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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마이 코리안 델리' 외

백인 사위와 한국인 장모의 좌충우돌 식료품점 운영기

'여름 배낭 속의 책' 본격적인 휴가 시즌이다. 긴장을 풀고 계곡에서, 혹은 바다에서 몰입해 읽는 책은 꿀보다 달다.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공동 기획하는 ‘이 달의 책’ 8월 주제는 ‘여름 배낭 속의 책’이다. 어느 산만한 장소에서라도 일단 잡았다하면 빠져들게 하는 소설, 읽다가 자꾸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논픽션 에세이, 재미와 깊이를 두루 갖춘 책 세 권을 골랐다. 책과 더불어 재충전의 시간을 만끽하시길.

마이 코리안 델리
벤 라이더 하우 지음
이수영 옮김
정은문고


"나는 모든 결정의 순간마다 우주적 의미를 고려하는 사람이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윤리의식의 시험대에 오르며 몸에 걸친 실오라기 하나에도 나의 개성을 표현하는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과민증 부르주아 자기애와 과잉교육의 결과이며…."

 '나'는 미국의 저명한 문예지 '파리 리뷰'(The Paris Review)의 편집자다. 비록 박봉일 지언정 원고 더미에 파묻혀 지내며 남부러울 것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2002년 모든 게 바뀌었다. 그가 쓴 '마이 코리안 델리'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2002년 여름 나와 처가 식구들은 델리(deli) 하나를 사기로 했다."



 한국 여성과 결혼한 백인 남자가 처가살이 하며 식료품점을 운영한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 에세이다. 이 책을 먼저 읽은 미국의 한 독자는 리뷰에서 "할렘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데도 손 안에 든 책에 푹 빠져 있다"고 했는데 그게 전혀 과장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지은이의 생생한 묘사력 때문에 책을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주인공과 함께 뉴욕 구석을 누비며 가게 자리를 보러 다닌 기분이다.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리게 하면서도 문화충돌 가족 사랑 돈과 일 등의 주제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와 폴리머스에 정착한 선조의 후예 문화인류학자 부모 밑에 자란 전형적인 청교도 기질의 '나'와 '권투선수 챔피언'같은 장모 케이는 생각이 달라도 너무 다른 인물이다. "제값 제시하면 얕본다"며 모든 사람과 막무가내 흥정을 벌이는 장모에게 "가격표란 협상을 시작하는 하나의 지점일 뿐이다." 장모는 계산대 앞에서 "휘몰아치는 말발굽과 비슷한 소리"를 내며 단추를 누르고 사위 앞에 두 브랜드의 콘돔 상자를 들이대며 '어떤 게 더 잘 팔리겠느냐'고 다그치듯 묻는다. 그러니까 장모 케이는 저돌적이고 직설적이고 뼈빠지게 일하는 '한국인'의 전형인 셈이다.

 책을 읽다보니 엉뚱하게도 "시시한 배우는 있어도 시시한 배역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평범한 생활과 주변의 '그렇고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작가의 독특한 시선과 솜씨에 따라 어떻게 보석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게의 물건 자리가 살짝 바뀌어도 불평해대는 단골손님 델리와는 또다른 세계인 파리 리뷰 편집실 친척들이 끊임없이 들이닥치는 스태튼 아일랜드의 박씨네 집 이야기는 재미있고 애틋하고 충분히 극적이다.

 책은 여러 겹의 껍질로 싸인 양파같다. 소규모 자영업 경험담이 가장 바깥 쪽의 껍질이라면 한국과 미국 문화 차이 이주민의 삶 다인종이 모여사는 뉴욕이라는 도시 일한다는 것의 의미까지 다룬다는 점에서다. 이처럼 '핫한' 재료를 경쾌한 위트로 버무릴 줄 아는 작가가 새로 등장했다. 반갑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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