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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춘이다] 72세 노익장 마라토너 이남석씨

"이 세상 떠날 때까지 달릴 수 있는 것이 꿈"

30년 등산 경험 바탕 64세에 데뷔
5년전 무리하다 근육 파열로 좌절도
"뛰는 순간은 나를 위해 보내는 시간"


지난 5월 15일, 펜실베이니아의 포코노 도로 한 복판에 한 노인이 힘겨운 표정으로 달리고 있다. 바로 뒤로 두 대의 경찰 오토바이와 경찰차 한 대가, 곧바로 앰뷸런스 한 대가 천천히 뒤따른다. 이후 수백 대의 자동차가 앞질러 가지 못하고 이 노인의 움직임에 따라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이남석(72·뉴저지주 포트리)씨. 당시 그는 자신의 31번째 풀코스(26.2마일·42.195km) 마라톤인 ‘2011 포코노 마라톤 대회’에 출전 중이었다. 800여 명의 출전자 중 그의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전날부터 배가 좋지 않아 무척 고생했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죠. 온몸에 힘이 없었고 뛰다, 걷다를 반복해야만 했어요. 언제부터인가 뒤를 돌아보니 경찰차와 앰뷸런스가 ‘내가 쓰러지기라도 할까 봐’ 따라오고 있었고, 그 뒤에는 자동차들이 새카맣게 따라오고 있지 뭡니까. 경적을 울리는 차는 한 대도 없었어요. 나 같은 아시안 늙은이 한 명을 위해… 이런 대접을 받는구나 생각하니 흐뭇하기도 했어요.”



당시 이씨의 기록은 6시간. 마라톤 세계기록 2시간 3분 38초(케냐의 패트릭 마카우)와 비교해서는 4시간이나 차이가 났다. 하지만 그는 “결승선을 통과하자 많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격려해줬다”며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바로 이 맛에 뛰나 싶었다”고 활짝 웃었다. 이 대회 참가자 중 최고령자였던 이씨는 아름다운 꼴찌였다.

◆처음부터 큰 시련=그가 마라톤을 시작한 건 환갑을 넘긴 64세부터였다. 이미 30년 이상을 등산을 해왔던 이씨는 ‘언젠가 마라톤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실천했다. 그는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다. 하체도 단련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해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권이주 회장이 이끄는 뉴욕한인마라톤클럽에 가입했다. 첫 마라톤 완주까지는 1년 여가 걸렸다. 2005년 11월 필라델피아 마라톤대회에 첫 풀코스에 도전을 했고 5시간 9분이라는 기록으로 당당히 결승선을 통과했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얼마나 더 빨리 달릴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이듬해 센트럴파크에서 열린 뉴욕마라톤클럽(NYRR) 주최 18마일 단축 마라톤 대회에서 직접 알아보고 싶었다고.

“사력을 다해 뛰었어요. 보통 풀코스를 뛸 때는 천천히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끝까지 달리는 게 중요한데 당시엔 조금 무리다 싶을 정도로 빨리 뛰었죠.”

10마일을 넘을 때까지도 이상 없었다. 하지만 결승선을 3마일 여 앞뒀을 때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졌다. “버티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쓰러지고 말았다”는 그는 기다시피 코스를 벗어났고, 택시를 타고 동네 정형외과로 갔다.

“오른쪽 엉덩이와 무릎 등 근육이 파열됐었어요. 무리를 했던 결과였죠. 순간 ‘아, 이제 더 이상 뛸 수 없구나. 이게 끝이구나’ 좌절했어요.”

당시의 힘겨웠던 상황을 떠올리면 아직도 긴 한숨이 나온다는 이씨. 이후 처음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했고 6개월 동안은 양손에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만 했다.

◆오뚝이처럼 일어서다=그러나 다리 부상이 ‘달리고 싶다’는 그의 열정을 이길 수 없었다. 그는 지팡이를 내려 놓은 시점부터 연습을 시작했다. 주치의는 물론 가족들도 말렸지만 그는 이를 악 물었다.

그는 “처음엔 걸었고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욕심 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조금씩 훈련양을 늘렸다”며 “이전에 건강에 자신했던 나 스스로를 돌아보며 겸손함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마라톤 완주 행진이 시작됐다. 매년 5차례 전후로 마라톤대회에 출전했던 그는 지난 5월 1일 로드아일랜드의 ‘콕스 프로비던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풀코스 30회 완주라는 기록을 세웠다. 마라톤 시작 8년 여 만의 일이었다. 더욱 의미가 컸던 것은 4시간 58분으로 당시 70세 이상 부문 1위를 차지했던 것. 그는 2000년대 후반에는 수 차례 걸쳐 65~70세 부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 11월 필라델피아 마라톤대회까지 32차례 풀코스를 완주했다. 그는 기억에 남는 대회를 묻는 질문에 “2007년 뉴욕마라톤에 참가했는데 당시 한인임을 알리고 싶어 대형 태극기를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뛰었는데 가두의 뉴요커들이 ‘코리아’를 외쳐주며 응원해줬을 때 힘이 절로 났다”고 말한 뒤 “물론 부상을 당했던 센트럴파크 단축마라톤 대회도 잊을 수 없다”고 답했다.

◆“나는 마라톤 전도사”=젊은 사람들도 힘든 마라톤을 30차례 이상을 70대 노인이 뛴다는 건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뛸 때마다 고통을 느낄 텐데,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졌다. “뛸 때마다 내 삶 가운데 잘못한 것은 없는지. 어제 잘못한 것은 없나.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하나 등을 떠올리죠.”

자타가 공인한 72세의 철각이지만 여전히 주변인들은 걱정 반, 응원 반이라고. 그는 “나 때문에 마라톤을 시작한 사람들이 많다. 특히 몸이 좋지 못했던 분들이 달리면서 치유되는 것을 볼 때면 ‘마라톤 전도사’를 자처하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고려대 상대 출신인 그는 1975년 미국에 와서 30년 이상 세탁소를 운영했다. 지난 3년 전 은퇴를 한 그는 ‘인생 이모작’을 시작했다. 뉴저지와 뉴욕의 부동산 브로커 시험을 통과해 당당히 브로커로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70세 넘어 공부한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일을 할 수 있다는 즐거움으로 열심히 했다. 이게 다 마라톤을 뛰면서 얻어진 정신력과 자신감 때문”이라며 또 다시 주제를 마라톤으로 돌렸다.

22일 오전 4시, 이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눈을 뜬 뒤 곧장 인근 허드슨강변을 달리기 시작했다. 가로등 조차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을 가르는 이씨는 “고요한 새벽길을 뛰다 보면 몸에는 서서히 열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땀이 난다. 24시간 가운데 유일하게 나만을 위해 보낼 수 있는 시간”이라며 “육체는 물론 정신까지도 건강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 것 같는지’ 물었다.

“몇 년 전 뉴욕마라톤에서 86세 일본계 마라토너를 만났어요. 90세 이상 되는 마라토너를 만난 적도 있어요. 꿈이요? 나도 저 사람들처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상태로만 달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육체적인 나이는 이미 ‘노인’이었지만 꿈을 말하는 그의 눈빛은 어느 젊은이만 못지 않았다.

강이종행 기자 kyjh69@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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