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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편안함 주지만 가장 편한 곳은 자연"

뉴멕시코주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을 가다

언어는 자연과의 교감
대화를 수첩에 적어서는 안됩니다
자연에 떠돌다 머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자연과 문명 사이 고민
외부 문명의 잣대로 우릴 봐선 안돼
나바호 정신과 언어 지키려고 노력하죠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군은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에 고전을 거듭했다. 특히 암호로 전달되는 교신내용이 번번이 일본군이 해독 당해 작전에 차질을 빚었다. 고심 끝에 미군은 1942년 나바호족 병사들로 구성된 부대를 창설한다. 나바호족의 언어를 암호로 운용하기 위해서였다. 나바호 언어는 높낮이에 따라 의미가 변하며 구조가 복잡해 단기간에 습득하기가 힘들다.

또 입으로만 전해져 내려왔고 북미 대륙 밖에서는 사용된 적이 없어 일본과 독일 연합군은 나바호 언어로 된 암호를 풀기가 쉽지 않았다. 이들 나바호족 통신병을 '코드 토커'라고 불렀으며 이 내용을 2002년 영화로 만든 것이 '윈드 토커'(Wind talkers)다.

인터넷, 트위터, 셀룰러 폰 등 언어를 전달해주는 다양한 매체(Medium)가 발달해 왔지만 나바호족의 언어를 전달해 주는 미디어는 '바람'이었다. 그들의 언어는 바람을 타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실제 나바호족의 언어를 처음 들으면 바람이 속삭이는 소리처럼 들린다. '소통'이 강조되는 지금 나바호족 원주민으로부터 '언어'의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수천 명의 관중이 외치는 함성이 붉은 바위를 뒤흔들었다. 지난 8일부터 이틀간 뉴멕시코주 갤럽시 레드락(Red Rock Park) 공원 내 로데오 경기장에서는 6000여 명의 인파가 몰려든 가운데 '제18회 황소타기 대회'가 열렸다. 공원 주변이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Navajo indian reservation)이다 보니 관중 대부분이 나바호 원주민들이었다. 연례축제로 열리는 이 대회는 나바호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 가운데는 손자들과 함께 참석한 나바호 원주민 레이몬드 킹(63)씨도 있었다.

킹씨의 집은 뉴멕시코주 이얀비토(Iyanbito)의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 내에 위치해 있다. 킹씨의 집을 찾아가는 길 주위로 황무지 벌판 위의 야생마 3마리가 뜨거운 태양 아래 잡목을 뜯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의 붉은 흙먼지 너머로 판잣집들이 나타났다.

이 지역은 킹 씨의 고향이다. 킹씨는 집앞의 나바호족 전통가옥인 원추형 모양의 호간(Hogan)을 손으로 가리켰다.

"제가 태어난 곳입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적지 말아주세요. 생각 없이 의미 없이하는 말이라면 힘이 없죠. 당신과 내가 나누는 말은 수첩이 없어도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말'을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입에서 나온 말은 자연 속에서 떠돌다가 기억을 해야 할 때 우리의 머리로 다시 들어오기 때문이죠."

킹씨의 목소리는 매우 조용하면서도 차분했다. 집 근처 작은 우리 옆에는 10여 마리의 양과 염소들 너머로 말린 옥수수들이 보였다. 옥수수는 나바호 원주민들의 주식이다. 킹씨는 옥수수로 36가지의 음식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은 땅으로부터 나옵니다. 땅은 어머니와 같죠. 우리는 땅을 '어머니 땅(mother earth)'으로 불러요. 어머니가 생명체인 사람을 낳듯이 땅도 많은 것을 낳죠. 이 땅을 사람이 함부로 다뤄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나바호 원주민들은 모든 생명은 자연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자연은 나바호 원주민들 삶의 전부인 셈이다. 그들에게 '언어'는 자연 그 자체였다.

물은 '토오(Toh)'라고 발음한다. 물이 조용히 흘러가는 소리와 방향을 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나바호 언어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연과의 교감을 표출한다.

"우리에게 언어는 자연과 교감하는 것입니다. 나뭇잎을 보고 바람의 움직임을 느끼고 산을 마음으로 대하며 갖는 느낌이 바로 언어입니다. 자연은 항상 살아 숨쉬며 움직입니다. 그래서 나바호어는 동사 중심의 언어입니다."

그러나 나바호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자연의 나바호 언어보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문명의 힘이 너무 강해져서 이젠 자연과 분리될 수밖에 없어요. 문명이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것 같지만 사실 많은 부분에서 인간을 속박하지 않나요. 많은 사람이 문명이 좋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연을 떠나 문명에 익숙해진 것뿐입니다."

킹씨도 20대 초반에 일을 구하러 고향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향한 적이 있다. 하지만 4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야 했다. 당시 나바호 원주민으로서 살아온 그가 문명의 도시에서 적응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우리의 삶은 자연과 가까울수록 우리답다는 것을 느꼈어요. 우리는 인디언이 아니라 네이티브 아메리칸(native american)입니다. 이 땅은 원래 우리들의 땅이에요. 비록 지금 이곳에는 펜스(인디언보호구역)가 쳐져 있지만 이 땅은 우리의 터전이자 삶 그 자체입니다. 외부 문명의 잣대로 우리를 봐서는 안 됩니다."

킹씨는 현재 인근 고등학교 기숙사의 관리자로 일을 하고 있다. 은이나 돌 등으로 나바호족의 전통 문양이나 액세서리 등의 수제품을 만드는 일도 함께 하고 있다. 그가 수제품을 만든 지는 40년 가까이 됐다. 나바호의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고 싶어서다.

"우리는 계속 다음 세대를 걱정합니다. 우리의 터전에서 나바호의 정신을 지키는 일은 우리의 의무입니다. 솔직히 다음 세대를 생각하면 그 정신을 잃어버릴까봐 매우 두려워요. 그래도 아이들에게 나바호의 언어를 계속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나바호족은

나바호(Navajo)족은 미국 최대의 원주민 부족 중 하나다.

미국 내 나바호 원주민들은 현재 3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절반 이상인 약 20만 명의 원주민이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 내 살고 있다. 보호구역은 뉴멕시코주 북서부를 비롯한 애리조나주 북동부 유타주 남동부에 걸쳐 무려 1600만 에이커에 이르는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 1923년부터 나바호족에게 보호구역 내 자치정부를 허용하고 있다. 보호구역은 원주민들 사이에서 '나바호국(Navajo nation)'이라고도 불린다. 현재 나바호국은 3권(입법.사법.행정)이 분리된 형태의 권력구조를 유지하며 부족 대표도 직접 선출하고 있다.

뉴멕시코=장열 기자 rya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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