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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동우회…성음악에 관심있다면 누구나 환영"

유빌라테 가톨릭성가단 전흥식 지도신부

이탈리아서 신학공부 하며…5년동안 정식 오페라 공부
영어·스패니시·독일어…이탈리아어 자유롭게 구사

"유빌라테 가톨릭성가단이 남가주 한인가톨릭교회의 연합성가대로 잘못 알려졌는데 성음악에 관심있는 남녀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일종의 동우회입니다."

지난 25일(일) 제5회 성음악 미사 및 정기 발표회를 가진 유빌라테 가톨릭성가단의 전흥식 지도신부(샌 클라멘테 미국성당 주임신부.48)는 그래서 '성음악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환영한다며 초대했다.

이탈리아에서 신학공부를 하면서 5년 동안 정식으로 오페라를 공부한 전신부는 현재 프레즈노교구 소속으로 영어 스패니시와 한국어로 미사를 드리며 주임신부로 미국인 히스패닉과 한인 신자 사목을 하게 된 과정이 남다르다.

순교자 집안에서 8남매 중 막내로 인천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저를 임신하셨을 때부터 '아들이면 신부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시작하셨고 '너는 신부되거라'하는 소리를 들으며 컸어요. 그래서 당연히 소신학교 진학을 하려 했는데 좌절됐어요." 복사까지 하면서 '착실한 아이'로 인정해주던 주임신부가 탐탁치 않아 했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고 인천기계공고에 입학해서 인천교구의 청년연합회에 들어가 활동했다. 나중에 회장까지 됐는데 당시 전두환 대통령때라 사법경찰관이 "너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며 조심하라고 경고했고 형사인 매형도 "나를 봐서라도 그만두라"고 했다. 다행히 큰 사고(?)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하고 있던 중에 당시 인천교구 교육국장이던 이준희 신부가 "신부될 마음 없느냐?"고 했다.

청년연합회 때 눈여겨 보았던 것이다. "다시 내 안에서 사제의 길을 열망하는 걸 발견하게 된 계기가 된 셈이지요." 열심히 수도회를 찾아 다닌 결과 '예수성심 청원회'라는 수도회를 발견했다.

이탈리아에 본원이 있는 성소자를 위해 기도하는 활동 수도회였다. "면담하는데 제가 첫 청원자라는 거에요(웃음)." 따라서 수도자가 되기 위한 교육과 수련은 해외에 있는 수도회에서 받아야 했다. 84년 입회하면서 필리핀으로 보내져 1년 있다가 군복무를 위해 한국에 와서 88년 제대 일주일 만에 로마 본원으로 보내졌다. 도착한 지 3개월만에 라테란 교황대학에 입학하여 철학을 공부했다. 생전 처음 대하는 이탈리아어로 철학강의를 들어야 했고 히브리어라틴어 그리스어까지 배워야 했지만 놀라운 발견이 자신의 '언어적 능력'이었다. 한 번 들은 단어는 비슷한 상황에서 순서대로 떠올라 6개월 후에 회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만일 한국에 있었다면 하느님이 주신 탈렌트를 발견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언어 천재'란 말을 많이 들었다.

90년 졸업할 때 학과대표 였을 정도다. 동시에 목소리가 좋으니 성악공부를 해보라는 제안을 받고 신학공부를 하면서 오또리노 레스비기 국립음악원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성악도 배웠다. "미사 전례에서 성음악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계기였지요." 그러나 수련기 1년 실습기간 1년을 거쳐 신학공부(3년) 안젤라꿈 교황대학에서 신학 석사(2년) 과정을 마치고 드디어 종신허원을 준비하고 있을 때 수도회를 나와 버렸다.

"11년 동안 정말 힘들게 준비한 수도자로서의 길이 눈 앞에 있었지만 수도회 자체에 회의가 생겨 도저히 그곳에서 단 하루도 머물 수가 없었어요. 너무 괴로웠던 거지요. 그 내적 갈등은 몇 권 책을 써야 할 거에요(웃음)." 그러나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환영받지 못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수도회는 싫고 교구 사제가 되고 싶었다.

스웨덴 스위스 네덜란드 캐나다와 이탈리아 교구에 지원서를 냈다. 그러나 "힘든 신학공부를 하고 왜 너의 나라 교회로 돌아가지 않느냐?"며 사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2년반을 '생존'을 위해 안 해 본 일 없이 살면서도 희망은 잃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자신이 나온 그 수도회의 한 교수 신부가 "내가 미국으로 발령받았는데 원하면 미국교구 쪽으로 도와줄 수 있다"며 미국행을 제안했다. "힘들면서도 미국엔 신청서를 내지 않았던 이유가 사람의 정이 없는 나라란 인상이 강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상황이 OK할 수 밖에 없었고 1999년 프레즈노교구로 오게 됐고 2001년 사제서품을 받고 지금의 샌클레멘터 성당으로 부임했다. 2003년에는 주임신부(pastor)가 됐다. 일요일 3000명 정도가 미사참례한다(한인 150명).

영어 스패니시 이탈리아어 독일어 한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전 신부는 "미국은 여전히 무미건조하고 삭막한 느낌이 들지만 하느님이 타인종 속에서 계속 나를 머물게 하신 데에는 뜻이 있다고 믿는다"며 계속 '그 뜻'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했다.

김인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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