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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신 선물 '나이팅게일 삐에로'

글렌데일 양로병원 재키 문 간호사

매달 노인위한 테마 '깜짝 이벤트'
익살스런 분장에 코믹 연기 일품
대우 나은 종합병원 마다하고 입사
아픈 부모 두고 싸우는 자식 '꼴불견'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웃길 수 있다면 뭐든지 못하겠어요?”
글렌데일에 있는 양로병원인 ‘오텀힐 헬스케어센터(Autumn Hill Health care center)’.

수십명 어르신들 앞에 선 그녀는 우스꽝스럽다. 총천연색 가발에 코밑에는 수염까지 그렸다. 현란한 춤에 노래까지 영락없는 삐에로다.

광대 분장을 한 채 비지땀을 흘리는 그녀는 이 병원에서 16년째 근무중인 간호사 재키 문(49)씨다. 그녀의 활약상이 최근 충현선교교회 홈페이지에 소개됐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그녀는 이 교회 집사다.



그녀는 160여명 병원 직원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수간호사다. 깐깐한 수간호사지만 어르신들 앞에서만큼은 기꺼이 광대가 된다. 벌써 수년째 매달 1~2차례씩 시기에 맞는 테마를 정해 깜짝 이벤트를 열어왔다.

입원중인 99명 노인들에게 문 집사는 딸이자 며느리고 친구이자 아내다. 노인들은 그녀를 '천사'라고 부른다.

"처음 방문한 분들은 제 공연을 보고 절 이상한 여자로 보기도 해요. 동작은 크고 굼뜬데다 노래도 고함에 가깝거든요."

그녀의 망가짐은 노인들을 위한 배려다. 노인들이 눈이 잘 보이지 않으니 몸짓을 크게 할 수 밖에 없고 귀가 들리지 않으니 고함 지르듯 노래를 불러야 한다.

일반 종합병원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춘 그녀가 양로병원을 선택한 이유는 한국에서 신입 간호사로 근무하던 시절 깨달은 바가 있어서다.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일했는데 허무하더라고요. 간호사인 제가 간호할 시간이 없었어요. 환자들은 대개 오자마자 죽던지 퇴원하던지 중환자실로 가버렸거든요."

1년 후 미국으로 이민오면서 그녀는 좀 더 의미있는 간호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양로병원을 선택했다. 올해로 어르신들을 보살핀 지 28년째다.

그간 양로병원은 많이 바뀌었다. 평균 수명이 늘면서 이름부터가 바뀌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양로원의 역할을 했다면 최근에는 '재활센터(Rehab-center)'의 개념이 강하다.

"이곳에서는 70대를 노인으로 생각 안해요. 80대 후반부터죠. 다들 오래 사시니까 예전에는 뼈가 부러지면 치료로 끝났는데 최근에는 물리치료를 받겠다는 노인들이 많아 시설과 인력이 보강되고 있는 추세에요."

30년 가까이 어르신들을 모시면서 받아들이기 힘든 아픈 경험도 많았다. 치매에 걸린 부모를 찾은 자녀들이 서로 니탓 내탓하며 언성을 높일 때가 가장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제발 아픈 부모 앞에서 싸우지 마세요. 자식들이 집에 가고 나면 그만이지만 어르신들은 밤새 서럽게 울어요. 간호사들도 달래면서 함께 우는 것 아세요?"

또 있다. 방치되는 노인들의 죽음이 늘고 있다. 연고자가 있어도 찾지 않거나 연고자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녀 표현대로라면 '현대판 고려장'이다.

죽음이 허다한 곳이다 보니 밝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그녀의 광대 노릇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또 간호사로서 그녀의 독특한 직업관도 삐에로가 되는 데 한 몫했다. 그녀는 간호사면서도 웃음이 약보다 훨씬 강력한 치료제라고 믿는다.

"모든 약은 건강한 사람을 임상실험했어요. 장기나 면역이 약한 노인들에게는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 지 몰라요. 반면 웃음은 몸과 정신 모든 면에 효과가 보장된 만병통치약이죠."

그녀의 꿈은 은퇴후에도 노인들을 돕는 자원봉사자로 일하다가 지금 일하는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벌써 입원실까지 마음속에 정해놨다고 한다.

"보통 한인들은 양로병원에 부모를 모시면 불효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시설 좋고 아프면 바로 치료받을 수 있어요. 남들 시선 때문에 부모를 집에 모시고 방치하는 것이 오히려 불효라고 생각해요."

양로병원 어르신들이 자식들에게 가장 바라는 바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두가지에요. 자주 찾아오지 않아도 좋아요. 한번 오더라도 오래 대화하길 원하시죠. 만나서는 손 잡아주고 안아주고 키스해주길 원하세요. 자식들도 자녀를 키우는 부모잖아요. 그 간단한 진리를 모르시는 것 같아요."

그녀는 오늘도 삐에로 분장을 한다. 진정한 백의의 천사가 되기 위해서.

정구현 기자 koohyu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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