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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축하 메시지] 소통의 모습 보여줄 때 외…

소통의 모습 보여줄 때
차용호 목사 워싱턴교협 회장

누가복음 2장 8~20절 말씀 중에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를 중심으로 묵상해 보면 이 성탄절뿐만 아니라 평상시에 우리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더욱 더 분명해집니다.
매년 맞이하는 성탄절이지만 독생자를 버리시기까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신 성탄절이기에 2011년 성탄절에도 우리는 또 다시 머리가 숙여집니다. 성탄은 우리 예수님에게는 엄청난 비하의 사건이지만 이를 통해 우리 죄인들에게는 새로운 삶의 길이 열리는 소통의 날임을 알기에 우리는 머리가 저절로 숙여집니다.
아무리 어둡고 차갑게 굳어버려 소통하지 않는 이 땅이지만 소통하려 가장 낮은 자로 오신 아기 예수 성탄은 인류에게 가장 큰 기쁜 소식이기에 우리는 입을 열어 찬송하며 감사하오니 “주여!, 우리의 찬송을 받으옵소서!”
예수님이 오심으로 죄 중에 있는 우리에게 삶의 소망이 열렸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첫 울음을 터트렸을 때 인류에게 새로운 구원의 문이 열렸습니다. 티 없이 맑고 한 점 흠도 없는 예수님이 누우시기에는 너무나도 어둡고 혼탁한 이 세상입니다. 진리 보다는 불의가 판을 치고, 선보다는 악이 승리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오심으로 이 모든 것이 역전될 수 있는 것을 믿기에 찬양합니다. “주여! 어서 2011년 성탄절에 또다시 이 세상으로 오시고, 우리 마음에 오시옵소서!”
‘동의보감’에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란 글귀가 나옵니다.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 땅에 모든 인류는 예전보다 잘 살게 되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곳저곳이 아픕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이 나라와 저 나라, 이 인종과 저 인종, 유럽과 미국, 북한과 남한등 여기저기서 소통이 되지 않아 통증을 호소하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이제 우리는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사건에서 새로운 성숙한 소통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하늘보좌를 버리시고 다가오신 예수님처럼 기득권을 내려놓고 겸손하게 다가가서 이웃과 소통해야 소망이 있습니다. 이번 성탄절은 우리 모두가 이웃에게 용기 있는 발걸음을 내딛는 소통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소통하러 오신 예수님을 진심으로 찬양합니다. 하늘의 천군천사처럼 소리 높여 찬송하며, 밤길을 달려 베들레헴을 찾아간 목자들처럼 놀라움과 기쁜 마음으로 경배해야 합니다. 아기 예수님을 낳은 마리아와 요셉처럼 순전하고 진실된 신앙의 모습도 닮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비록 많은 것을 갖지 못하고 많은 것을 드리지 못하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금을 살게 하시고, 우리 주변에 있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돌봐야 할 많은 가난한 이웃, 소외된 이웃, 버려진 이웃, 돌보지 않은 이웃들, 우리와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피부색깔이 다른 200여 다민족을 기억하고 돌아보며 소통할 줄 아는 소통의 선수, 소통의 사람!, 하나님의 백성인 맏형, 맏딸들이 주인공이 되는 소통하는 성탄절이 되게 하옵소서!
할렐루야! 아멘!

희망의 빛이 온 땅을 덮길
권덕이 목사 MD교협회장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그리고 생업과 직장, 가정위에 하나님의 은총이 늘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금년에도 우리는 수많은 일들을 경험하셨고 힘차게 잘 사셨습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바로 그리스도인들과 세상에 기쁨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사망의 어두운 그늘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희망과 해방의 선포자로 오신 이를 기쁨으로 맞이하는 절기입니다.

새로운 생명, 새로운 삶에 대한 환희를 가지고 사는 계절입니다. 이 성탄절은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기원전(BC)와 기원후(AD)를 가르는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성탄절은 인류로 하여금 새로운 삶과 새로운 역사를 출발하게 하는 결정적인 때(카이로스)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에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대한 환희와 기쁨이 내 안에서 샘솟아나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뜨거워진 따스함의 마음, 은혜와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말씀이 육신되어 오셔서 찾아가셨던 그들에게...

