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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양로병원을 찾아 갔던 날

조옥동/시인

지난 주말 오랜만에 세 양로병원을 방문했다. H병원의 원로시인 박 선생은 몇 해 전만해도 문인들 모임에 참석하며 젊은이를 격려해 주시던 심신이 곧고 바른 분이다. 음식을 잘 삼키지 못해 몸이 수척해졌고 다리에 힘이 없어 거동이 불편하며 불면증으로 고통을 받고 계셨다. 귀가 좀 어두워도 정신은 맑아 대화도 되고 새 시집 출판이란 희망을 잃지 않고 계셨지만 쇠약한 모습이 안쓰러웠다.

O병원에 입원하신 이 권사님은 94세의 고령에 시력을 완전히 잃은 후 최근엔 청력마저 잃어 대화조차 힘들었다. 오래전 같은 교회를 섬기며 믿음의 본을 보인 신앙의 대선배로 많은 이에게 어머니같은 분이셨다. 애처로운 모습에 목이 멘 남편 대신 눈물의 기도를 마치고도 나는 한참이나 누워계신 권사님 가슴에 엎드려 있었다.

마음이 너그럽고 푸근해 여장부 같았던 남편의 친구 부인이 입원하고 있는 G병원을 찾았다. 오랜 지병인 당뇨병으로 걷지도 못하고 수년째 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음식 솜씨가 좋아 수시로 동창을 불러 대접하기를 즐겨했고 모임을 주선해 자주 만남을 가졌었다. 두 돌을 지난 첫 손녀의 맑은 웃음소리가 병실에 붙여놓은 여러 사진 속에서 들리는 듯 했다.

재치있게 쏟아 놓던 입담도 다 잃은 듯 휠체어에 앉아 우리가 하는 말에 고개만 끄덕거렸다. 맛있는 것을 만들어 남편과 나누며 손녀를 안고 재롱도 보고 싶을 가슴 속엔 얼마나 집에 돌아가고픈 마음이 간절할까.

흔히 볼 수 없을 만큼 선량한 분들인데 어찌해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지 주변엔 이런 분들이 많다. 때때로 절대자의 자비와 긍휼을 원망하기도 한다. 양로병원 복도엔 환자들이 초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조각상인양 줄을 지어 휠체어에 앉아 있다. 그들 앞을 지날 때엔 괜히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생각에 고개를 숙인다. 간절히 누굴 기다리는 듯도 하고 무표정한 얼굴에선 이미 희로애락의 감정을 잃은 듯 보인다. 병원 문을 나서며 어깨 위에 내려 쬐는 밝은 가을 햇볕을 받아 담을 수만 있다면 들어가 그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만날 때에 떠날 때를 염려하고 행복할 때 행복이 깨질까 염려하고 건강할 때 병들까봐 미리 걱정한다. 좋은 면을 보기보단 나쁜 면을 찾아내려 한다. 어찌 보면 우리는 긍정적 사고보다 부정적인 사고가 발달한 것 같다. 대체로 이성적이기보다 감성적인 욕망에 기울어져 있다. 때로는 '인간'이란 '불완전 한 존재'로 자인하며 자신의 부족과 잘못을 희석시키려 한다. 생로병사 인생의 수수께끼를 어찌 풀며 그 해답을 얻을 것인가.

인간의 본성을 고대 중국의 맹자는 선하다고 순자는 악하다고 주장했지만 목적은 결국 사람에게 수양을 권해 도덕적 완성을 성취하는데 있었다. 모든 종교의 공통점은 최선의 삶을 물질적 신체적인 충족보다는 정신적인 평안을 얻는데 두고 있다. 병든 자 장애인 억압받는 자들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닫고 배우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그 숨겨진 뜻을 찾아내는 고뇌와 치열한 훈련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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