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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한국인 미술가들-화가 조성모] 인간과 자연·문명에 대한 사랑을 그린다

삶에서 느낀 감성을 회화성 높은 화면으로 표현
길·나무·숲·달·꽃 등 소재 문학적 서정세계 구축

화가 조성모는 1960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해 성장했고, 중앙대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1992년 미국으로 유학 와 1996년 브루클린에 있는 프랫대 대학원을 졸업했고, 머시칼리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미국에 오기 전에는 1987년부터 1991년까지 한국의 여러 대학에서 시간 강사로 근무하면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다. 지금은 퀸즈에 거주면서 롱아일랜드시티에 작업장을 마련하고 미국과 한국 등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조성모는 그 동안 한국, 일본, 미국 등에서 개인전을 26번이나 열었고, 유수의 그룹전에 120여회 참가했다. 대학 재학 시절에는 전국 대학미전에서 문교부 장관상을 수상했고, 중앙미술대상전(중앙일보)과 동아미술대상전(동아일보) 등에서 입상한 경력을 갖고 있다.

조성모는 최근 뉴욕시 퀸즈 롱아일랜드시티에 작업장(아뜨리에)을 마련했다. 인터뷰를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오랜 작가 생활 끝에 나름대로 훌륭한 작업장을 마련한 것에 대해 진심으로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요즘 나는 매우 들떠 있다. 사실 대학 다닐 때는 수업 받고, 잠 자고, 먹는 것을 빼곤 그림 그리는 시간 속에 묻혀 살았다. 그 때 나는 꽤나 행복해 했다. 얼마 전 롱아일랜드시티에 작업장을 만들었는데 아직 전기시설이 안돼 실내 온도가 매우 높다. 그러나 이런 것에 아랑곳 하지않고 그림 쌓을 선반을 만들고 있다. 땀이 마를 겨를도 없이 흘러내리는 데도 나는 그냥 좋다. 가장으로서 가족에 대한 부양 의무에서 벗어나 이제야 다시 그림에만 전념할 수 있다니… 나는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조성모는 생활을 하고 한편으로 예술에 몰두하는 지난한 세월을 거쳐 (실제로는 거의 모든 성공한 예술가들이 겪는 과정이지만) 이제 드디어 전업작가로서 인생과 생활의 모든 것을 투여해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조성모의 그림은 도시 풍경과 자연이 어우러져 있는 반구상 계열의 작품이다. 그의 그림에는 꽃과 나무, 하늘과 구름, 건물과 도로 등이 사실적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부분으로 나뉘어지고, 조화를 이루면서 문학적 서정성을 드러낸다. 그의 그림에는 시적인 감성이 들어 있다. 작가가 갖고 있는 풍성한 감수성이 넘쳐나듯 화폭에 담겨 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작가의 그림에 대한 사랑과 열정, 진지함이 느껴진다. 이러한 그림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은 현대 미술에서 매우 중요한 핵심가치다. 구호와 선언, 메시지가 강조되는 현대미술에서 이러한 조성모의 예술세계는 인간의 내면 세계와 의식을 조형언어로 풀어내는 미술의 핵심가치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조성모의 예술 인생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그가 자라난 환경과 함께 예술가로서의 인식과 감성, 사고가 축적된 과정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길과 나무, 구름, 달, 꽃, 숲, 건물, 도시 등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그의 서정적인 그림들이 그의 인생 여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성모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아마도 그는 운명적으로 화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조성모는 부여초등학교 4년때 소년한국일보 주최 제1회 문화재 그림그리기 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조그만 읍내가 경사가 났고, 그 멀리 사는 할아버지가 학교장을 만나기 위해 왔으니 집안의 경사이기도 했다. 동으로 주물을 떠서 만든 트로피는 오스카상 트로피 모양과 흡사한데 조성모는 지금도 그것을 잘도 데리고 다니고 있다. 조성모는 “그 트로피는 화가로서 사는 것이 너무 어렵고 힘들 때는 악마의 선물 같이 느껴지기도 했고, 때론 나를 붙잡아주는 힘의 원동력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조성모는 이러한 어린 시절을 거치는 과정에서 타고난 감수성으로 생활과 자연, 환경 등에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경험과 감동을 내면에 받아 들인다. 이러한 감수성은 지금도 조성모의 그림 세계를 버티고,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조성모는 자신이 어릴 때 살면서 보고 느끼고 받아 들인 것의 일부를 이렇게 설명한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만 있을 수 있는 집단 보리 밟기. 그 때 발에서 느껴지는 서릿발의 푹신함과 안착감. 그리고 뽀드득 부러지는 서릿발 소리. 강가에서의 게 잡이. 곱디 고운 진흙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올 때 나는 미세한 소리와 모양, 그리고 감촉. 칠흑같이 어두운 밤 금강 어귀에서 횃불을 들고 뱀장어 새끼를 잡던 때의 어둠과 빛이 주던 분위기. 혹시라도 발을 헛디뎌 강으로 빠질까 걱정되는 두려움과 스릴감. 삼촌이 소의 등 위에 나를 태워 줘 그 위에 앉아 길을 따라가면서 보던 미루나무 펼쳐진 한길과 매미소리. 증조 할머니와 할머니께서 한밤중에 나를 깨워 논으로 가 무엇을 막 흩뿌리며 말씀하실 때 아직도 잠에서 덜 깬 상태에서 바라보던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큰 달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수 십리 길을 걸어서, 때론 자전거로 통학하던 시절, 길가에서 보리를 구워서 손바닥으로 부빈 뒤 푸릇푸릇한 보리 알갱이를 털어 넣으며 입가에 묻은 검댕이를 보며 친구들과 함께 웃던 모습. 뻘 벌판에 심어 놓은 무우, 홍당무, 땅콩, 오이, 참외, 수박은 인심 많고 마음이 넉넉한 충청도 시골에서 통학하던 우리들의 유기농 간식거리로써 부족함이 없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겪었던 아름다운 경험과 자연 환경, 그 속에서 만들어진 추억들이 오늘 내 그림을 만드는 기반이다.”

