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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보스턴 이어 톤즈까지…'한비야 도서관' 늘어갑니다

특별기고 한비야 이화여대 초빙교수

잠시 머물던 도시마다
집요한 책 욕심으로 모아
100권서 만권으로 늘어난 베이징
교민 사랑받는 북 카페로 성장


재미로 본 지난해 운수에 관운이 들었다더니 지난 10월부터 공식 직함이 하나 둘 늘고 있다. 유엔 자문위원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 한결같이 신선하고 멋지긴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직함은 여전히 현장 냄새 물씬 나는 국제구호팀장이다.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뿌듯한 직함은 '한비야 도서관 관장'이다.

초를 다투는 긴급한 현장 사람이 '한가하게' 무슨 도서관장이냐고? 사연인즉 이렇다. 2000년 중국에서 어학 연수할 때니 벌써 12년 전 일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1년에 100권 읽기'를 하고 있는데 100권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손에서 책을 떼지 말자는 나와의 약속이었다. 어학연수 중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에 머무는 1년 동안 한국 지인들에게 애원 협박 읍소를 번갈아 하며 100여 권의 책을 모았다.

 한국 책이 귀한 곳에서 내게 책이 많다는 소문이 가까운 유학생을 중심으로 나더니 어느 날부터 내 숙소에 책 빌리러 오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오늘 도서관 열었어요?"라며 시도 때도 없이 오는 통에 내 공부에도 여간 방해가 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아예 금요일 오후와 일요일 오전 시간을 정해놓고 본격적으로 한비야 도서관 관장 노릇을 하기로 했다.

 공부할 것도 많 을 텐데 시간을 쪼개 책을 읽으려는 아이들이 기특하고 예뻤다. 권해준 책을 단숨에 읽었다며 또 권해달라고 하면 전문사서라도 된 것처럼 으쓱했다.

기왕 나선 김에 더 많은 사람에게 골고루 책을 전하려고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한 번에 세 권 반납 기한 열흘 기한을 어길 경우 벌금도 물렸다. 내 컴퓨터 파일 정리해주기 떡볶이 만들어 오기 등의 가혹한(?) 연체료를 붙이니 아이들이 더욱 열심히 읽었다. 누가 유학생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고 했나 도서관을 차린 지 두 달도 안 되어 대출노트를 새것으로 바꾸어야 할 정도로 성황이었다.

이렇게 도서관장으로 보낸 시간이 좋았는지 귀국할 때는 책 욕심이 많은 평소의 나라면 어림도 없을 통 큰 결심을 하게 됐다.

'내 책을 몽땅 베이징에 두고 가자!'

아 두고 가다니. 이게 어떻게 모은 책이더냐. 대부분 소포로 온 것을 한 권 한 권 우체국에 가서 찾아온 책이다. 받자마자 한숨에 읽은 책도 있지만 시험 때 도착한 책은 제목 보면 읽고 싶을까 봐 뒤집어 꽂아놓고 꾹 참았다 읽은 책들이다. 읽고 난 다음 그 감동을 이기지 못해 껴안고 잔 책들이기도 하다.

떠나는 전 날 내 왕 팬이라는 한글학교 선생님께 책장까지 사주면서 내 책 잘 돌봐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이렇게 100여 권으로 시작한 한비야 도서관이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아는가? 로뎀나무라는 이름의 장서 만 권에 육박하는 베이징 최대 북 카페가 됐다. 지난 12년간 뜻있는 분들의 열정과 헌신으로 유학생과 교민들에게 풍성한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명품 도서관이 된 것이다. 이러니 이 도서관 초대관장으로 어찌 우쭐하고 가슴 뻐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베이징에서 이런 재미를 본 후로는 장기파견 근무나 유학 등 한곳에 머무르면서 읽은 책을 고스란히 현지에 놓고 오게 됐다.

2006년 남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4개월간 파견 근무할 때는 이 나라의 우체국 기능마비로 책을 우편으로 받을 수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옆 나라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레소토 혹은 스와질랜드로 출장 오는 직원들에게 부탁해 어렵게 구해 읽은 책 30여 권을 한국 교민회에 놓고 왔는데 그 책들을 짐바브웨뿐만 아니라 인근 국가 교민들과도 돌려 읽는다는 기쁜 소식이 들린다. 2009년과 2010년에 걸쳐 유학했던 보스턴에서는 마지막까지 마음이 흔들렸다.

하늘이 노랗게 될 때까지 공부해도 될까말까한 벅찬 석사과정이었지만 그래도 틈틈이 밑줄 치며 읽은 책이 90여 권이었다.

보스턴은 한국학생들이 특히 많으니 당연히 책을 놓고 가겠다 마음먹고 기증할 모든 책의 첫 페이지에 '마음을 담아 드립니다' 라고 써놓기까지 했지만 막상 귀국 짐을 싸면서는 몹시 망설였다.

'여기서 오래 살고 있는 교민들도 가만히 있는데 잠시 왔다 가는 내가 왜 아끼는 책을 몽땅 놓고 가야 하나?' '놓고 간들 제대로 돌려보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사 짐 박스에 넣었다 뺐다를 한참 하다가 눈을 질끈 감고 한인성당 신부님께 전화를 걸었다.

"내일 제 책 몽땅 성당으로 가져갈게요. 한비야 도서관 잘 꾸려주세요."

이렇게 매번 눈을 질끈 감은 덕에 아시아 아프리카 미대륙에 작은 도서관이 생겨서 참 기쁘다. 4번째 한비야 도서관의 유력한 후보지는 '울지마 톤즈'의 무대인 남부 수단 톤즈 올 5월부터 6개월간 현장 근무할 곳이다. 이역 만리 남부 수단에 갖가지 사연을 가지고 내 손에 들어올 책들 그 책을 읽고 좋아라 할 사람들의 환한 얼굴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뛰고 기분이 좋아진다. 새해 여러분도 주고 나서 기분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글=한비야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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