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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쿠키를 굽는 빈민가…160만명 아직도 텐트 생활

'지진 2년' 통곡의 땅 아이티를 가다

갱들 활개치는 수도 변두리 텐트촌…살인사건도 잦아
지진으로 무너진 대통령궁.대성당 '을씨년스런 폐허'
사탕수수 농사로 자급했던 그 시절은 다시 올 는지…


마이애미에서 2시간을 날았을 뿐인데 이렇게 다른 광경이 펼쳐질 줄 누가 알았으랴.

비포장이나 다름없는 도로에서는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 오르고 낡은 디젤 엔진에서는 꺼먼 매연이 뿜어져 나오니 단박에 숨이 막힌다. 중앙선이 따로 없으니 여기저기서 경적소리가 귀를 때리고 도로변에는 버려진 쓰레기가 산더미를 이루고 있다.

면적이 2만 7750㎢이니 한국의 1/4에 GDP(국내 총생산)가 1인당 1600달러다. 한국이 3만달러에 가까우니 그 딱한 사정은 보고 듣지 않아도 알만할 터. 서반구의 최빈국이다. 한국전쟁 당시에 자금지원을 한 우방국으로 한국과는 1962년 수교한 이래 무역.경제.기술.문화 협정에 사증(비자)면제협정도 맺고 있다.



진도 7의 강진이 후려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이티는 여전히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태양의 도시(Citi-Soleil)

아이티의 세계적인 아픈 상징이 돼 버린 진흙 쿠키를 굽는다는 말을 좇아 지구촌 최대의 빈민가를 찾았다. 수도 포르토 프린스 변두리의 거주 인구가 20만에서 40만명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갱들의 관할지역이기도 해서 서반구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간주되는 곳이다. 2006년에는 유엔 평화유지군 2명이 이곳에서 살해됐고 2007년에는 유엔군 700여명이 이곳에서 대규모 총격전을 벌였다. 지금도 심심찮게 살해된 시체가 발견되는 곳이라고 윌러가 귀띔한다.

차를 타고 슬그머니 지나갈 심산이었는데 마을 입구에서 털털대던 자동차가 기어이 멈춰 버렸다. 하는 수 없이 수많은 눈초리를 온 몸으로 느끼며 잔뜩 긴장한 채로 마을로 들어섰다. 윌러와 임마뉴엘은 앞 뒤에 서서 큰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기에 여념이 없다. 큰 홍역을 치른 곳 답지않게 마을은 삶의 활기로 가득하다. 흙탕물이지만 빨래도 하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골목을 메운다. 그러나 뒷골목으로 한발짝 들어서니 골목을 따라 오염되다 못해 아예 초록색 물감을 타 놓은 듯한 생활하수가 흥건하다. 각종 쓰레기가 썩어가고 모기와 파리떼가 먼지구름 일듯 날아오른다.

길을 관통하니 바닷가다. 한동안 카리브해를 바라보다 발길을 되돌리니 '양아치'쯤으로 불러야 할 듯한 청년이 길을 막는다. 마을을 벗어날 동안 지켜줄 테니 10달러를 내놓으란다. 긴장한 채 망설이는 동안 "지난 주에도 10명이 죽어 나갔다"고 아예 협박을 한다. 10달러를 줬다간 아예 지갑을 내놓아야 할 지 모른다고 윌러의 말에 꽁무니를 빼듯 발길을 재촉했다.

나오던 길에 드디어 진흙쿠키를 발견했다. 조그만 나무판매대 위에 손바닥만한 진흙쿠키가 동전 몇 닢과 함께 놓여 있다. 1달러를 내니 작은 비닐봉지에 가득 채워준다. 다닥다닥 붙은 양철지붕 위로 카리브해의 햇살이 내리쬐니 비로소 태양의 도시라는 이름이 걸맞는 듯 하다.

◆왕자의 항구(Port-au-Prince)

아이티의 수도로 지진으로 무너진 대통령궁이 당시의 모습 그대로 아이티의 현재를 그대로 웅변하고 있다. 지진 전 콘크리트로 제법 구색을 갖췄을 시장도 여전하다. 언제 무너져 덮칠 지도 모를 잔해 앞에서 상인들이 옹색하기 짝이 없는 물건들을 펼쳐놓고 있다. 시장을 벗어나 대성당 터에 이르렀다. 르네상스 양식을 본 뜬 성당이 웅장하다. 하지만 옛날 일일 뿐 지붕도 유리창도 없이 을씨년스러운 폐허 그대로다.

차로 돌아오니 어느새 주민들이 몰려와 유리창을 두드린다. 섣불리 지갑을 벌렸다간 몰려 든 인파로 차가 움직일 수도 없겠다는 생각에 돈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다. 잔돈을 따로 준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한때 사탕수수 수출과 농사로 자급했을 나라가 전국민의 대다수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160만 명이 아직도 텐트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도심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여기저기 휴대폰 간판이 솟아 있고 탭탭(Tab Tab)이라 불리는 택시마다 승객이 빼곡히 들어차서 어디론가 달려간다. 마이애미를 통해 들어왔을 최신 자동차들도 혼잡한 거리를 누빈다. 현대 기아차도 제법 눈에 띈다. 조금씩이나마 군데군데 공사장들도 눈에 띈다.

해질 녘 도시 전경을 볼 요량으로 산 중턱으로 길을 잡았다. 길도 없는 길을 따라 위험스레 능선에 올라서니 붉게 물들어가는 왕자의 항구가 애잔하게 느껴진다. 왼쪽 발 아래로는 토굴이나 다름없을 빈민가가 전기도 없이 캄캄한 밤을 맞고 있다.

인력거와 벤츠 렉서스가 같은 도로를 달리고 위성TV와 호롱불이 혼재하는 나라 아이티는 지금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몸살을 앓고 있다. 몸살이 지나면 언젠가 다시금 카리브해의 진주가 되리라.

아이티=글.사진 백종춘 기자 jcwhite100@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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