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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마당] 그날 발길이 -수필가 정옥희 선배님을 보내며

김영교/노산 문학상 수상

금년 초 정월이었다. 마음은 아침부터 준비에 바빴다. 꿈에 뵌 선배가 켕겨 대추를 한알 한알 솔로 씻어 찜통에 찌면서도 선배님 생각이 계속 나를 휘젓고 있었다. 평생교육대학 개학식에 오전을 바치고 병문안에 뜻을 모아오던 오연희 집사와 동행하려 전화하니 출타했다가 멕시코 국경을 넘어오는 중이었다. 혼자서 가 말아 가 말아 다음으로 미뤄 말아 마음에 갈등이 생겼다.

비온 후의 시가지는 씻어놓은 배추 속 쾌청했다. 한산한 프리웨이 질주는 편안했다. 4시 좀 넘어 산동네 상록수들 사이 길을 달려가는 나를 발견하고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 내려올 때는 캄캄하지 않을까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눈앞에 펼쳐진 푸르름에 녹슬은 감성이 반짝 내 가슴은 아름다움에 촉촉이 젖어들었다.

게이트에서 나의 신고를 알리고 나는 윤기 나는 당도 높은 대추를 껴안고 또 선배님과의 밝고 어두운 추억을 껴안고 보고 싶은 선배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던 나 자신을 발견했다. 해마다 감철에는 감 따러 오라는 선배의 호출이 추상같이 있는데 작년은 없었다.

섭섭도 궁금도 잠간 나는 새 시집 출판준비로 몹시 바빴다. 노산 문학상 소식에 시집 출판을 겸해 서울 행 그게 11월 출국에 그리고 12월 17일 연말에 귀가했다. 어머니 병문안 밀린 집안 일 교회일 사무실 일 뒷마당 일에 치어 잠시 선배를 그만 마음에서 멀리 두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마주보며 울었다. 껴안고 울고 눕힌 다음에 울고 손잡고 울고. 눈물은 말라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오는 길 내내 눈물 소금끼에 얼굴이 당기고 조여왔다.

아 선배는 야위어 있었다. 깨끗하고 흐트러짐이 없었다. 주물러 준 발과 다리도 작고 탄력이 없었다. 신기한 현상은 카랑카랑한 목소리 그대로 나를 인정해주는 정겨운그 목소리는 야위지도 늙지도 않아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이었는지 모른다.

선배는 육체적 고통에다 심한 우울증이 겹쳐 있었다. 우리는 김선욱 새 총장 얘기도 하고 2년 앞서 역사과를 졸업하고 워싱턴에 사는 동생을 소개해주어 함께 모교 얘기로 시름을 잊고 웃으며 옛날을 회상하며 잠시 작은 동창회의 즐거움을 맛보다가 아차 이빨 내놓고 웃을 때가 아닌데 싶어 금세 무거운 현실로 돌아왔다.

사람을 따르는 귀여운 강아지 세 마리는 효성 지극한 딸 미셀곁을 맴돌며 우리들끼리 대화 즐기라고 자리를 비켜가 크리마스 트리 장식을 박스에 넣어 치우는 일을 돕고 있었다. 매사에 때가 있어 크리스마스 때가 지나 장식들은 필요 없어 치워지는 '정리의 현장'을 지켜보았다. 그게 일의 순서이고 자연법칙이려니 그런 과정을 밟는 게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병상에서도 수필집을 내시고 (새로 나온 수필집을 사인해서 건네주셨다) 그 생생한 기억력의 선배는 식욕이 없어 곡기를 끊고 있었다. 지극히 작은 양의 국물만 취할 따름이었다. 찐 고구마나 과일 한쪽을 권해도 선배는 더더군다나 정성껏 씻어 쪄간 왕대추는 '나중에 먹을게' 그 말 따라 내 눈앞에서는 선배입에 가 닿는 행운을 얻지 못했다.

선배와 많은 얘기를 나눈 후 힘드시겠다 싶어 어정쩡하고 있는데 병상에서도 여전히 눈치 빠르셔 선배는 나보고 가라고 손을 저었다. 많은 대화로 에너지가 바닥이 났는지 '쉬고 싶으셨나 보다'라고 혼자 생각하고 물러나왔다.

앞뜰에 내려서니 잎이 다 떨어진 앞마당 감나무들 앙상한 채 나목이 되어 잘 견뎌내고 있는 정경이 눈에 훤히 들어왔다. 봄이 오면 새 잎이 돋을 저 감나무처럼 인생에 찾아온 우리 모두의 힘든 계절을 잘 밀어내고 다시 움트고 열매 맺는 사람 감나무 선배님 되시기를 소망하며 하늘에 있는 맑고 투명한 푸름을 온 힘을 다해 끌어당겨 드렸다.

10월 상달 감이 붉게 익어가는 그 넓은 정원을 남겨두고 선배님은 우리 곁을 떠나가셨다. 아픔도 눈물도 없는 가을을 안고 떠나가셨다. 후배들에게 문학에 대한 절대 열정을 남겨놓으시고…. 천국에서 안식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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