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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트리를 찾아서…록센터의 세계 최대 트리 관광객 발길 잦아

메트뮤지엄과 오페라하우스도 개성파 트리

뉴욕에서 크리스마스의 상징은 록펠러센터의 대형 트리다. 미 전역의 후보 나무들 중 간택된 한 그루는 뿌리가 잘린 채 맨해튼까지 긴 여정을 거쳐 록펠러센터에 우뚝 선다. 그리고, 스와로프스키 별을 왕관처럼 쓰고 노랑·빨강·초록·파랑 등 색색의 전등을 파티복처럼 치장한 후 뉴요커들과 관광객을 반긴다.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뮤지엄, 메트로폴리탄오페라하우스, 미자연사박물관, 그리고 증권거래소 등 크리스마스 트리는 세워지는 장소마다 개성을 뽐낸다. 악기, 종이접기 장식에서 넥타이 등 오나먼트도 다양하다.

왜 장식물을 단 나무가 크리스마스의 트레이드마크가 됐을까? 그리고, 맨해튼을 거닐며 마음에 쏙 드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찾아보자.

크리스마스 트리의 기원엔 몇 가지 설이 있다. 15세기 리보니아(오늘의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와 16세기 북부 독일 지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스토니아= 사료에 의하면 최초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1441년 에스토니아에서였다. 총각 외국상인들로 구성된 ‘검은 머리 형제들(BB, Brotherhood of Blackheads)’이 할러데이를 위해 트리를 세운 것으로 나와있다. 할러데이 밤엔 트리가 타운홀의 광장으로 옮겨졌고, BB의 회원들이 트리를 돌며 춤을 추었다고 한다.

1584년 목사 겸 연대기 기록자인 발타자 러소우가 “마켓 광장에 장식된 전나무의 전통이 세워졌고 그 주위로 젊은 남녀들이 노래하며 춤추었으며, 트리에 불을 밝혔다”고 저술했다. 19세기에 들어서서 에스토니아인들은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통을 이어갔다.

◆독일= 중세 독일에서 크리스마스 때면 사과를 딸 수 있는 상록수 ‘낙원의 나무(Paradise Tree)’가 설치되곤 했다. 1570년 브레멘길드의 연대기에 따르면, 교회 바깥에 사과, 견과류, 데이트, 프레첼과 종이꽃 등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로 부유한 신교도 가정에서 가톨릭의 크리스마스 구유에 대적하는 트리가 사용됐다. 19세기에 와서야 크리스마스 트리는 학교와 숙박업소 등지를 거쳐 가정으로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대중화한 것은 독일군이 1870-71 전쟁 때 막사와 육군병원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설치하면서였다. 이후로 19세기 말엔 교회까지 크리스마스 트리가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루터=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가 크리스마스 트리의 원조로 보는 설도 있다. 루터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숲 속을 산책하고 있었다. 평상 시 어두웠던 숲이 그날 밤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바로 달님이 소복하게 눈이 쌓인 전나무 위에 영롱한 달빛을 비추고 있었던 것. 루터는 순간 ‘인간은 저 전나무와도 같다.

한 개인은 어둠 속의 초라한 나무와도 같지만, 예수님의 빛을 받으면 주변에 아름다운 빛을 비추일 수 있는 존재’라고 깨달았다. 그는 전나무 한 그루를 집에 가져왔고, 눈 모양의 솜과 빛을 발하는 리본과 촛불을 장식했다는 것이다.

박숙희 문화전문기자 suki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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