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수필 공모 입상작-가작] "남한 사람이야, 북한 사람이야"
김연아
나는 한국 전쟁을 경험한 세대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도 한국 전쟁으로 인한 상처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나에게도 벌써 오래 전 이야기가 되었지만 한국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매 학기 으레 학교에서는 '반공 글짓기 대회'가 열렸었고 단체로 반공 이념에 대한 만화 영화나 이승복 어린이에 대한 반공 영화를 관람하기도 했다.
그 때는 내가 어렸기 때문에 공산주의나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만화 속에서 녹색 옷을 입은 돼지가 동물 농장에 있는 다른 모든 동물들에게 불합리하게 대하던 모습 그리고 아무 잘못도 없이 단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친 이승복 어린이를 처참하게 죽였던 공산당에 대한 이미지는 나에게 있어 막연히 공포의 대상 그리고 절대 없어져야 할 존재 정도로 여겨졌던 것 같다.
또 한 가지 어린 시절의 나에게 있어 조부모가 있는 친구들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여름 방학이 되면 시골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 놀러간다는 친구 또 할머니에게 용돈을 받았다며 자랑하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왜 할아버지 할머니가 안 계실까 부러워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나중에 부모님께 들은 나의 조부모 이야기는 한참동안 나를 슬프게 했던 기억이 난다. 오래 된 흑백 사진으로만 보았던 나의 할아버지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공산당에 의한 인민재판에서 지주라는 이유만으로 죽창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 후 할머니도 6개월이 채 못 되어 한을 가슴에 안고 화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또 일곱 형제 중 제일 큰 아버지도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17세라는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남부러울 것 없이 유복하게 자라던 남은 육남매는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되었고 말할 것도 없이 생존을 위해 무던히 고생해야만 했었다고 한다. 꽤나 공부도 잘 하고 꿈도 많던 큰 고모님은 당시 겨우 여섯 살도 채 안 된 나의 아버지와 동생들을 돌보느라 당신의 꿈도 접어두어야만 했었다고 하셨다.
잠시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져 고아원에서 지내면서 말로만 듣던 보릿고개를 죽을 힘을 다해 넘겨야만 했던 이야기 또 어린 나이였지만 살아야 했기에 방직 공장에서 일해야 했던 고모의 이야기.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들이 단지 한국전쟁이라는 슬픈 한국사가 일어난 시대에 살았다는 이유로 겪어야만 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나는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만약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나의 조부모님과 부모님 형제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마도 유복하고 행복한 가정이 아니었을까?
요즈음 한국에 계신 우리 부모님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아버지는 틈틈이 아버지가 어렸을 때 사셨던 생가에 찾아가 대추나무며 밤 나무를 가꾸시며 시간을 보내고 오시곤 한다.
이제는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지만 깨끗이 보존될 수 있도록 청소도 가끔 하고 오신다고 한다.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를 데리고 그 집에 가셔서 '여기가 아빠가 어렸을 때 살던 집이야'라며 보여주셨었던 집은 이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시골집이다.
아직도 가끔 부모님과 통화할 때 그 집에 있는 나무들을 가꾸고 계신다고 감도 한 바구니 따왔다는 아버지 말에 괜히 뭐하러 힘들게 그랬냐고 타박을 해 보기도 하지만 사실 나도 조금은 아버지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나에게도 어렸을 때 살던 집이 생각나고 그립듯 아버지도 당신이 어렸을 때 행복했던 그 집에서의 기억을 붙잡고 싶으신 것이었으리라.
이제 어디에서도 멸공을 외치는 사람은 없다. 흔히 TV 에서 상영하던 반공 이념을 담은 만화 영화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한국 전쟁으로 인해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상흔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굶어 죽느니 차라리 탈출해서 목숨이라도 연명해 보겠다는 북한의 꽃제비들 이야기며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 주민들은 나몰라라 하면서도 항상 전쟁 준비에는 열을 올리고 툭하면 핵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북한 정권 지도층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같은 한민족이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남북 통일이 되고 내 부모님 세대나 그 윗 세대 어르신들에게는 아직도 살아 있는 역사의 상처들이 아물게 될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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