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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 기자의 엄빠일기] '남자 전업주부' 에게도 어김없이 우울증 닥쳐 "감옥처럼 지겹다"

'다람쥐 쳇바퀴' 인생은 무섭다. 외조카를 키운 지 약 1년 만에 그런 사실을 절감했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 여자 조카와 매일 씨름하는 일이 비슷하게 되풀이되던 어느 날 갑자기 사는 게 지겹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미국에서 한국 남자가 그 것도 전업주부로 사는 일은 참으로 만만치 않다. 주변에 한국 주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설령 한국 주부가 있다 해도 수다를 떨거나 같이 쇼핑을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다.

친한 친구들이 예닐곱 명 있었지만 그들은 전형적인 한국 남성들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낮 시간에는 회사 일을 하거나 자신들의 가게를 돌본다. 어쩌다 한번씩 예컨대 두세 달에 한 차례쯤 LA 한인타운에서 친구들의 모임이 있었지만 참석 자체가 쉽지 않았다. 저녁 시간 햄달새를 혼자 남겨 두고 집을 빠져나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기 같은 일상은 사실 창살 없는 감옥 생활과 거의 엇비슷한 것이다. 아침에 밥해 먹이고 학교 데려다 주고 데려 오고 또 과외 데려다 주고 데려 오기를 반복하는 생활은 사람을 정신적으로 골병 들게 할 수 있다. 50 가까운 지금까지 인생에서 전혀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무기력함에 더해 기분이 편치 않은 나날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먼저 햄달새의 엄마인 서울의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빠 그 거 일종의 주부 우울증이야. 정말 미안한데 내가 휴가를 내서 미국에 갈 테니 오빠가 그 동안 쉬면서 재충전을 좀 할래." 여동생은 자초지종 내 얘기를 듣더니 주부 우울증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40대 후반인 여동생 말로는 자신의 친구들 가운데도 주부 우울증을 경험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동생의 '진단'을 받고서는 아이들 엄마에게는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남편이 시누이 딸을 키우다가 우울증에 걸렸다면 좋아할 여자가 있을 리 만무하지 않는가. 괜히 올케 시누이 사이에 균열을 내고 싶지 않았다. 아이 엄마는 내가 햄달새를 1년 가까이 키우는 동안 한번도 시누이 즉 내 여동생에 대한 불만 같은 걸 내비치지 않았다. 다만 예전에도 혼자서 두 아이를 키웠는데 이번에는 여자 조카아이까지 맡아 기르게 된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곤 했다. "여보 미안해요. 내가 어쩌다 보니 엄마로서 내 몫을 못하고 당신한테만 부담을 지우게 되네요"라고 되풀이해 말하곤 했다.

그러나 햄달새를 키우면서 찾아온 우울증은 2000~2006년까지 딸.아들을 혼자 키울 때는 느껴보지 못한 것이어서 한결 힘들었다. 당시는 회사에 메어있는 몸이어서 새벽 6시도 못돼 일어나 밤 8시 가까이 돼서야 귀가할 만큼 빡빡하게 생활한 탓에 우울증 같은 걸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좀 쉬고만 싶었다.

하지만 당시에 비해 햄달새를 키우면서는 남는 시간이 훨씬 많았지만 그 시간들이 대체로 울적했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 또한 오늘과 비슷한 날들이 계속되는 삶을 사는 주부들 가운데 가끔씩 일탈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데 그네들의 심정 또한 이해할 수 있을 듯 했다. 결혼 이후 대략 25년 가까운 세월을 모범까지는 아니더라도 평균적인 아버지 남편 노릇은 한 것 같은데 주부 우울증이 계속되면 무슨 사고라도 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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