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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육신도 형제, 교회도 형제

양곡교회 지용수 목사
양곡교회 지용덕 목사

형제는 닮았다.

피를 나눠서 닮은 것만은 아니다.

형제는 천직이 같다. 목사다. 각각 한국과 미국에서 담임을 맡은 교회 이름도 같다. 한국 창원의 최대교회인 양곡교회 지용수 목사와 LA의 미주양곡교회 지용덕 목사다. 지용수 목사가 4살 위 형이다. 2010년 형제는 나란히 양쪽 교계 대표직에도 올랐다. 형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장을 동생은 남가주기독교협의회장에 각각 당선됐다.

'지 목사님들'은 점점 더 닮아가고 있다. 지난 15년간 두사람은 매년 1~2차례 '교환 목회'를 해왔다. 교환 목회는 두 교회 담임목사가 일정기간 서로 자리를 바꾸는 목회를 뜻한다.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오랜 기간 이어진 형제 목사의 교환 목회는 이들이 유일하다. 서로의 자리에 앉아보니 형제는 각자의 속사정까지 다 알게됐다. 지난 27일 미주양곡교회 아우의 목회실에서 형 지용수 목사를 만났다. 8000명 교인을 둔 대형교회 담임목사인 형은 300명이 출석하는 동생의 작은 교회에서 "잊고 지내던 감사와 겸손을 새삼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때마침 연말을 앞두고 형제의 '우애깊은 목회'를 취재했다.

-서로 호칭은 어떻게 부르나.

"둘만 있으면 형님 아우님 하지만 누구든 함께 있으면 서로 목사님이라고 부른다. 아우이기도 하지만 주님의 종이니 그 정중함을 지키려고 노력한다.(인터뷰 내내 형은 동생을 '아우님' 혹은 '아우 목사님'이라고 깍듯했다.)"

-언제부터 교환 목회를 해왔나.

"95년쯤부터니까 적어도 15년은 된 것 같다. 매년 짧게는 2주 길게는 6개월까지 서로의 교회에서 목회했다."

-계기가 있나.

"아마 내가 먼저 제안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쉼이 필요했고 아우 목사님은 재충전이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자리를 바꿔보니 어떤가.

"목회에 권태가 없고 안주하지 않게됐다. 한국의 양곡교회는 오케스트라만 300명이다. 미주양곡교회 전체 교인수다. 여기 오면 작은 교회기 때문에 한사람 한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된다."

-형제의 교회 이름이 같다.

"한국 양곡교회는 창원지역 최대 교회다. 82년 16대 담임으로 청빙받아 29년간 목회했다. 미주양곡교회는 내가 90년에 9개월간 LA에 머물면서 세웠다."

-미주양곡교회를 동생이 맡은 이유는.

"당초 선교사 자녀 교육을 위해 설립했다. 내가 직접 건물도 사고 개척하듯 준비했다. 그런데 그러느라 9개월간 나와 있자니 한국 양곡교회가 흔들렸다. 당장 미주쪽을 맡아줄 목회자가 필요했다. 대구에서 목회하던 아우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안오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내가 강권했다. 결국 아우님이 91년에 맡아줬다."

-형제간의 교환 목회 좋은 점은.

"서로 사심없이 조언하고 기도해줄 수 있다. 그런데 아우님에게 자꾸 '이것 좀 고치면 좋겠네'했더니 이젠 별로 효과가 없더라(웃음). 그래서 요즘은 '잘하신다 잘하신다'하고 칭찬을 주로 한다."

-어떻게 목사님이 되셨나.

"나는 아우 목사님이 아니면 목사가 되지 못했다. 6남매의 장남이 신학대를 간다고 하니 아버님께서 반대하셨다. 그때 아우님이 '아버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형님은 하나님 일을 하게 해주십시오'하고 설득해줬다. 아직까지도 고맙다."

-결국 동생도 목회자가 됐다.

"건실한 사업체를 운영하다가 늦은 나이에 소명을 받아 목사님이 됐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사장이 목사가 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아버님께 죄송해했다. 그래도 형이 볼때 아우님은 효자다."

-동생이 목사가 되겠다고 의논했나. "거의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다(웃음). 하지만 마음이 편하고 기뻤다. 한 영혼을 구하는 일이 사업보다 귀하다고 생각했다."

-한국 양곡교회의 성장세가 놀랍다.

"올해 96년된 유서깊은 교회지만 29년전 내가 부임할 때 교회 건물이 20평밖에 안되는 멈춘 교회였다. 청빙 제의를 받았지만 가기 싫었다. 그런데 아내가 '당신 목사님이 아닌 것 같다'고 하더라. 만약 건물 근사한 교회였다면 가지 않았겠느냐는 거다. 불방망이에 맞은 것 같았다. 두말않고 창원으로 내려와서 셋방살이부터 시작했다.(현재 교인수를 밝히지 않아 찾아봤다. 8000명이 넘었다. 진해 마산 창원이 통합된 도시에서 가장 크다.)"

-한국과 한인교계를 비교한다면.

"성격이 다소 다르다. 한국의 교회는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다닌다. 그래서 한 교회를 다니면 대대손손 그 교회안에서 신앙이 유산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한인 교회는 좀 다른 것 같다. 비지니스나 인맥을 위해 교회에 오는 분들도 상당수다. 한인 교계에 교회간 교인 수평이동이 많은 이유도 그런 차이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인교계에 아쉬운 점은.

"영어권 예배인 'EM(English Ministry)'이다. 아이들이 따로 영어 예배를 드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한 식구는 한솥밥을 먹어야 하는데 따로 밥을 차리더라. 말만 한 교회를 다닌다 뿐이지 사실상 부모와 자녀가 서로 다른 교회를 다니고 있다. 이대로라면 신앙의 칼러가 희망적이지 않다."

-목회 철학이 있다면.

"나는 주의 종일 뿐이다. 종에게 무슨 철학이 있나. 하나님 시키시는 대로 할 뿐이다. 작은 일도 하나하나 기도하고 시작한다. 내 경력이나 경험에 의지하지 않고 사사건건 아기처럼 묻듯이 기도한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하고."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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