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기획] '시카고 점령(Occupy Chicago)' 현장을 가다…"우리가 99%다"
가진 것은 플라스틱드럼-피켓-고함 뿐
특별한 리더 없이 모두가 발언권 가져
“부정부패 기업-권력 경제 망친다” 주장
요즘 이 곳을 지나면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선 시카고 주민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뉴욕 맨하탄의 월가에서 시작된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에 뜻을 같이 하는 ‘시카고 점령(Occupy Chicago)’ 시위대들이다.
지난 9일 오후 시위장소를 찾았다. 이날 오전부터 내린 비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인근 건물에 설치된 온도계는 화씨 40도를 가리켰지만 고층건물에 가려 햇볕이 들지않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체감온도는 영하권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시위대들도 모자와 장갑, 방한복으로 무장하고 시위에 나섰다. 시위를 하기에 좋은 날씨는 결코 아니었다.
20여명 내외의 시위대는 ‘우리가 99%다’, ‘경제위기를 일으킨 은행가들을 체포해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또 플라스틱 바스켓을 드럼 삼아 소리를 내면서 손을 흔들며 행인들의 이목을 모았다. 지나가는 차량은 이들의 시위에 동조한다는 의미로 경적을 울렸다. 주로 트럭과 택시, 중고차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렸다. 대형 SUV나 리무진은 조용히 지나갈 뿐이다.
시위대는 추운 날씨로 인해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연신 발을 구르며 체온 유지에 힘썼다. 대부분의 행인들은 관심을 나타내지 않지만 손을 흔들거나 궁금한 점을 묻기도 한다. 시위대가 모인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시카고 경찰차가 한 대 주차돼 있다. 시위대를 살피곤 하지만 특별한 움직임은 없다. 건물에 소속된 경호원들은 설치된 바리케이드 안으로 시위대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다.
시위대는 24시간 교대로 잭슨과 라셀길에 모여 시위를 벌인다. 일부는 연준은행 앞에서 노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에는 장소를 미시간과 콩그레스 파크웨이 근처로 옮겨 회의를 가진다. 거창스런 회의는 아니고 그날 시위와 앞으로의 일정 등을 교류하는 시간이다. 현장에서 한 사람이 말하면 주위사람들이 복창하면서 발언 내용을 듣는다.
시위대의 활동은 조직적이지 못하다. 구호를 외치는 사람은 한 두 명이 고작이고 피켓도 통일되지 못한, 참가자들이 스스로 만든 것들이다. 플라스틱 드럼과 피켓, 고함이 이들이 가진 전부인 셈이다. 이들은 지나가는 행인들과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자신들의 불만을 밝힌다.
시위대는 자신들의 얼굴이 신문에 나가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피켓 내용을 설명하며 사진 촬영에 협조했다. 다만 자신을 공인회계사라고 소개한 한 20대의 백인여성은 직업상 자신의 이름과 직장 등을 공개하는 것을 꺼렸다.
지난 10월 6일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했다는 사무엘 샌델(사진)씨는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이 나아가는 방향에 불만이 있어서 나왔다. 가장 불만은 기업이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과 결탁해 자신들만의 부를 챙기고 나라 경제를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샌델씨는 이어 “시위가 어떻게 될 지는 모른다. 다만 많은 주민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이러한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이 들고 있는 피켓에는 “우리가 주인이다”, “사람 위에 이익이 있다” “우리가 변화가 되자”, “법을 회복하자”라고 적혀 있다.
9일로 48일째에 접어든 시위는 언제까지 지속될 지 아무도 모른다. 회의를 통해 일정과 방향을 정하는데 특별한 리더가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에게 발언권이 있고 모두가 참여하는 토론을 거쳐 향후 일정과 방향성을 정한다.
시위대 중에서는 젊은 세대가 많은데 모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이용이 자연스럽다. 시위의 일정과 향후 계획, 지나간 활동 등은 모두 자체 웹사이트(occupychi.org)나 트위터(@occupychicago), 페이스북(facebook.com/OccupyChicago)를 통해 올려지고 공유된다.
이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비폭력시위대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 있는 기본권을 행사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시카고 점령 자체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들은 “미국 시민이면서 시카고 주민이다. 함께 모여 헌법에 보장된 우리의 권리인 토론과 결사의 자유를 행사하고자 한다. 우리들의 임무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남용하는 기업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비폭력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글·사진 박춘호 기자 polipch@koreadaily.com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