예수님이 만났던 그 때의 그 사람들은 지금도 가장 가까운 곳에 아닌 내 눈 앞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납니다. ‘나의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들면서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구냐?’ 강도를 만나 있는 것을 다 빼앗기고, 매를 헤아릴 수없이 맞아 고통가운데 신음하는 자를 보면서도 못 본척하고 곁을 지나갔던 그들이 아니라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옆에 있다고 해서 이웃이 아닙니다. ‘자신을 위하여 내 이웃을 찾지 말고, 그를 위하여 이웃이 되어 주리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하는 사랑이 아닌 그를 위한 사랑의 삶이 되어야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2011년 성탄절은 진정한 이웃이 되어주는 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났으면 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말입니다. 올 겨울엔 누구누구를 생각하면서 따스하게 보냈다는 사랑의 소리가 이웃을 맞이한 그들의 입에서 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 인류와 화목을 이루신 하나님은 이제 우리가 그분의 형상으로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자유케하는 힘이고, 나를 굳세게 만드는 그리스도의 능력이고 세상을 정복하는 힘의 근원입니다.’

성탄절에 ‘자유와 능력과 정복하는 힘’이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MD교회 협의회에 속한 모든 교회들은 미국과 우리의 어머니 한국, 한인 동포와 세계를 품에 안고 늘 기도하고 축복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즐거운 성탄과 함께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마음속에 예수님 위한 방을
곽호인 베드로 주임신부 성 정 바오로 성당

지난 19일 섄틸리 세인트 베로니카 성당에서 필리핀 신자들의 성탄 맞이 9일 기도인 ‘심방 가비(Simbang Gabi)’가 있어서 참석해 봤습니다. 그냥 미사만 봉헌하는 단순한 것이었지만 성탄을 준비하기위한 9일 기도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베틀레헴에서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낳을 방을 구하러 이곳저곳으로 찾아다닌 것처럼, 예수 성탄 전에 9일 동안 이집 저집, 이 본당 저 본당으로 옮겨 다니며 기도하는 풍습이 여러 나라에 퍼져있는데, 필리핀에서는 ‘심방가비’, 중남미에서는 ‘포사다(Posada·Inn)’, 독일에서는 ‘헤르베르슈천(Herbergsuchen·Inn 찾기)’이라고 합니다. 어떻든 우리나라에도 이런 풍습이 하나쯤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에는 여관에 예수님이 들어가 태어날 방이 없어서 마굿간에서 태어나 구유에 뉘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성서학자는 이렇게 해석을 했습니다. 중동지역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윗층에 큰방을 만들어 한데 어울려 살고, 아래층에 땅을 파내어 공간을 만들어 가축을 기르기도 하고 창고처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여관에 방이 없었다는 말은 성모님이 해산을 하게 되었을 때 호적신고를 하러온 많은 사람들이 윗층 큰방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여인이 애기를 낳는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공간이 없었다는 뜻이지, 오늘날의 여관과 같은 의미에서 빌려줄 방이 없었다는 뜻은 아니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또 마굿간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큰방을 피해서 땅을 파서 동굴처럼 만든 아래층 베이스먼트에 가서 애기를 낳은 것이고, 그곳에 온갖 물건들이 있었을 텐데 그 중에 구유가 있어 거기에 아기예수를 누인 것이 아니냐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어떻든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 여관에 방이 없어 마굿간에서 태어났고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졌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이 고대하던 구세주가 태어나는데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여 태어날 방조차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기 예수님은 마굿간에서 태어났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묵상해 봐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대림절 동안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실 방을 마련해 놓았는가? 나에게도 꼭 필요한 방이지만 예수님을 위하여 과감히 내어드리고 비워드렸는가? 묵상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기들이 기대하던 특별한 모습으로 오셨다면 베틀레헴의 여관 주인도 방을 내어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가난하고 평범한 이웃의 모습으로 오셨기에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고 태어날 방을 내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특별한 모습이 아닌 가난하고 평범한 이웃의 모습으로 오시는 그분이 태어나실 방, 그분이 머무실 공간을 내어드렸는가 묵상해 보자는 것입니다.
우리본당은 이 세상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의 수도에 있는 본당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잘 산다는 미국에서도 소득이 제일 높다는 동네에 있는 본당입니다. 성당 문 앞에 산타가 되어 달라고 애원하는 가난한 나라 어린이들의 작은 소망이 담긴 쪽지가, 이제는 산타가 되어준 작은 천사들의 이름을 담고 기빙트리에 가득히 달려있습니다.
온통 녹색으로 변한 기빙트리를 보면서 어린이들에게 산타가 되어 주신 모든 신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우리 실수로 빠트린 아이들은 없는지, 혹시나 아직도 머물 공간을 찾지 못하고 우리 성당 문 앞에서 서성이는 아기 예수님은 없는지 공연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시고, 생명을 바치시는 주님은 특별한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는 분이 아니라 가난하고 평범한 이웃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입니다. 가난하고 평범한 이웃의 모습으로 오시는 그분을 외면하지 않고, 기쁘게 맞이하기 위하여 늘 우리 마음속에 빈 공간, 예수님을 위한 방을 마련해 놓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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