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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컬쳐] <3> 화가 최성호… 이민자의 시선으로 본, 미국의 초상과 인간의 소망

나무태의 선에서 로토티켓의 점으로 진화
소수계 화가 생계과 작업 조율의 '3중고'

우리는 무엇으로 사나? 불로장생(不老長生)? 부귀영화富貴榮華)?

화가 최성호(57·사진)씨는 늙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은 인간의 염원, 부와 명예를 꿈꾸는 인간의 욕망을 다루어 왔다. 올해로 이민 30년째를 맞은 최씨의 앵글은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낯선 땅에서 고군분투하는 이민자들의 시선이다.

최씨가 지난 2일부터 22일까지 맨해튼 텐리갤러리(43A West 13th St.)에서 열고 있는 개인전 ‘영원한 삶’엔 그의 일관된 주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작 5점이 선보이고 있다. 나이테를 모티프로 한 초기작과 로토 티켓을 소재로 한 근작이 시원하게 걸려있다.

화가로서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는 동안 최씨는 두 번씩 이산가족이 되었고, 올 초엔 장남 지훈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냈다. 이 전시는 아버지 따라 화가를 꿈꾸다 스물두살에 세상을 등진 지훈에게 헌사하고 있다.



이민자의 시선으로 보는 미국
-이 전시에서 가장 초기 작품은 1985년 작 ‘무제(Untitled)’다. 106인치 지름의 검은 원이 미니멀리즘의 전형이다. 로토를 위주로 한 근작과는 많이 다른데.


“프랫인스티튜트 대학원 다닐 때 브롱스식물원에서 100년이 넘은 나무가 잘려진 것을 봤다. 그 나무의 나이테를 보면서 선에서 품어나오는 응축된 시간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래서 작품으로 형상화하게 됐다. 전시에 함께 소개되는 2005년 작 ‘시간 여행(Time Travel)’에선 과거로 회귀하고 싶은 우리의 욕망을 나무테의 선으로 표현했다.”

-프랫 졸업 후 전업화가가 됐나.

“아니다. 영주권을 받기 위해 텍스타일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했고, 인테리어, 야채가게, 가르치는 일 등 여러 직업을 가졌다. 그런데, 그 경험들이 작품에 나타나더라.”

(이번 전시에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초기 최씨는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품을 발표했다. 김치병으로 가득한 한인 이민자 가방 위에 성조기 무늬 과녁을 대조시킨 ‘아메리칸 드림’(88∼92)으로 이민자들의 문화갈등을 풍자했고, 청과물 사이 십자가와 소주, 계산기와 총, 그리고 칼 등이 돌아가는 과녁 ‘코리안 룰렛’(92)은 청과물상을 운영하는 한인 이민자들의 현실을 담았다. LA에서 일어난 4.29 폭동에서 영감을 받은 ‘최씨네 가게(Choi’s Market, 93)’에선 불 타버린 야채상회 안에 최씨 부부와 두 아들의 흑백 가족사진이 보인다.)

-‘최씨네 가게’은 무척 개인적인 작품인듯하다.

“1992년 로드니 킹 구타 사건으로 발발된 4.29 폭동과 내 개인적인 경험을 오버랩해 제작했다. 가게 주소 ‘2429’는 ‘나의 4.29’라는 의미다. 당시 우리 가족도 힘들었다. 당시 아내가 아파서 한국에 남고, 부모님께 두 아이를 맡긴 채 난 혼자 와서 이산가족이 되어 살았다. 불 타버렸지만, 난 상징적으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나무테에서 로토를 사용한 점묘화로 이동했다. 로토 작업은 어떻게 시작했나.

“이민자를 주제로 한 작업을 해오다 1993년부터 시작했다. 어느 날 상점에서 대박을 꿈꾸며 로토를 사려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본 후 착안했다. 로토티켓 자체는 무료라서 재료비도 들지 않았다.”

(로토에 볼펜으로 번호 동그라미를 칠해 완성한 ‘아메리칸 드림’(93)은 로토 초기작이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대형 로토 벽걸이 ‘크로싱(Crossing, 2008)’은 미국 국경에 가까운 멕시코의 티유아나 트리엔날레에 전시됐던 작품이다. 그는 로토 티켓으로 멕시코의 아즈텍 텍스타일 문양, 양 모서리엔 철조망 패턴으로 구성,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멕시칸 이민자들의 위험천만한 아메리칸 드림을 표현했다.

