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론] 노무현을 자유케 하라
이길주/버겐커뮤니티칼리지 교수
공(功)에 관해서는 장황하고 과(過)에 대해서는 과묵해지는 인지상정의 불균형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 한편 이명박 정권에 대한 저자의 섭섭함이 결국 분노와 비난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한국 정치의 한계를 확인해 준다.
이 책이 전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이러니의 집약이다. 먼저 그는 유연한 고집쟁이였다. 한 예로 인권·노동 변호사 출신인 그의 사법부 개혁의지는 고집을 넘어 집착에 가까웠다. 그는 최초 여성 법무부장관을 임명함으로써 이 개혁에 똑바로 그러나 유연하게 다가갔다.
또 권력기관의 체질개선도 으름장과 인사조치가 아닌 청와대 스스로가 이 조직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러운 비 권력화를 이룰 수 있었다고 저자는 전한다. 최고의 권력자가 나서서 권력을 포기한 역설이 바로 노무현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왜 노무현 시대는 실패라는 평가에 시달리나? 그 답 또한 아이러니컬하다. 참여정부를 가능케 한 진보세력과 시민사회와의 불협화음이 문제였다. 참여정부에 대한 진보세력의 실망은 노 대통령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배신’의 손가락질로 돌아와 그를 진퇴양란의 상태로 몰아갔다.
결국 보수, 진보의 양면압박 구도에서 개혁드라이브는 때로 멈추어서거나 반향감각을 잃었다. 저자는 거듭되는 “미안하다”“충격이었다” 또 “고통스러웠다”는 표현으로 참여정부의 좌절을 진솔하게 인정한다.
노무현 시대의 가장 큰 아이러니는 소통의 문제였다. 그는 ‘토론의 달인’이라고도 불렸다. 그 만큼 국민과의 소통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대통령은 제스처로도 말하고, 과시용 이벤트로도 대화한다. 노무현은 진실성이 없다며 이런 방식을 거부했다. 결국 대화의 달인이 이끈 정부는 소통에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책은 후미의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에 와서 담담한 대화의 분위기와 담백한 설득력이 퇴색된다. 저자는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는 그가 정치인생 내내 사용했던 ‘사람 사는 세상’이란 말속에 다 담겨 있다”고 했다.
그는 부연한다. “‘사람 사는 세상’은 요즘 말로 하면 ‘복지국가의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경제적 복지를 넘어서서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누구나 똑같이 존엄한 세상을 뜻한다.” 당연히 노무현 재단의 목적도 '복지국가'이다.(466쪽)
인간 노무현이 꿈꾼 세상을 꼭 ‘누구나 똑같이 존엄한 복지의 나라’라고 규정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의 운구행렬을 눈물과 몸으로 막은 수십만 시민들의 가슴에는 그 때 하늘에 나타났다는 오색채운(五色彩雲)처럼 고인을 향한 각양의 감정과 생각이 담겨져 있었을 것이다. 그가 남긴 인간적 감동과 역사적 의미는 한마디로 정리할 필요가 없는 다색다향((多色多香)이다.
저자가 전한다. “거대한 인파가 운구차와 함께 서울광장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특히 서민들이 많았다. 젊은 여성들도 상대적으로 많았다. 장애인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평범한 서민들이 대통령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425쪽) 여기에 강조된 ‘평범한 서민’은 사족(蛇足)처럼 읽혀진다.
고백하건데 필자도 미국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슬픔 속에 노 대통령을 떠나보냈다. 필자가 서민이거나 그의 모든 정책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당당하게 ‘좁은 문’을 선택했던 그의 삶이 준 감동 때문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노무현 정신과 가치의 계승은 그를 한 줄짜리 정의(定義)에서 자유케 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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