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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우울증, 그 실체

노기제/'한국수필' 등단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을 약속하기까지는. 스스로가 우울증이라고 판단하기 전에는 의사의 도움이 필요없다고 생각했던 때문입니다. 확실하게 나타나는 증상을 하나씩 열거했습니다.

언제나 혼자이고 싶습니다.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전화오는 것이 싫습니다. 필요하면 내가 전화를 걸면 됩니다. 어느 곳이든 사람이 모이는 곳은 가기가 싫습니다. 인사를 해야 하니까요. 말을 해야 하니까요. 웃어야 되니까요. 똑 같은 얘기를 두 번 이상 반복해야 할 때는 짜증이 납니다. 어떤 모임이든 내가 가고 싶으면 아무 저항 없이 가면 됩니다. 누구든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사람이면 절대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비록 내게 아주 큰 이익이 되는 말일지라도 듣기 싫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습니다. 운동도 하려들지 않습니다. 미친듯이 즐겨하던 그 많은 취미 생활이 전면 중지 되었습니다. 에너지 고갈 상태입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없습니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 되면 아이스크림으로 적정 칼로리만 섭취하려 합니다. 당연히 가족을 위한 쿠킹이 죽을 만큼 싫어졌습니다.

그리 생각하면 죽고 싶지는 않은가 봅니다. 적정 칼로리 섭취만은 해야겠다고 아이스크림이라도 사다 쌓아 놓는 행위가 피식 웃게 만듭니다.



남들이 보는 나를 대강 적어 봅니다. 항상 밝게 웃는 얼굴이니 걱정거리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뭐가 그리 좋아서 웃고만 사느냐 묻곤 합니다. 그냥 좋습니다. 얼굴 찡그릴 일 없습니다. 나를 가만히 놔 두면 말입니다. 활달한 성격이라 말들 합니다. 붙임성 있는 인간이라 합니다. 아무 이해 관계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습니다. 먼저 다가가고 먼저 말 걸고 먼저 웃어주고 하는 친하기 쉬운 사람입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렇습니다.

그럴지언정 막상 그런 모임에 가기까지는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시달립니다. 가기 싫다는 마음이 먼저 듭니다. 안 갔으면 딱 좋은데 안 섞이고 싶은데 부득이 남편 따라 가야 하고 꼭 가야 하고 등등 어디 사는 게 그렇습니까. 그래서 남편과 티격태격이 시작되고 점점 더 싫어지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심정이 되곤 합니다.

의사가 묻습니다. 언제부터 그런 증상이 생겼느냐고요. 글쎄요. 결혼 전에는 누가 억지로 어디를 가자고 하는 경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 이외에는 의무적으로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어떤 동아리 모임도 활발하게 했던 기억이 없습니다. 내가 원해서 얼굴 내밀었던 몇 번의 모임이 있었을 뿐입니다.

결혼을 하고 남편이 원하는 모임이나 남편의 친구를 불러 들이는 일이 의무처럼 내게 주어졌습니다. 젊었기 때문에 큰 마찰 없이 지난 모양입니다. 그래도 남편은 나 때문에 친구 다 떨어졌다는 소리를 평생 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남편이 얼토당토 않게 내게 불평을 한다고 억울해 했는데 이제 생각 해 보니 내게 잠재해 있던 자폐증상이 원인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난 지금 그것을 우울증이라 자인하고 있습니다. 그렇담 난 평생 우울증으로 시달리고 있었나 봅니다.

의사가 꾸짖습니다.

당신은 지금 서너 살짜리 아이가 아니라나요. 그러니 하기 싫다 사람이 싫다 가기 싫다 등등 싫다 싫다 싫다를 노래 하면 안 된답니다. 그거 누가 모릅니까. 난 내 문제가 뭔지도 알고 그 해답도 알고 있으면서 혹시나 하고 의사인 당신을 찾아 왔지만 역시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또 다른 날 약속을 원하냐기에 고개를 저었습니다.

우울증 걸린 사람들 모임이 있는데 참가해 보겠냐기에 그건 하겠다고 했습니다. 의사의 잘난 체 하는 꾸짖음보다는 각자가 가진 아픔을 내어 나누면 뭔가 이해 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것 같은 희망이 느껴졌습니다.

나의 이런 증상에 조금이라도 사랑을 보이고 싶은 분은 제발 나를 야단치지 말아 달라는 희망사항입니다. 남편이나 친구들이나 가족들 누구든지 나의 치유를 원하신다면 그냥 편하게 떠들어대는 내 증상을 조용히 들어만 주면 많은 위로가 되겠습니다. 그나마 아주 다행스러운 것은 스스럼 없이 나의 이런 모양을 누구에게나 다 말 한다는 것입니다. 듣는 이들은 모두 깜짝 놀랍니다. 나 어디에 그런 면이 있었느냐고 전혀 눈치 채지 못 했었노라고. 그리곤 환하게 웃는 나를 다시 한 번 자세히 봅니다.

섣불리 해답을 주려 노력하지 않는 그들이 고마울 뿐입니다. 그냥 듣고 놀라고 잊어 주는 그런 사람들이 내게는 의사들입니다. 한 번 얘기하고 두 번 얘기하고 모이는 곳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얘기 하고 나면 마치 남의 얘기했듯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언제 내가 그런 몹쓸 감정 때문에 고생을 했었나 싶어집니다.

계절은 바야흐로 여름입니다. 낮 태양은 너무 뜨거워 내 가슴을 태우려 합니다. 차라리 가슴을 열어 헤쳐 놓겠습니다. 단단히 지져 준다면 좋겠습니다. 그 뜨거움으로 사랑을 하면 됩니다. 하고 싶은 일이 생길 것입니다. 사랑할 무언가가 다가 올 것 같습니다. 죽지 못해 하고 있는 해야 할 일들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되어 하고 싶습니다. 여물어 진 가슴을 기대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여름 이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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