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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컬쳐] 소프라노 홍혜경…"언제나 처음 연기하는 기분으로 노래합니다"

뉴욕타임스, 메트오페라 '라보엠' 미미역 찬사

“우아하고 감동적인 연기…풍부한 음색, 세련되고 청아한…”(로미오와 줄리엣) “신선하고도 광채가 나게 노래…아름다운 표현과 정제된 피아니씨모…”(라보엠)

뉴욕타임스가 올 3월 줄리엣으로, 11월엔 미미로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무대에 오른 베테랑 소프라노 홍혜경(52·사진)씨에 대해 보낸 찬사다.

1982년 메트오페라내셔널카운실오디션에서 우승한 홍씨는 84년 모차르트 오페라 ‘티토왕의 자비’의 세르빌리아 역으로 데뷔한 이래 메트에서만 350편 가까이 출연해왔다.

‘라보엠’ 공연을 끝낸 ‘메트의 디바’ 홍혜경씨가 지난 달 29일 링컨센터에서 공개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메트오페라길드의 월간지 ‘오페라뉴스’의 편집장 폴 드리스콜과 무대 위와 뒤, 그리고 가족에 대한 대담을 나누었다. 이 인터뷰는 오페라뉴스의 ‘성악가의 스튜디오’의 한 프로그램이다.

“모차르트 오페라에 잘 맞아”

홍혜경씨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한인 제 1호 성악가다. 메트 데뷔 이전 1981년 홍씨는 작곡가 지안카를로 메노티의 초청으로 이탈리아 스폴레토페스티벌과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에서 프로로 데뷔했다. 당시 줄리아드의 작곡가 커트 아들러의 제안으로 홍씨의 이름을 영어권에서 발음하기 좋은 ‘수잔 홍’으로 이름을 썼다. 하지만, 친구들과 줄리아드음대 친구들의 설득으로 바로 공연 후 바로 ‘혜경 홍’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신선한 느낌을 주는 비결은.

“오페라 가수들이 긴 커리어를 생각한다면, 신선감을 유지해야 한다. 마치 그 역을 처음 하는 배우같은 기분으로 정서적으로 신선해야 한다. 미미가 루돌포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올 3월 줄리엣 역도 맡았는데.

“줄리엣 역이 내 목소리에 맞는다. 극적으로 무척 편안한 느낌을 준다. 내 막내가 줄리엣보다 나이가 많다. 하지만, 오페라 가수로서 관객에게 믿음이 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의 경우는 둘째 딸 베아트리체가 줄리엣과 성격이 닮았다. 파티를 좋아하는 베아트리체를 관찰하면서 그 느낌으로 줄리엣을 연기했다.”

-메트에서 모차르트 오페라로 데뷔했다. 베르디나 푸치니보다 모차르트를 더 많이 했는데.(홍씨는 ‘피가로의 결혼’’돈 지오반니’‘코지 판 투테’‘티토왕의 자비’‘마술피리’‘이도메네오’ 등 모차르트 오페라에만 120여회 출연했다.)

“처음 노래를 하면서 마리아 칼라스같은 위대한 성악가들의 노래나 바그너와 베르디 오페라를 들으면서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글쎄 성격인지, 아니면 ‘한국인의 뜨거운 피’ 때문인지 모르겠다. 한인은 ‘동양의 이탈리안’으로 무척 감정적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겐 모차르트가 맞았다. 모차르트는 부담스럽지 않고, 상대적으로 하기 쉽다. 하지만, 난 베르디에 맞는 목소리를 타고 태어나지는 않았다. 푸치니의 ‘라보엠’을 해왔지만, ‘토스카’(푸치니 작곡)엔 맞지 않는다.”

-‘나비부인’은 어떤가.

“목소리가 맞지 않는다. 만일 목소리가 됐다면, 돈도 많이 벌었을 것이다.(웃음) 첫째 ‘나비부인’은 보컬 측면에서 나를 죽일 것만 같았다. 둘째로, 아시안이라서 나비부인으로 정형화되고 싶지 않았다. ‘나비부인’ 50회를 하면 내 목소리가 망가질 것만 같았다.”

-하고 싶은 역은.

“‘마농’을 정말 하고 싶다.”

“가족이 우선, 음악은 축복”

-초기에 아시안 성악가들이 별로 없었다. 한국인이라는 것이 더 주목을 받고, 한국인으로서 일종의 부담도 있었나.

“난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난 옆 사람보다 더 잘하고 싶었을 뿐이다. 난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열중하기 때문에 나 자신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관심을 추구하는 동물’이 아니던가! 난 정말 잘하고 싶었다.”

-지금은 아시안 성악가들이 참 많아졌다.

“맞다. 내가 전에 시작할 때는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고, ‘오리엔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아시안 성악가들이 무대에 더 많아지면서 이젠 익숙해진 것 같다.”

-어떻게 목소리를 유지해올 수 있었나.

“1984년 오페라를 시작했을 때 메트와 시티오페라에 드나들며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성악가들이 2∼3년 후에 사라지는 것을 봤다. 사람의 목소리는 나빠질 수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 목소리를 잃어버릴까봐 정말 겁이 났다. 그래서 목소리를 관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성악가들은 휴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메트하우스는 정말 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노래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소리를 테크닉을 갖고 질러야 한다.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자신에게 맞는 역도 유의해서 택해야 한다.”

-집에선 어떻게 목소리를 관리하나.

“조용히 지낸다. 소리 지르거나, 크게 웃지 않는다. 전에 남편과도 싸우질 않았다. 내 목소리에 좋지않기 때문이다!(웃음)”

-엄마로서 성악가로서 어떻게 조율해왔나.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다. 엄마란 풀타임 직업이며, 오페라 가수는 내게 보너스인 셈이다. 아이들이 없었더라면, 음악이 내 인생이었을 것이다. 내 경우는 축복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좋은 오페라단인 메트에서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내게 중요하다. 우리 가족과 함께 있으면서 출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아이들을 두고 짐을 싸서 노래하러 2∼3개월 외국에 가있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 엄마는 집에 있어야 한다.”

-이 자리에 젊은 성악가들이 꽤 있다. 조언을 한다면.

“자신의 목소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왜 ‘아이다’를 못하지 하지 말고 정직하게 영리하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든 이에게 자신만의 특장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 부분을 갈고 닦아야 한다.”

박숙희 문화전문기자 suki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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