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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희 기자의 동네 미술관 명화 산책] LA카운티뮤지엄 '헤르메스와 아르고스'

현대 감시 사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있을까

LA카운티미술관(LACMA)의 아만슨 빌딩 324호에는 현대인에게 각별한 의미를 주는 그림이 걸려있다.

그리스 신화의 한 토막을 그린 '헤르메스와 아르고스'(Mercury and Argus)다. 비너스의 로마식 이름이 아프로디테인 것처럼 머큐리는 헤르메스의 로마명이다. 작가는 램브란트의 수제자로 알려진 카렐 파브리티우스.

이 그림은 바람둥이로 유명한 제우스가 불륜을 저지르다 아내 헤라가 '현장 급습'을 하자 증거 인멸을 꾀한 것이 배경 이야기다. 질투의 화신인 아내가 갑자기 나타나자 당황한 제우스는 불륜 상대인 요정 이오를 암소로 둔갑시킨다. 하지만 낌새를 챈 헤라는 100개의 눈을 가진 괴물 아르고스를 고용해 암소를 감시하게 한다. 아르고스는 '초정밀 감시자'인 셈이다.

제우스는 (이오에게) 미안했다. 최측근인 헤르메스에게 아르고스를 '해치우고' 연인인 이오가 감시에서 벗어나도록 했다. 힘에서 밀리는 것을 직감한 헤르메스는 괴물 아르고스를 잠들도록 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 장기인 피리 연주로 아르고스를 잠 재운 뒤 목을 잘랐다. 마침내 제우스는 아내의 감시를 피했고, 이오는 원 상태인 요정으로 돌아왔다.



정보화시대가 오기 전 이 그림은 이성과 감성의 충돌로 해석됐다. 모든 것을 감시할 수 있는 아르고스는 이성을 상징하는 존재다. 명품브랜드로 이름을 알리기 전 헤르메스는 감성의 상징으로 불렸다. 헤르메스가 음악으로 아르고스를 잠들게 하고 목을 베는 것은 감성의 승리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감성의 승리를 가져다주는 것은 음악과 같은 예술이었다.

하지만 그림의 의미는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감시'는 현대 사회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푸코는 현대 사회의 핵심으로 '판옵티콘'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판옵티콘은 중앙에 높은 감시탑이 설치되어 있는 원형감옥을 뜻한다. 감시당하는 사람은 누가 언제 날 감시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불안하고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푸코는 70년대에 이미 이런 감시체계가 사회 전반으로 파고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100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는 말할 것도 없이 감시의 상징이다.

감시 체계는 더욱 강화되고 있고, 반대로 현대인들은 감시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헤르메스는 음악으로 아르고스를 잠재우고 그의 목을 쳐서 감시를 벗어났다. 현대문명을 사는 우리에게 이런 것이 가능한 일일까? 2007년에 발표된 영화 '인투더 와일드'의 주인공 크리스는 모든 문명(감시)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를 누리고자 홀로 산속으로 들어가지만 쓸쓸하게 죽는다. 감시 체계는 우리가 편리한 문명을 누리기 위해 지급해야 하는 대가일지도 모른다.

현대인에게 아르고스의 목을 치는 방법은 '불행하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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