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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 마당] 이름을 불러줄 때

이영숙/미주중앙일보 신인문학상·논픽션 수상

어느 신문에서 읽었다. 한 젊은이가 잘못된 길로 빠져 부모의 속을 엄청 썩이고 있었다.

집을 뛰쳐나갈 때마다 엄마는 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돌아오라고 소리쳤다. 엄마의 부름을 무시하고 나가던 아들. 시간이 지나 엄마는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어느 날 아들이 집을 뛰쳐나가는 것을 보고도 부르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나가면서도 너무나 이상한 아들의 마음. 결국 그날 크게 사고를 치고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나중에 아들은 "왜 그날은 엄마가 날 부르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그날도 엄마가 나를 불렀다면 상황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고 아쉬워했다. 그 청년은"아이들이 잘못할 때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이름을 불러주세요"라고 했다.

내 아이의 이름이 '은별'이다. 난 아이를 부를 때 자주 "별아"하고 부른다. 미국에 와서 미국이름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잘 부르지 않는다. 그저 가끔 분위기 따라 한 번씩 불러줄 뿐. 사람들이 아이의 한국이름이 '은별'이라는 말을 듣고 나면 항상 "이름이 참 예쁘다"고 한다. 흔치 않는 자기의 이름에 대해 듣는 것을 아이는 퍽 좋아한다.

며칠 전 딸아이가 자원봉사자로 나가는 시각장애인 센터에서 일을 마치고 밥을 먹는 시간에 "은별아 많이 먹어"라는 소리를 들었단다. 누군가 보지도 않고 순간적으로 "네"라고 대답했다. 그래 놓고 즉시 누구지? 하는 생각에 주위를 살펴보아도 아무도 자기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두어 번 더 "은별아" "별아"하는 소리를 들었단다. 나중에 보니 예닐곱 살 된 여자아이가 아마 이름이 같은가 보았다. 그곳에 처음 온 한쪽 눈이 실명이 된 아이였다고 했다.

자기의 한국이름에 대해 별 생각이 없던 아이가 그날 이후로 한국이름이 새롭게 다가왔나 보다. 누군가가 '은별'이라고 부르면 한국 생각난단다. 특히 어디에서건 "별아"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것은 '엄마'란다. 그 다음은 아빠 그리고 할머니가 생각이 난다고. 자기를 부르는 소리든 남을 부르는 소리든 상관치 않고 '별아'라는 단어를 들으면 언제나 그렇게 연상이 된단다. 참 따뜻한 마음이 된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하는 시간은 아침 시간이었다. 학교 갈 준비로 몹시 바쁨에도 불구하고 딸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자기의 감정을 이야기했다. 자신의 이름과 가족을 함께 말하며 글썽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하는 딸. '별아'하는 그 한마디가 엄마를 가족을 생각하는 순간이 된다는 게 나에게도 울컥 가슴 설레는 말이다.

문득 김춘수님의 '꽃'이 생각난다.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그것은 따뜻함 정감 그 이상의 것이 아닌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평범하게 누구나에게 있을 수 있는 몸짓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이름을 불러준 순간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다니. 불러준 이름으로 인해 서로에게 의미가 되다니.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 이렇게도 소중하구나. 내가 딸의 이름을 불러줄 때 딸은 진정 내 가슴에 묻히는 딸이 되는가.

'은별아'하는 말보다 '별아'라는 말이 더 가슴에 깊이 인식되는 이름이라니. 그것은 바로 한국적인 사고가 아닌가. 나도 누군가가 '영숙아'라고 부르면 조금은 거리감을 느낀다. '숙아'라고 부르면 훨씬 가까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아무나 나를 '숙아'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님이나 언니 오빠 그리고 친한 친구가 아니면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그 표현은 바로 고향이다. 내 가슴에 묻힌 고향인 게다.

난 그래서 고향이 좋다. 고향에 가면 아직도 나를 '숙아'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으니까. 그렇게 불러주면 마음이 편안하다. 답답하던 가슴이 시원해진다. 울적하던 마음도 가벼워진다. 울고 싶을 때도 위로가 된다. 그 한마디. '숙아'라는 바로 그 한마디만 들으면. 각박한 이민생활에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자. 따뜻하게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면 얼마나 좋을까. '님'자는 빼자. '씨'자도 빼자. 그저 편안히 이름을 불러주자. 미국 사회에서 이곳에서 나를 '숙아'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 나는 외롭다.

딸의 말을 듣고 나니 이제는 딸의 영어이름을 부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가능한 '별아'하고 불러야겠다. 더 나중에 딸이 지금의 내 나이가 되어서도 어디에선가 낮선 누군가가 '별아'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문득 잊고 있던 엄마를 생각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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