조성모는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처음에는 서울이라는 도시 환경에 잘 적응을 하지 못했다. 자연과 가까이 생활하던 시골 생활과 달리 도시는 대부분이 콘크리트에 쌓여 있기도 하거니와 모든 것이 바쁘고 빠르고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서히 서울 생활에 적응을 한 조성모는 도시의 회색빛과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던 아파트 숲, 70년대 개발붐으로 깎이고 파헤쳐지는 산과 들, 한강의 바지선들. 이런 모든 환경이 그에겐 중요한 그림의 소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조성모는 이 과정에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지향하는 ‘허상 + 문명의 시그널’ 시리즈와 함께 인간의 명예와 권력, 물욕 등을 표현한 ‘허상’ 시리즈 작품들을 제작한다. 이 때 그의 그림에는 삶과 도시, 환경을 바라보는 깊은 고뇌가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 있다.

그러던 중 조성모는 친구의 도움으로 뉴욕 등 미국을 여행하는 기회를 가진 뒤 곧바로 작가로서 더 넓은 세계를 체험하기 위해 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1살짜리 딸, 그리고 부인과 함께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화가로서 조성모의 미국 시대가 열린 것이다.

조성모는 유학과 이민생활을 하면서 학비를 벌기 위해 콜택시 회사에서 근 6년 동안 밤에 일했다. 자연히 밤의 모습을 그린 풍경 작품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에 조성모는 어느 날 자신의 그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 작품에 ‘벽(The Wall)’이란 작품이 있다. 언젠가 월드트레이드센터에서 손님을 태우고 뉴저지주 78 웨스트 도로를 타고 가다 뉴왁 근방에서 야릇하고도 무엇인가 의심스런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벽은 높고 그 벽은 아래 어디에선가 비추는 빛에 의해, 주위의 깜까만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유난히 밝게 보였다. 그 밝은 벽의 앞에 있는 나무와 앙상한 가지들은 두 가지의 다른 톤, 마치 강한 흑백의 콘트라스트처럼 보였다. 위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고… 나는 아! 감옥시설이구나, 금방 생각할 수 있었고, 그 때의 장면은 그 당시 내가 느끼고 있었던 어떤 ‘벽’을 표현하는 데 딱 맞아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시각화했고 그 작품은 제목이 그대로 ‘벽’이 됐다. "

조성모는 이처럼 살면서 체험하고 느낀 것을 그림에 담는다. 그의 그림에는 이러한 ‘벽’과 같은 소재도 있지만 오랫동안 추구하는 소재인 ‘길(road)’과 함께 나무, 숲, 달, 꽃, 건물, 도시 등 자연과 문명을 대표하는 모습들이 그려지고 있다. 조성모는 이러한 소재를 화면 위에 합치거나 또는 가까이 배치하는 등의 구성을 통해 세밀하고, 작가의 진지함이 느껴지는 작품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그는 작가로서 자신이 갖고 있는 자연관과 예술가로서의 신념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연은 질서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우리 인간의 모태와도 같다. 그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우리 인간의 인성과 환경, 문명의 변화에도 늘 변함없이 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그 앞에서 더욱 겸허하고 진솔해야 한다. 나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연을 통해 내 심상의 언어들을 시각화 한다. 인간은 스스로 문명의 발전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쳐 때론 자만감으로 자연의 질서에 반하려 하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야기되는 시행착오를 합리화 하거나 감추려 한다. 나는 스쳐 지나가는 자연 풍경 속에서 하나하나의 자연물을 마음에 그린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의 회화 언어와 내면의 정서로 이를 정제해 일기를 쓰듯 화폭에 표현한다. 나는 앞으로도 인간과 자연과 문명에 대한 사랑을 다양하고 깊은 회화적 언어로 표현하고 싶다.”

박종원 기자 jwpark88@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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