직업을 택했던 권희완(65·사진)씨는 요즘 다시 청춘을 찾았다.

지난해부터 출연한 미국 영화, 드라마, 광고 등만 10여편. 몇 컷 안되는 단역이지만 촬영 순간 순간이 ‘살 맛’이다.

◇연극과의 조우



연기를 시작한 것은 서울 양정고교 시절. 1년 선배였던 탤런트 이정섭씨가 출연한 장막극 ‘유태인의 거리’를 감명 깊게 본 것이 계기였다. 마침 대회 출전을 위해 회원 모집 중이던 연극반에 들어가게 됐다. ‘전유화’라는 작품을 통해 처음 무대에 섰지만 남자 학교였던 탓에 여자역으로 신고식을 치렀다.

연극부 선배들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동국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했다. 제대 후에는 극단 ‘가교’에서 3년간 활동하며 단막극과 성극 등 다양한 무대에 올랐다.

◇이민 그리고 새로운 진로

무대는 좋았지만 밥벌이는 힘들었다. 마침 친구를 통해 미국에 살고있던 지금의 아내를 소개받고 편지와 사진을 교환하며 결혼을 결정, 1977년 이민길에 올랐다.

권 씨는 “어려운 시기에 미국에 오면 수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면서 “애들 뒷바라지 해야는데 말이 안되더라. 연기를 포기하고 다른 재능을 찾았다”고 말했다.

평소 꾸미는 것을 좋아한 덕분에 인테리어 디자인 학교에 진학했다. 졸업 후 미국 회사에 취업, 10년 간 일하다가 지난 1990년 ‘권 인테리어’를 설립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연극에 대한 미련

각자 다른 사정으로 포기했지만 권 씨처럼 무대를 그리워하는 시카고 한인들이 많았다. 1986년 시카고 연극영화인 협회가 설립돼, 창립작품 ‘춘향전’이 제작됐고 권 씨는 이 도령 역을 맡았다. 이 후 10년간 ‘시집가는 날’, ‘LA 아리랑’ 등 2년에 한 번씩 작품이 만들어졌고 권 씨는 3대 회장을 맡은 후 10년간 재임하며 활발히 활동했다.

권 씨는 “작품당 제작 기간은 4개월이 넘는데 각자 주업은 있고, 품도 많이 들어 자연히 구성원들이 흩어졌다. 협회가 와해됐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작

어느새 딸과 아들이 직장을 찾아 뉴욕으로 떠나면서 시름은 덜고 시간은 늘었다.

“협회원을 모으기엔 벅찼지만 아직도 속엔 끼와 열정이 있었다. 이 끼를 죽기 전에는 써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에이전시를 찾았다.”

두 곳에 배우 등록을 하고 시카고 지역 배역 캐스팅이 있는 곳이면 할리웃·대학 영화, 드라마, TV·프린트 광고 등 가리지 않고 오디션을 봤다. 지난해 1월 이후 치른 오디션만 20여차례. 대사 1~2개의 단역이지만 경쟁은 치열하다.

권 씨는 “각계 아시안이 다 도전한다. 배우 지망생들은 웨이터 생활을 하며 단역에 달려든다”면서 “대충해서는 안되겠구나. 철저하게 준비하자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컨테이전’ 일본 보건국장부터 ‘월그린’ 직원까지

그렇게 따낸 작품들이 영화 ‘컨테이젼’, FOX 드라마 ‘시카고 코드’, 광고 ‘트레저아일랜드 카지노’, ‘월그린’ 등이다.
‘컨테이전’은 ‘오션스 일레븐’의 스티브 소더버그 감독에 맷 데이먼, 케이트 윈슬렛 등 톱스타 군단의 영화다. 질병으로 인한 인류 대재난을 다뤄 세계적으로 흥행했다. 그는 전 세계 보건국 대표자들의 비디오 컨퍼런스에서 일본 대표자로 등장한다. 원래 대사는 6문장 이상이었지만 다 편집되고 ‘대책은 있습니까’ 한 마디만 살았다.

권 씨는 “일본계, 중국계 등 20명이 넘게 경쟁했다. 대기만 5~6시간, 촬영도 20번 이상 했다”면서 “그래도 엑스트라와는 달리 소파와 화장실이 달린 트레일러가 제공됐다”고 말했다.

FOX에서 시카고의 범죄와 경찰을 다룬 ‘시카고 코드’에서는 주류상을 운영하는 아시안 주인을 맡았다. 가게에 도둑이 들어 경찰이 체포하러 오는 장면에 등장해 주인공과의 대화도 있었다.

“그 장면도 20번 이상 촬영한 것 같다. 주인공이 대사를 틀려 애드립을 했는데 편집됐더라.”

◇“은퇴? 절대 사양. 건강한 이상 쭉”

한국어 무대에선 비중 있는 배역감인 그가 대사 1~2개 단역에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다.

“오디션을 하고 촬영장을 가는 그 자체가 재미 있다. 떨어지면 속상하기도 하지만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 없다. 할리우드서 아시안 배역이 필요한 곳은 가뭄에 콩 나듯이다. 하지만 어딘간 필요할 것이고 목숨 걸고 할 필요 없는 것 아닌가.”

영어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그는 “길면 힘들지만 외울만하다. 한국어로 대사하던 것을 영어로 바꾼다고 생각한다”면서 “직업상 영어를 쓰고 살았다. 미국서 태어난 것처럼 완벽하진 않겠지만 의사소통에 지장은 없다”고 말했다.

올해 65세,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한 업체의 대표. 권 씨의 연기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그는 “신문에 85세 백인 노인이 아직도 단역 오디션을 보러다난다는 기사를 읽었다. 나도 그렇다”면서 “You Never Know”라고 하지 않는가. 자리를 펴놓고 있으면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 내년에는 더 많이 들어올 것이다. 건강하고 일이 있는 한 언제나 즐겁게 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에게 있어 나이는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고 꿈을 갖고 있는 한 그의 삶은 ‘청춘’이다.

김주현 기자 kjoo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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