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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21세기 금융위기 시대의 분노법

안 유 회/ 편집국 코디네이터

토요일인 지난 달 17일 수백 명이 월스트리트에 모여들었다. 캐나다 토론토의 미디어 단체 애드버스트가 '연방정부에 대한 자본의 영향력을 없애기 위해' 기획한 '월스트리트 점령(Occupy Wall Street)' 운동의 시작이었다. 금융과 국가 파산 위기 경기 침체와 실업사태 더블딥 우려 속에 벌어진 시위였지만 참가자는 적은 편에 속했다. 큰 주목도 받지 못했다.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은 주식 시장이 문을 연 19일 언론에 간간이 보도되기 시작했다. 24일엔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며 80여 명이 연행됐다. 이 때부터 시위대 대부분이 대학 졸업 뒤 취업을 하지 못한 20대라거나 이들이 '부자에게 과세를' 등의 팻말을 들었다는 구체적인 보도가 나왔다.

이에 동조해 샌프란스시코에서 지난 달 29일 시위대들이 씨티은행과 체이스은행 점유 시도를 하거나 찰스 슈왑에 진입하려 했지만 '금융기관 점령' 운동의 시위대 규모나 파장은 현재로선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그 원인으로 메이저 언론의 소극적인 보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경제 위기가 피부에 닿을 만큼 일상 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상황을 감안하면 언론의 소극적 보도태도만 탓할 건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시위대의 규모나 열기보다 더 주목할 것은 금융기관이 직접적인 시위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 자체다.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금융기관은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돼 왔지만 시위의 직접적 표적이 되진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는 은행에서 시작돼 은행에서 끝난다고들 한다.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은행이 원망의 대상이 된다. 대공황인 1930년대가 은행 강도의 시대였다는 점이 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사람들에겐 은행이 내 재산을 빼앗아간다는 생각이 있었고 이런 은행을 터는 강도를 의적처럼 여기는 경향도 있었다. 영화 '퍼블릭 에너미'의 주인공인 대공황 시기의 전설적 은행강도 존 딜링거는 거액의 현상금에도 시민들의 협조가 거의 없었다. 그가 사살되자 오히려 사람들은 현장에 남겨진 그의 혈흔을 손수건에 묻혀 간직하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그는 악당이면서 영웅이었다.

청년들의 참가가 많은 것도 주목의 대상이다. 그리스와 스페인 등 유럽 청년들의 '분노하라' 시위에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이들은 교육을 마치고도 직업도 미래도 없는 새로운 세대의 저항이 시작됐다고 본다. 개별 국가 안에서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세계적 흐름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은행 강도 한 두명을 영웅시하며 대리만족하는 것이 대공황 시기의 분노법이라면 직접 시위가 지금의 분노법이 될 수도 있다.

'월스트리트 점령' 측은 겨울까지 시위를 계속한다는 계획이지만 이것이 가능할까 의문을 표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생각보다 저조한 참여와 중구난방식 의제 비조직적인 시위대로 그 때까지 끌고 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 소리가 작다해서 무시할 수는 없다. 상위 20%가 미국경제의 80%를 소유하고 상위 1%와 나머지 90%의 연봉 차이가 36배에 이른다는 통계가 그렇게 말한다. 실제로 이들은 '우리는 99%다' 운동도 전개하고 있다. 자신의 메시지를 담은 사진을 보내면 사이트에 게재하는 방식이다.

상주하는 시위대 때문에 불편을 느끼면서도 시위대에 부엌과 화장실을 내주고 음식을 주는 주민들이 있고 주민 모임에 시위 반대 결의안이 제출됐으나 부결됐다는 사실도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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