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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맞지 않아 자유 찾으려 데모 앞장서고 데이트도 했죠"

내가 만난 하나님 사랑
마냥 기다려주지만 않아
구원의 밧줄 내가 잡아야

"올해로 저의 첫 작곡인 '임쓰신 가시관'이 25주년 됩니다. 미주지역은 여러 사정으로 이번이 처음이라 개인적으로 감회가 깊고 이를 계기로 자주 한인 신자를 만나러 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달 19일 성 아그네스성당에서 미주지역 첫 콘서트를 가진 신상옥씨(안드레아.47)는 12월 중순 귀국길에 샌호세 한인성당에서 다시 콘서트 계획이 있다며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그는 한국 가톨릭에서 '전설적인 복음성가 가수'로 알려졌다. 미주 한인 신자 가정이라면 그의 CD나 테이프를 한 장 정도는 갖고 있다. 그만큼 가톨릭 복음성가 중에는 그의 작사 작곡이 많다.

'전설적'이란 말이 따라다니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강화도 태생으로 대대로 가톨릭인 집안에서 5남1녀 중 넷째다. 이모 중 수녀가 네 명이다. 그도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 가톨릭신학대학에 입학했다. "어려서부터 아일랜드를 비롯한 외국 신부님들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너무 기쁘게 사시는 모습에 망설임 없이 저도 사제의 길을 결심했던 거에요."

그러나 결심대로 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들어가서 곧 후회했거든요(웃음). 저한테 맞지 않았어요. 매일 의무적으로 바치는 성무일도를 저는 내 노래로 할 때 하느님과 정말 소통하는 기쁨을 느껴요. 그러니 공부도 잘 못했고요(웃음)."

나의 길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4년 신학공부와 군목으로 군복무 마칠 때까지 8년 동안 머물 수 있었던 것은 동기 신부와 선후배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관용과 사랑'을 준 교수 신부님들 때문이었다.

"저는 그 안에서 정말 하느님의 사랑은 이런 것이겠구나 하는 걸 많이 몸으로 체험했어요." 그러면서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기로 했다. 자신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었다. 확신이 설 때까지 '신학생이면서 신학생이 아닌 듯이' 자유롭게 살아 보기로 했던 것이다.

당시 민주화 데모에 앞장섰고 여학생과의 사귐도 굳이 피하지 않았다.

"신학교 3학년 때인가 데모하다가 잡혀서 용산경찰서에 있는데 김수환 추기경님이 빼내주셨지요." 교수 신부님들께 불려가서 꾸중도 많이 들었는데 나중엔 "네가 좋아하는 노래 얼마나 잘하는지 내 앞에서 해보라"고 까지 하게 됐다.

"야단치다가 제 기타와 노래를 들으시고는 그대로 감동받으신 분도 계셨지요(웃음). 당시 신학교에서 문제아였던 건 사실입니다." 지금 생태마을 관장으로 잘 살고 있는 황창연 신부가 동기로 '증인'이라며 웃는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도 즐겨 불리는 좋은 곡들이 만들어 지기 시작했다.

첫 곡이 '임쓰신 가시관'이다. 신학생들이 신부로서 길을 가는 사제서품을 받을 때 수녀들이 종신서원을 할 때 마치 공식적인 성가처럼 부르고 있다.

"그때 신학교 동기와 선배들을 모아 합창단을 구성했고 테이프도 만들었는데 이것이 의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신학생이 작곡 작사한 복음성가로 알려지면서 더욱 관심이 커졌던 것이다. "신학생 때 시작한 복음가수가 어느덧 25년이 되었네요."

그러나 점점 졸업이 다가오면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사제는 직업이 아니잖아요? 하느님 앞에서 거짓말은 통하지 않으니까요. 그 삶이 기뻐야 하는데 전 자신이 없었거든요." 서품을 바로 앞둔 91년 자진해서 신학교를 나왔다. 83년 입학해서 8년 세월이 지났다.

세상에 나와보니 '내 발을 씻기신 예수'를 비롯한 신학생 때 만든 자신의 곡들이 테이프와 CD로 이미 알려져 있었다. 계속 들어오는 콘서트 요청을 받고 지방까지 다니며 바쁘게 보냈다.

93년에는 '신상옥과 형제들'이라 하여 '그 큰 빛 주님 되어'라는 성탄곡의 CD도 만드는 등 본격적인 가톨릭 복음성가 가수로 자리를 잡았고 또 유명해졌다. 95년엔 결혼도 해 현재 아들도 셋이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세상에서 이렇게 잘 나갈수록 기도도 안 되고 무엇보다 더 이상 곡을 쓸 수가 없었어요. 영적 고갈상태가 온 것이지요. 처음으로 신학교에서 나온 것이 과연 하느님의 뜻이었나 하는 회의가 몰아쳤어요."

이때 만난 사람이 바로 가톨릭 장애인 단체인 작은 예수회의 박성구 신부였다. "올해로 박 신부님과 일 한지 11년째 됩니다. 되돌아 볼 때 제가 만난 하느님은 사랑이신 분입니다. 그러나 마냥 기다려주시지는 않으시는 것 같아요. 더 이상 안 되겠다 하실 때 구원의 밧줄을 내려 주시는데 이것을 우리가 잡지 않으면 하느님도 어쩔 수 없어 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는 속으로 기도하면서 성가를 부른다.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돼요. 지금 나의 노래가 바로 하느님이 부르는 소리로 들어주세요."

김인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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