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박스'는 울고 있다
"못 키우는 아기, 대신 이곳에…"
한국 주사랑공동체 이 목사 고안
LA타임스는 후원 취지로 보도
정부 "영아유기 조장" 폐쇄 압력
핏기도 채 가시지 않은 꼬물거리는 생명을 버린 엄마는 그렇게 변명했다. '너가 미워서 이러는 게 아니다'는 쪽지를 남긴 엄마도 있다. 배냇저고리만 입힌 아기를 놓고간 아빠는 '죽을 죄를 졌다'고 썼다. 밤새 피워댄 담배 냄새로 아기 이불은 찌들어 있었다. 핏줄을 버린 이유는 하나같다.'형편이 어려워서'다. 바라는 점도 같다.'잘 키워달라'였다. 부모들은 자기가 버린 자식을 남이 잘 키워주리라 믿고 싶어했다. 베이비 박스에는 아기와 함께 부모의 죄책감도 버려진다.
서울 관악구 난곡동 가파른 언덕에 자리잡은 장애아보호시설 '주사랑 공동체'앞.
새벽 여명이 퍼렇게 남은 외벽 아래 덩그라니 기저귀 가방이 버려져있다. 어디선가 아기가 서럽게 운다. 울음 소리는 벽에 붙은 '베이비 박스' 뒷편에서 들린다. 마치 기저귀 가방처럼 아기도 문을 통해 저편으로 버려졌다.
베이비 박스는 아기용품을 기부하는 곳이 아니다. 아기를 버리는 곳이다.
박스 옆에 쓰인 안내문구가 아기 울음소리를 더 슬프게 한다. '불가피하게 아이를 돌보지 못하거나 키우지 못한 처지에 있는 미혼모 아기와 장애로 태어난 아기를 유기하거나 버리지 말고 여기에 넣어주세요.'
베이비 박스는 지난 2009년 12월 한국 최초로 설치됐다. 이 곳이 유일하다. 주사랑 공동체를 운영하는 이종락(57) 목사가 고안했다. "아무데나 아기를 유기하지 말고 차라리 여기에 두면 맡아 키우겠다"는 의도에서다.
지난 6월 이 목사의 선한 의도는 전세계에 알려졌다. LA타임스가 20일자 1면과 5면에 걸쳐 주사랑공동체의 실정을 보도하면서다.
기사의 취지와 논조는 후원자를 모집하기 위해서였지만 당초 의도와 달리 찬반 논란을 불렀다. 일부 시민운동단체가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며 반대했다.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한국의 부끄러운 사회상이 해외로 알려지자 보건복지부는 "부모의 죄책감을 덜어줄 우려가 있는 베이비 박스는 철거되야 한다"는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이 목사는 "베이비 박스가 없는 세상이 오길 가장 바라는 사람은 나"라면서도 "길바닥에 버려진 아기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고만 있으라는 소리냐"고 반문했다.
사진의 베이비 박스 문 저쪽에서 애타게 엄마를 찾고 있는 아기는 나중에 '생명'이라 이름 붙여진 사내아이다. 생후 2개월도 안된 지난 2월1일 버려졌다.
손발이 꽁꽁 언 채 발견된 생명이는 '뇌 갈림증'을 안고 태어났다. 엄마는 장애아를 키울 형편이 안된다며 "(자신을)찾지 말아달라"는 쪽지를 남겼다. 생명이는 이후 5개월간 11차례 뇌수술을 받았다. 또다시 버려지기 싫다는 듯 생명이는 꿋꿋하게 이겨냈다.
생명이는 이 박스에 5번째 들어온 아기다. 설치한 지 2년이 채 안되는 동안 버려진 '생명'은 스물한명이다. 매달 한명꼴이다.
가로 70㎝ 높이 60㎝ 깊이 45㎝. 작은 공간에서 아기들은 서럽게 생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엄마는 불러도 오지 않는다.
정구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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