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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독은 상업성을 결코 잊지 말아야"

인터뷰- 뉴욕 오는 '아시안 스필버그' 서극 감독

11일 뉴욕아시안영화제서 평생공로상 수상
"70년대 뉴욕에서 고군분투하던 때 생각나"


‘영웅본색’‘첩혈쌍웅’‘천녀유혼’‘동방불패’‘소오강호’‘황비홍’‘신용문객잔’…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한국 영화계를 휩쓸었던 홍콩느와르와 무협물은 서극(수이 하크·61)가 제작하거나 감독한 작품들이다.

‘아시아의 스티븐 스필버그’로 불리우던 서극 감독은 주윤발·장국영·유덕화·이연걸·양조위·양가휘에서 임청하·왕조현·장만옥·엽청문·유가령 등까지 초특급 홍콩 스타들을 키워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성룡·원표·홍금보로 대표되는 쿵푸영화가 휘청거릴 무렵 새로운 스타일과 화려한 SF 테크닉으로 무장한 새 영화를 선보인 ‘홍콩 뉴웨이브의 대부’ 서극이 최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서극은 지난해 미스터리 사극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후보에 올랐으며, 홍콩의 아카데미상인 금상장 감독상 등 6개 부문을 석권했다. 올해엔 ‘신용문객잔‘을 20여년만에 3D로 리메이크한 이연걸 주연의 ‘용문비갑’을 만들며 다시 주목받는 중이다.

‘용문비갑’ 후반 작업에 한창인 서극 감독이 이달 뉴욕을 방문한다. 제 10회 뉴욕아시아영화제가 11일 링컨센터 월터리드시어터에서 그에게 평생공로상을 헌사하기 때문이다. 뉴욕 방문을 앞둔 서극 감독과 E-메일로 인터뷰를 했다.

-평생공로상을 받는 소감은.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내 꿈이다. 어느 곳에서도 어떤 상도 받을 것이라고 눈치채지 못했다. 평생공로상을 받는 것은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느껴진다. 내가 과연 어떤 평생의 성과를 거두었는가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난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는가 궁금해진다. 몇년 전 홍콩감독협회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은 적이 있다. 난 평생공로상이란 한 감독이 그의 전 생애에서 모든 것을 다했을 때 결과를 의미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지금 내 커리어의 중도에서 평생공로상을 받게 됐다. 같은 장소에서 또 다시 평생공로상을 또 받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해진다.”

-뉴욕에서 받는 특별한 의미는.

“뉴욕에서 평생공로상을 받는 것은 내게 무척 의미있는 일이다. 70년대 뉴욕에서 살던 당시 아주 초보 영화감독 시절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당시 난 다큐멘터리 영화의 스탭으로 일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내가 지금까지 영화산업에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빈센트 친을 죽였는다’의 한국계 크리스틴 최 감독과도 함께 작업했는데.

“1974년, 뉴욕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던 중 크리스가 대표로 있던 다큐멘터리 회사에서 일하게 됐다. 당시 크리스가 철도 노무자였던 중국계 미국인들과 현대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중국계 미국인들에 대한 다큐 ‘From Spike To Spindle’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난 영화감독 지망생이었으며, 아시안아메리칸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무척 많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크리스와 일하게 됐다. 그 해는 아시안아메리칸이 고용 기회의 평등권을 위해 투쟁하던 해였다. 난 시청 앞에서 시청 앞 시위를 방문하는 훌륭한 스탭들과 함께 일했고, 우린 아시안아메리칸 문제에 관심이 있는 흥미로운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난 당시 차이나타운의 중국 신문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때 난 재정적으로 어려운 두 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동시에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었지만, 난 여전히 매우 가난했고, 생존 문제에서 무척 불안정했다. 어떤 시점에서 임금이 밀리자 크리스는 보상으로 우리에게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우린 매우 일을 열심히 했고, 난 당시 경험에서 많이 배웠다.”

-당신에게 영화는 오락인가 예술인가.

“홍콩의 감독으로서 상업적인 것이 생존의 방법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전략이다. 상업적인 예술이 기본적인 생각이며, 예술적인 것은 필수다. 이 두 가지 사이에 모순된 적은 결코 없었다. 위대한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면, 그는 반드시 예술가로서 매우 다재다능해야 한다. 그리고 살아남으려면, 감독은 상업성을 결코 잊어서는 않된다.... 때때로 난 무언가 특이한 것을 시도하는 실험적인 감독이 되고 싶다. 그런 경우 난 예측하지 못한 결과에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결과야 어떠하든 간에 난 항상 그 경험을 활용해 새로운 프로젝트로 옮겨간다. 실험을 통해서 어떻게 더 재미난 영화를 만들 것인가를 배운다.”

-연출 작품과 제작만 할 작품을 어떻게 결정하나.

“제작자는 복싱을 하고 있는 감독을 링 바깥에서 지켜보는 코치와 흡사하다. 감독과 나누어 갖는 것은 비전이다. 좋은 프로듀서는 감독이 훌륭한 영화를 창작할 수 있도록 강점을 활용하고 증진시키게 해준다. 내가 처음 프로듀서를 맡았을 때, 난 사실 내가 영화를 촬영하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일정 때문에 감독을 데려다가 만들게 했다. 프로듀서 경력의 초창기에 몇가지 영화들은 내가 연출할 작정이었던 프로젝트들이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내가 프로듀서가 되고, 나의 매우 좋은 감독 친구들이 연출하게 됐다. 난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감독들하고만 일할 수 있다. 좋은 친구가 되려면 소통을 잘 해야하며, 생각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 위기 이후 홍콩의 영화산업은.

“중국에 시장이 열린 후 감독들이 만들고 싶어하는 아이디어를 선호하는 투자자들을 선택할 여지가 더 생겼다. 홍콩 영화산업은 동쪽으로, 서쪽으로 시장이 열리는 단계로 들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홍콩의 지역 시장은, 즉 박스 오피스 결과는 이전처럼 이상적이지는 못하다. 그러나, 난 매우 낙관적이다. 난 영화감독들이 매우 창의적이라고 믿는다. 미래에 어떤 종류의 좋은 놀랄만한 사건이 발생할 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만들고 있는 3D 영화 ‘용문비갑’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한 가지 매우 명백한 장애물은 카메라들의 크기와 무게다. 또 하나는 3D에 경험이 별로 없는 효과실과 거래하는 후반작업이 어렵다. 그 외에 3D는 재미나다.”

-인생을 바꾼 영화가 있나.

“구로사와 아키라의 ‘요짐보’, 알프레드 히치콕의 ‘사이코’ 프랑소와 트뤼포의 ‘줄과 짐’ 장 뤽 고다르의 ‘브레스리스’ 그리고 킹 후(호금전)과 이한상 감독의 영화 등이다.”

☞서극 감독은…

베트남에서 16형제를 둔 대가족에서 태어나 열세살 때 홍콩으로 이주, 텍사스 사우스메소디트대학교를 거쳐 텍사스대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1977년 홍콩으로 돌아가 TV 방송국에 입사한 후 79년 ‘접변’으로 데뷔했다. 84년 부인 시남생과 필름워크숍(전영공작실) 청설 후 ‘영웅본색‘‘첩혈쌍웅’ 등을 제작하며 홍콩 느와르를, ‘천녀유혼‘ 시리즈로는 무협 호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가 하면, ‘동방불패’‘소오강호’‘황비홍’ 등 정통 무협영화로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박숙희 문화전문기자 sukie@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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