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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엄빠일기] 가을이 되며 더 깊어진 '주부 우울증'

여동생과 불편한 통화후 마음 다잡아

난생 처음 찾아온 주부 우울증은 가을이 깊어지면서 한층 정도가 심해졌다. 예전의 캘리포니아와 달리 늦가을에 접어들면서 을씨년스러운 날이 잦아진 것도 우울증을 부추기는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해가 쨍쨍하면 좀 나은데 곧 비라도 뿌릴 것 같은 우중충한 날씨면 마음이 한결 더 울적해졌다.

하늘에 회색 구름이 짙게 드리워진 날이면 거의 예외 없이 답답하면서도 동시에 암울한 기분이 들었다. 햄달새와는 아파트의 3층에 세 들어 살았는데 어느 날인가 커다란 거실 창문을 향해 머리를 박고 달려가고픈 충동을 느꼈다. 그 날 이후로 베란다를 향해 돌진하고 싶은 충동이 한동안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고개를 쳐들곤 했다.

대화가 극도로 제한된 생활은 정신적 고립감을 자초하기 쉽다. 나이 50줄에 접어 든 외삼촌이 처한 상황을 초등학교 5학년인 햄달새가 알리 없었다. 눈치가 또래들보다 빠르다지만 외삼촌의 심정을 읽고 대화해 줄만한 상대는 전혀 못됐다. 더구나 햄달새 또한 미국 생활이 1년 가까이 돼가면서 나름의 매너리즘에 빠져들고 있었다. 학교-과외-집으로 이어지는 일상이 반복되면서 햄달새 또한 조기 유학 초기의 호기심을 잃고 한편으로 심드렁해지는 면도 있었다. 또 사춘기가 막 시작되는 시점이어서인지 묘하게 꼬인 언행을 하면서 나를 괴롭힐 때도 많았다.

햄달새의 그런 언행은 그렇잖아도 우울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밥을 차려주는 것이며 학교에 데려다 주는 것들이 다 지겨워지고 무의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서울의 햄달새 엄마에게 거푸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야 안 되겠다. 아이를 되는대로 최대한 빨리 서울로 철수 시켜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도 감당하기 힘든데 내가 햄달새를 제대로 봐줄 수 없을 것 같다."



앞서 내가 우울한 심경을 호소한 탓에 동생은 그 사이에 나름 각오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예정보다 훨씬 빠르게 햄달새를 서울로 되돌려 보내고 싶다는 말에 나름 충격을 받았던지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아~ 어떻게 달리 방법이 없을까." 동생은 제 딸의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나름 과감하게 조기 유학을 감행했는데 예상보다 조기에 딸의 미국 유학 생활이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아주 답답한 모양이었다. "오빠 심정 이해해. 그렇게 힘든 상태라면 별수 없지. 데려와야지." 동생은 적잖게 실망한 목소리로 그렇게 하자고 했다.

동생과 통화를 끝내고 나니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사소한 약속에도 목숨을 걸다시피 하며 살아왔는데 봐주겠다고 자청하며 미국으로 데려온 조카를 갑자기 힘들어서 더 이상 돌볼 수 없다고 일방 선언한 내 스스로가 원망스러워졌다. 50 평생 처음 느껴보는 색다른 위기감이 몰려들었다. 사람은 몸이 아파도 살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병들면 생을 지탱하기 어렵다. 마음의 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절절하게 느꼈다.

동생에게 전화를 통해 최후 통첩과 같은 말을 건넨 바로 그날 저녁 어느 순간 불현듯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햄달새를 서울로 되돌려 보낸다 하더라도 장년을 지나 늙어갈 일만 남은 내 입장에서 마음의 병은 언제든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여기서 무너지면 내 인생의 후반부가 언제든 잿빛으로 변할 수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햄달새를 탓할 게 아니라 내 인생을 걸고 우울증과 정면승부를 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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