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독자소통…기사그후] 두 렙돈의 양면

교회 헌금은 민감한 주제였습니다.

짐작은 했습니다만 지난주 종교면의 '교회 헌금 이름이 많아진다'는 기사는 뒷말이 많았습니다.

기사의 요지는 '일천번제' '수박헌금' 등 설명 없이 듣기에는 생소한 새로운 헌금들이 속속 생기면서 교인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기사가 보도된 뒤 전화도 많았고 이메일도 여러통 받았습니다. 제 전화에는 하루종일 메시지 알림등이 깜빡였습니다. 교회 헌금이 할말 많은 주제라는 반증입니다.

독자들의 의견은 서로 달랐습니다. "더 강하게 비판했어야 했다"는 전화도 있었고 "내가 헌금 5달러 냈다고 목사가 교인들 앞에서 망신을 주더라"는 이메일까지 헌금에 대한 실망감이 다수였습니다.

하지만 "금붙이를 걷던 돈을 걷던 우리 교회 살림살이에 왜 간섭이냐" "기자 선생은 얼마나 헌금하느냐"는 반발도 있었습니다.

이번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성경적 헌금'의 정의가 무엇인지 우선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수님과 여러 목사님들께 여쭤봤습니다. 듣기는 했습니다만 제 신학 지식의 부족으로 알 수 없는 단어들과 성경 속 인용구의 바다를 떠다니면서 더 알쏭달쏭해졌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신학의 홍수속에서 한가지 공통분모를 발견했습니다. 다들 '모범적인 헌금'을 이야기하실 때 '과부의 두 렙돈' 일화를 예로 들었습니다.

과부의 두 렙돈 이야기는 마가복음 12장43절과 44절에 나와있습니다. 가난한 과부가 가진 전부인 두 렙돈을 헌금하자 예수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칭찬하는 내용입니다.

모든 분들이 이 일화를 꺼냈지만 해석은 서로 달랐습니다.

한 목사님께서는 "가난하다고 해도 전재산을 바칠 각오로 헌금해야 한다"고 구절대로 해석하셨습니다.

반면 또 다른 목사님께서는 "돈을 쌓아두고도 헌금하지 않는 인색한 부자들을 꾸짖기 위함이지 가난한 이들에게 전재산을 내라는 뜻은 아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쪽의 해석이든 부자나 가난한 이나 불편한 교인이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다만 제 부족한 이해로 한가지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조물주인 하나님을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나를 창조한 창조주이자 내 모든 형편을 아는 절대자라는 뜻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아니고 땅에 계신 육신의 아버지도 가난한 자식에게 전재산을 요구할 것 같지는 않다는 1차원적 생각입니다.

헛갈리는 찬반론 사이를 왔다갔다 하던차에 한 장로님께서 속시원한 대답을 해주셨습니다.

"헌금은 교회에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렙돈은 로마시대 가장 작은 화폐 단위의 동전입니다. 당시 막노동 일꾼의 하루 품삯이 1데나리온이었다고 합니다. 1렙돈은 데나리온의 1/128밖에 안 되는 보잘 것 없는 금액입니다. 지금 화폐 단위로 환산하면 두 렙돈은 1달러를 조금 넘습니다.

두 렙돈은 과부의 품안에서 '짤랑' 소리를 냈을 것임에 분명합니다. 헌금함 속의 짤랑거리는 소리를 달가워할 교회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비록 짤랑 거릴 지라도 어떤 이들에게 가슴아픈 전재산일 수 있습니다. 헌금은 교회의 것이 아닙니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