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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면의 소리 들어라"…재독 사진가 천경우씨, '인간 조각' 퍼포먼스 '버서스(Versus)'

낮선이와 어깨를 기대며 '공존'
'명상의 시간' 추구하는 쉼표

‘세계의 심장’ 타임스스퀘어에 잠시 시간이 멈추는듯했다. 낯설은 뉴요커와 관광객들이 처음 만나 하늘색 벤치에 마주보고 앉았다. 피부색과 언어, 출신지와 종교를 초월한 남녀노소 50여명은 가방을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껐다. 서로의 머리를 상대의 오른쪽 어깨에 기댄 후 900초 동안 눈을 감고, 입도 다물었다.

몸으로 각각 선(線)이 된 커플은 사람 인(人)자가 됐고, 커플들은 다시 점(點)이 되어 사람 인(人)자의 한 획을 그었다. ‘인간 조각’이 된 50여명은 맥박소리를 들으면서 15분간 자신과의 대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독일 브레멘에 사는 사진작가 천경우(42)씨가 25일 타임스스퀘어에서 퍼포먼스 ‘버서스(Versus)’를 네 차례 열었다.

2007년 서울에서 시작된 ‘버서스’는 바르셀로나와 리스본에서 펼쳐진 바 있다. 타임스스퀘어얼라이언스 공공미술 프로그램에 초대된 천씨는 이번에 뉴욕 땅을 처음 밟았다.



“타임스스퀘어는 ‘버서스’ 프로젝트에 가장 잘 맞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의 덩어리’인 빌보드가 빽빽한 타임스스퀘어는 ‘광장’이 아니라 음과 양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익명의 섬’인 것 같다. 인종·국적·종교를 망라한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서 누구도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장소다.”

‘버서스’ 뉴욕 퍼포먼스엔 타임스스퀘어얼라이언스에 미리 등록한 이들과 즉석에서 참가를 수락한 행인들이 고루 섞였다. 이들은 영문/스패니시/한글로 된 쪽지를 받았다. 규칙은 첫째 낯선 파트너를 택할 것, 둘째 마주보고 앉아 머리를 상대의 오른쪽 어깨에 기댈 것, 셋째 눈감고, 말하지 않고 15분간 머물 것.

영국에서 온 관광객 재니스 브룩은 40회 생일을 기념한 뉴욕 관광 마지막 날 타임스스퀘어를 지나치다가 참가하게 됐다. 브룩씨는 “마지막 쇼핑 후 공항으로 가기 전, 모처럼 평화로운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이 집에서 뭐하고 있을까 생각했다. 어서 집에 돌아가 아이들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루 36만4000여명이 지나는 ‘세계의 교차로’에서 브룩씨의 파트너가 된 이는 뉴요커 아네트 스웨어스빈스키씨. 그는 “같은 예술가로서 커뮤니티와 함께 하는 퍼포먼스를 지원하기위해 등록했다. 무척 감동적인 퍼포먼스”라고 밝혔다. 이들은 바로 친구가 됐다. “재니스가 다음에 뉴욕에 오면 하이라인파크에 데려가기로 했다”며 흐드러지게 웃었다.

타임스스퀘어 인근 극장기금협회에서 일하는 뉴요커 프랭크 코널리씨는 페이스북에서 정보를 얻은 친구의 추천으로 참가했다. 그는 퍼포먼스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파트너인 호주 출신 제이슨과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코널리씨는 “너무 아름답고, 좋았다! 늘 타임스스퀘어를 지나쳤지만 이런 일은 난생 처음이다. 이방인과 소통하고, 도시의 소리를 흡수하면서 마치 명상하는 기분이었다. 상당히 위안을 주는 퍼포먼스”라고 밝혔다.

천경우씨는 이날 메거폰을 들고 퍼포먼스를 지휘했다. 그는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로 현대인들이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줄었다. 지루한 공간도 없어져 가고 있다. 이 퍼포먼스는 몸만 갖고 나 스스로와 대화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타임스스퀘어에선 2005년 ‘보따리 작가’ 김수자씨가 30여명의 인원을 동원한 퍼포먼스 ‘구걸하는 여인(Beggar Woman)’을 선보였으며, 올 3월엔 재일 조각가 오규석씨가 종이양 24마리 설치작 ‘양의 숫자 세기(Counting Sheep)’을 전시한 바 있다.

☞◆천경우=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졸업 후 독일의 부퍼탈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장시간 노출로 사물의 윤곽을 흐리게 포착하는 기법으로 주목받아 2007년 제 3회 한미사진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뻬르의 초상사진 시리즈 ‘Isabelle Huppert: Woman of Many Faces’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베르 드와노 등 70명의 사진작가와 함께 참가했다. 2003년부터 사진과 퍼포먼스 작업을 병행해오고 있다.

박숙희 문화전문기자 suki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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