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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퍽해선 맛 잃는다…본성 지켜야 한다

비오는 날…부침개 먹고싶은 이유는

그동안 인생의 불을 두번 조절했다. 불의 세기에 따라 인생은 다르게 익었다. 은근한 불에 붕어빵을 굽는 사장님은 인내해야 구울 수 있다고 했고 센불로 머리를 볶는 미용실 원장님은 볶고 볶이는 동안 삶을 태우지 않는 한계를 배웠다고 했다. 굽고 볶았더니 '지짐' 생각이 간절했다. 볶느라 한껏 달아오른 불을 다시 낮췄다. 부치려면 센불은 버겁다. 약한불도 피해야 한다. 특히 부침개는 수분을 빼앗겨선 안된다. 퍽퍽해서 맛을 잃는다. 열과 싸우면서 본성을 지켜야 하는 일. 부쳐본다.

◆부침개의 유래
기름 몹시 귀하던 시기
궁중서 시작된 고급음식


전의 유래는 궁중에서 시작된다.

본래 전유화 전유어(煎油魚)로 불리던 것이 저냐 지짐개 등으로 불리며 현재의 '전'이 됐다. 기름이 몹시 귀했던 시기다.



조선 중기에 쓰인 영접도감의궤에 따르면 그 당시 전은 어육전(1609년) 잡전(1643년)이란 이름으로 중국 사신에게 대접 됐다. 1809년 규합총서에서는 채소나 해산물 등 재료에 밀가루와 계란 옷을 입혀 지지는 것뿐만 아니라 기름에 부치는 모든 종류의 부침개를 전이라 기록했다. 재료에 따라 화전(花).어전(魚).육전(肉) 등으로 나뉜다.

녹두를 맷돌에 갈아 돼지고기와 갖은 양념은 섞고 솥뚜껑에 눌러 지지는 빈대떡은 대표적인 전의 일종이다. 본래 제사상이나 교자상에 올리던 음식으로 중국 떡의 일종인 '빈자떡'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또 가난한 사람들이 부쳐먹은 떡이라는 뜻의 '빈자(貧者)'떡 녹두를 주재료로 하는 '빙저'라는 지짐이가 세월이 흘러 빈대떡으로 바뀌었다는 해석도 있다.

부산하면 떠오르는 '동래파전'은 조선말기 음력 삼월 삼짇날 임금께 올리던 진상품이다. 임진왜란 때 동래성에 침입한 왜구에게 파를 던져 승리한 기념으로 부쳐먹었다는 설도 있다. 학자들에 따르면 쌀가루.달걀.해산물 등 값비싼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하는 파전은 양반들의 절식(節食)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전쟁 이후 미국의 원조물자로 밀가루가 대량 공급되면서 전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현재 전은 간단한 반찬 혹은 안주의 형태로 발전했으며 김치전.부추전.풋고추전.감자전.호박전 등이 인기다.

그제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자작자작' 김치부침개가 생각난다는 말을 하루종일 들었다.

비와 부침개의 상관관계는 독특하다. 일반적으로는 날씨와 음식은 덥거나 춥거나 해야 연결된다. 예를 들면 땡볕에 냉면처럼 말이다. 반면 비와 부침개는 언뜻 접점을 찾기 어렵다. 몇년 전 한 오락 프로그램이 그 해답을 쫓았다. 왜 비가 오면 부침개가 생각나는 지 여러 전문가들에게 자문했다. 과학을 앞세운 답변들이 쏟아졌지만 설득력은 떨어졌다.

그중 한 전문가의 설명이 무릎을 치게했다. 답은 소리에 있었다.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배명진 교수의 논리는 정말 '소리공학적'이었다.

그는 다양한 빗소리를 녹음했다. 주룩주룩 쏟아지는 한여름 장맛비 요란스레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나기 처마 끝에 똑똑 떨어지는 가랑비 조용히 내리는 겨울비 등등. 계절에 따라 비가 내리는 모습과 소리가 달랐다.

그중 추적추적 빗소리를 골랐다. 배 교수는 추적추적을 '바람과 비가 뒤섞여 처마밑에 떨어지는 소리'로 정의했다. 빗소리와 별도로 기름을 부어 잘 달아오른 프라이팬에 부침개 반죽을 넣고 자작자작 하는 소리를 녹음해 비교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전혀 다른 성질의 두 가지 소리는 그 진폭이나 주파수가 거의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음향전문가들 조차도 부침개의 기름튀는 소리와 빗소리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흡사했다.

배 교수는 식품광고의 예를 덧붙여 부연 설명했다. 후루룩 거리며 국수를 먹는 소리 뻥 하며 맥주병 뚜껑을 따는 소리 거품 쏟아지는 소리는 먹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데 쓰인다. 소리로 귀를 자극하면 맛있었던 연상기억력을 회복시킨다는 논리다.

비오는 날 부침개의 비밀은 추적추적과 자작자작의 닮음에 있었다.

"끈기 있게 부치다보니 인생 따로 놀지 않더라고
한송부페 김명희 한식 조리장

기름냄새가 고소했다. 앞자리에 앉은 김명희(63) 한식 조리장에게서 나는 내음이다. LA한인타운 끝자락의 ‘한송부페’ 창업멤버인 김 조리장의 주방경력은 15년이다. 지금은 없어진 신라부페에서 8년간 일했고, 수원갈비를 4년간 딸과 운영했다. 주방에 있는 동안, 김 조리장은 각종 전과 부침개를 수도없이 부쳐왔다. 하루에 3000~4000장을 부친 날도 있다. 전을 부치는 동안 그녀는 영주권을 얻었고, 집을 장만했고, 내 식당까지 열수 있었다. 지금은 부치면서 노후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실패한 부침개는 재료가 따로논다. 그녀는 “끈기있게 부치다보니 인생이 따로 놀지 않았다”고 했다.