최씨가 다민족의 보로 퀸즈 엘름허스트의 중학교 IS-5에 영구 설치한 ‘아메리칸 파이(96)’는 원형으로 변형된 성조기 아래 20여개국 신문이 모자이크 된 천정화다. 이중 한국 대표로 뉴욕중앙일보의 지면이 담겼다. 같은 학교에 설치된 타일벽화 ‘나의 아메리카(96)’는 최씨가 한국에서 동경해온 미국과 이민와 살면서 체험한 미국의 이미지를 모자이크한 미국 지도다. 피터,폴&메리의 달콤한 노래와 추방당한 인디언의 그림이 교차하며 환상과 현실이 몽타주된다.)

꿈과 시간을 유영하는 화가

‘영원한 삶’ 전시의 센터피스는 83X210인치 대형 패널작 ‘불로장생(Forever Young, 2010)’. 지난해 12월 본사 중견작가 15인전 불우이웃돕기 중견작가 15인전 ‘겨울 무지개, 겨울메아리’에 2폭이 전시됐지만, 이번엔 5폭 전작으로 선보인다.

-무척 화려하다. 로토를 사용했나.

“맞다. 수백장의 로토 티켓에 약 10만여개의 반짝이는 점을 점묘화법으로 제작했다. 장수에 대한 염원을 표현하기 위해 조선시대 십장생도 이미지를 차용했고, 세속적인 부와 물질에 대한 욕망의 상징인 복권을 사용한 것이다.”

-‘불로장생’은 화려하지만, 근작 ‘드림스케이프(Dream Scape, 2011)’는 모노크롬인데.

“내가 테마로 다루어온 꿈과 시간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작품이다. 600여년 전 안평대군이 자연에 대한 경의를 표현한 작품에 역시 물질문명의 상징인 로토를 접합해 보았다.”

-아들을 잃은 슬픔은 어떻게 치유해왔나.

“지금도 알 수 없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빨리 그 애를 데려가셨는지... 미스테리다. 사람들은 작가로서 일종의 전환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2011년은 개인적으로 가장 불행한 해로, 우리 가족은 그 후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아직도 너무 힘든 시간들 보내고 있다. 작가로서는 전시를 어느 때보다 많이 한 해였지만…”

-화가로서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그림은 삶의 반영이 아닌가. 화가들의 삶은 독특한 것이 사실이다. 나의 경우는 생로병사, 희로애락 다 겪어봤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중고에 빠진다. 사업하는 분들은 돈만 벌면 되지만, 우린 작업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민자로서, 또 잘 팔리지 않는 그림을 그리는 3중, 4중고를 갖고 있다.”

-이민 잘 왔다고 생각하나.

“세계 미술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한번 화가로서 도전해보고 싶어 왔다. 때때로 고국의 친구들과 비교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가 교수가 되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날 땐. 하지만, 한국의 교육제도에 불만이 있어서 돌아가지 않은 것은 내 선택이었다. 이제 한국과 미국에서 절반 정도씩 산 셈이다. 한국적인 것과 미국적인 것, 이중문화를 체험하면서 그것을 적용해서 작품을 만들고 있다.”

-다음은.

“이제까지 작업을 크게 나누면 ‘꿈’과 ‘시간’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한 1년 반 전부터 아침에 일어나 세수한 후 나의 사진을 찍어오고 있다. 필름으로 만들어봤는데, 머리가 하얘지고, 주름이 늘고... 내가 죽을 때까지 매일 찍어서 모으면, 한 인간의 나이 먹는 것에 대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최성호씨는 = 서울 마장동에서 태어나 홍익대 서양화과 졸업 후 1981년 뉴욕으로 이주, 프랫인스티튜트 대학원을 마쳤다.
1993년 퀸즈뮤지엄에서 열린 한국 현대작가 그룹전 ‘태평양을 건너서(Across the Pacific)’에 참가했으며, 2008년 뉴욕주립대 올드웨스트베리에서 준 회고전 ‘마이 아메리카: 1988-2008)’를 열었다.
퀸즈 엘름허스트 중학교 IS-5를 비롯, 시애틀 미연방법원 등지에 공공미술작을 설치했다.
박숙희 문화전문기자 suki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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