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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픈 것 너무 많아…남은 인생 논스톱으로 달려야죠"

10여 가지 취미생활로 나이 잊는 김정자씨

알공예·뜨개질·꽃꽃이부터 합창·기타·크로마하프까지
LA폭동 때 가게 전소·남편 쓰러진 후 인생 계산법 바꿔
나누는 기쁨 속 소소한 행복 누릴 수 있으면 '괜찮은 삶'


김정자(68)씨는 논스톱이다.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면서도 "바빠 죽겠어"를 연발한다. 흘러가는 1분 1초가 아까워서 마음이 급하단다.

곱게 분칠한 얼굴과 달리 손과 말은 매우 급하다. 꽃꽂이가 취미라고 들어 조용하고 단아한 여인을 기대하고 있던 터였다.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빨리빨리 안 움직이면 다 못하고 죽을 것 같아."

김씨는 욕심이 많다. 평소 즐기는 취미만 십여 개. 집안에는 직접 만든 공예품과 액자 종이소품이 가득하다. 거실 소파 한쪽엔 코바늘 꿰진 무릎 담요가 여러장 향초를 갈아 넣은 수제 포푸리가 쌓여있다. 한 시도 쉬지 않는 손마디가 울퉁불퉁해 보인다.

"손을 가만두질 못하니 이럴 수 밖에. 그런데 난 하고 싶은 건 꼭 해야 직성이 풀려요. 갓 태어난 딸을 포대기에 둘러업고 기타 레슨받으러 다닐 정도였으니까(웃음)."

요즘 가장 열정을 쏟고 있는 건 합창연습. 성악을 전공했지만 무대는 언제나 떨린단다. 올해 초 다시 결성한 크로마하프 모임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재밌다"는 말을 마구 쏟아내는 그의 입술이 의심스럽다. 나도 질 세라 "진짜 즐거우세요?"를 몇 번이고 되받아친다.

요일별로 짠 그의 스케줄 장부는 말 그대로 까맣다. 네모 칸마다 작은 글씨로 뜨개질.꽃꽂이.성경요약.과일장식 등이 빼곡하게 쓰여있다. 글자 하나 써 넣을 틈이 보이질 않아 왠지 답답하다. 젊은이도 혀를 내두를 정도. 너무 바빠 힘들진 않느냐고 묻자 "할 일이 많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건 다 거짓말"이란 독한 말을 한다. 스트레스는 긍정적 긴장감이라는 것. "긴장감을 늦추면 안 돼요. 심심할 틈도 만들지 말고. '나는 왜 사는가?' 싶을 때가 종종 오는데 그 틈 사이로 오는 거야. 피곤해도 무조건 밖에 나가야해요"라며 이젠 궁중요리를 배우고 싶단다. 자식들도 두 손 두 발 다 든 열정이다.

그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올까? "(크게 웃으며) 딸이 내 심부름 때문에 힘들어 죽겠대. 일 좀 만들지 말라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요?"라며 "내가 직접 제작한 하프연주 CD 한번 들어볼래요?"라고 갑자기 묻는다. 역시나 화제전환이 빠르다.

김씨의 창가엔 물먹은 꽃들이 나란히 서있다. 빨갛고 노랗고 보랏빛이다. 가을 저녁 살랑이는 바람에 꽃잎이 흔들린다. 언제 어디선가 '꽃과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노랗게 말랐다고 버렸으면 이렇게 예쁜 꽃을 못 봤을 거야. 뭐든지 한 번쯤은 기회를 줘야해"라며 9달 만에 꽃을 피운 바이올렛을 쓰다듬는다.

며칠 전 태어난 열대어 새끼들도 그의 자랑이다. 물고기 밥 너무 많이 준다고 수족관 주인에게 혼나도(?) 끄떡없다. "얘들이 화낼 것 같아서 하루에 두 번씩 줘요. 난 하루에 세 끼씩 먹는데… 배고픈 건 너무 서글프잖아(웃음). 얘들 밥줄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해요. 하는 일 없어도 배 곯지 않게 해주셔서." 참 소녀 같다. 어려운 것 모르고 큰 구김살 없는 소녀 같다.

어렸을 땐 어땠느냐고 슬쩍 물으니 아버지가 6.25전쟁에서 전사한 이야기를 한다. "홀어머니가 삼남매를 어렵게 키웠지. 항상 어머니 기도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들었죠. 잠결에 축축해서 눈을 뜨면 내 이마에 눈물 방울이 가득하고."

꿈을 찾아 온 미국도 쉽진 않았다. 1986년 LA에 정착한 그는 못하는 영어로 생애 첫 장사에 도전했다. 잘 되진 않아도 네 식구의 희망이었다. "40가에 작은 보석가게 하나를 냈는데 92년 폭동나서 불탔어요. 그땐 절망적이었지"하며 말을 잠시 잇지 못한다. 사람 안 다쳐서 다행이라고 믿고 싶었단다. "다시 어렵게 대출받아 노스 할리우드에 가게를 냈는데 이번엔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졌어요. 정말 감사가 안 되더라고."

남편이 쓰러진 2002년 모든 장사를 접었다. 아픈 사람 못지 않게 온몸이 아파왔다. "남편 볼일(화장실)까지 챙겨줘야 한다는 게 너무 슬프더라고요. 그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겠어." 지금 남편은 어떠시냐고 묻기도 전에 "여보 우리 커피 좀 마셔요"한다. 다리는 조금 절뚝거리지만 건강한 모습이다. "재활병원에서 우리 남편이 의사선생님께 '빨리 나아서 우리 집사람 청소하는 것 도와줘야 한다고 진공청소기만 잡게 해달라'는 거야. 평소에는 표현도 못하면서(웃음)."

김씨는 그 후 인생 계산법을 바꿨다. 왕창 손해 보기로. "지금껏 분에 넘치게 받았어요. 이 정도도 안 하면 도둑놈이야(웃음). 장기기증 서약을 시작으로 그는 노숙자를 위한 무릎 담요 짜기 노래 봉사 등 나눔의 영역을 넓혔다. 나눔이란 단어가 거창한지 손사래를 친다. "다 날 위해서 하는 건데…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잖아요. 선은 다 돌아오게 돼있어."

김씨의 목표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찾는 것. 하루를 잘게 쪼개어 '괜찮은' 나를 만나고 싶단다.

"'박사가 되고 싶다' '부자가 되고 싶다' 같은 큰 꿈은 없어요. 그냥 내 취미활동 맘껏 즐기며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싶어요. 소소한 행복이 가득한 하루. 그 하루가 매일 매일 쌓이면 괜찮은 인생 아닌가요?"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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