#부녀회장, LA를 부치다
미국 오기전 김 조리장은 군포시내 작은 동네 부녀회장이었다. 손 맛 좋고 넉넉한 성격 덕분에 ‘5년간이나’ 부녀회장을 했다.
스무살 딸이 유학을 가겠다 했다. 넉넉치 않은 형편에 먼저 보냈더니, 역시 녹록치 않았다. 15년전 딸을 도우려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군포시내 부녀회장이 겁날 게 무어냐 싶었다.
그런데 와서보니, 막막했다. 그녀도 다른 ‘주방 아주머니’처럼 살아보려고 식당에 취직했다. 미국 땅을 밟은지 사흘만이다.
“신라부페에 들어갔는데, 제 손맛이 좋다고 칭찬을 많이 들었어. 그런데 맛이 좋으면 주방은 고생해. 손님이 많아지니까.”
맛좋은 부페 집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새벽 4시부터 자정너머까지 하루 스무시간을 일할 때가 많았다. 캐더링 3000명분을 만든 날도 있었다. 특히 부침과 전은 손이 많이갔다. 미리 반죽과 재료를 만들어놓아야 했다.
하루 웬종일 부치느라 팔이 올라가지 않았다. 잠자리에선 만세자세로 자야만 했다.
“그땐 ‘별보기 운동’이라고 했어. 새벽에 나갔다가 밤에 돌아왔지. 정말 잠 한번
실컷 자보는게 소원이었어.”
힘들게 돈을 모았다. 버스비도 아끼려 걸어다녔다. 딸 결혼식 날에도 전을 부쳤다. 오후 5시가 결혼식인데 4시까지 일하고 샤워만하고 식장에 서야했다.
“미국와서 라스베이거스 여행한번 가본게 전부에요. 가서도 밀린 잠을 자느라 사흘간 호텔방에만 있었지.”
억척맞게 남의 식당에서 부치는 동안 내 ‘지짐’이 익어갔다.

#성공을 부치다
신라부페에서 일하면서 영주권을 얻었다. 몸이 아픈 남편이 한국에서 왔고, 아들이 뒤따라왔다.
웬종일 기름냄새 맡아가며 부쳤던 댓가는 잘익은 부침개만큼 고소했다. 남편의 병도 낫고, 아들도 한국에서 하던 건축설계사일로 자리를 잡았다. 집도 샀다.
무엇보다 미국와서 8년만에 내 식당을 열게됐다. LA한인타운내 수원갈비가 터전이 됐다. 양념갈비 맛이 좋다고 소문난 집이다. 딱 3년 운영하다 값이 올랐을 때 팔았다.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였다.
“가게 팔아서 번 돈은 식당 값이 아니라 갈비 양념값이지. 맛의 비결로 값을 받는 거야.”
생활이 넉넉해지면서 친정 어머니 생각이 간절했다. 노환중인 어머니를 한국에서 모셔와 3년간 모셨다. 낯선 미국 땅에서 부침개는 늙은 어머니와 대화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어머니께 부치다
“결국 맛은 기억인가봐. 요즘 부침개를 부치면서 친정 엄마 생각이 그렇게 나.”
3년간 미국에 머무르시던 어머니는 지난해 돌아가셨다. 어머니 시신을 실은 비행기를 타고, 함께 한국에 가서 장례를 치렀다.
돌아오는 길에 부침개 생각이 간절했다. 요즘도 전과 부침개를 부치면서 어머니가 그립다.
“아무리 맛있게 전을 부쳐도 내 입맛엔 맛이 없어. 살아계실 때 좀 더 잘해드렸어야 했는데 사는게 바빠서….”
한송에서 일한 지 2년째다. 갈비집 사장님을 뒤로 하고 요리사로 재취업한 이유는 배우기 위해서다. 요즘은 한송의 김혜경 부사장에게서 많이 배운다.
“나야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공주(김 부사장)은 똑부러져. 내 손맛에 경영 노하우을 합하면 잘 될 것 같아서. 한번 배워보려고.”
한송에서 부치는 일은 그래서 그녀에게 노후대책과 같다. 딸과 아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움직일 수 있을 때 더 벌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친다는 동사는 요리동사중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이 가장 크다. 파생한 뜻까지 합치면 10가지가 넘는다. 정치, 경제, 사회, 예술 등등 전 분야에 쓰이는 유일한 요리동사다.
특히 부친다는 말은 이민자의 삶을 표현하는 데 적격이다. 이민자들은 남의 땅을 부쳐야 한다. 월세방에 몸을 부치면서 힘에 부쳐도 아메리칸 드림의 바람을 부쳐보겠다고 안간힘을 쓴다. 부치는 일은 한인들의 눈물겨운 삶이다.
김씨는 ‘인생에서 부친다는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어려워했다.
하지만 김씨는 답을 알고 있었다. 부추전을 바라보다가 ‘이제 뒤집어도 되지 않느냐’ 물었더니 그녀가 말했다.
“자꾸 뒤집으면 전에 힘이 없어. 좀 기다려봐.”
기다려보자. 아직 앞은 흐물거리지만 내 등에 힘을 얻는 때는 분명히 온다.
부치다
월세방에 몸 부치며
힘에 부쳐도
아메리칸드림 부쳐보겠다
안간힘 쓴 '이민자 의삶'

정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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