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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영묵의 테마가 있는 남미 여행] 옛 영광 없어진 '태양의 신전'은 성당으로

페루 쿠스코를 거처 푸노로

박물관엔 성녀 ‘로사리오’ 조각 등 전시
티티카카호수 우로스섬엔 갈대 수상집
원주민들은 한국 동요·찬송가 부르기도


마추피추에서 돌아다니느라고 꽤나 피곤 할만 한데 아침에 일어나니 그런대로 견딜 만한 것 같다. 아마도 고산병 증세가 3일이 지나니 적응된 것 같다. 오늘은 쿠스코보다 더 높은 주노(JUNO)의 티티카카 호수로 가는 일정이다.

다시 쿠스코로 가서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첫날 쿠스코에 왔을 때 고산증으로 고생할까 봐 빼먹은 일정으로 잉카 태양의 신전을 비롯해 몇 곳을 보고 푸노로 향하기로 했다. 이 태양의 신전에는 태양의 신전과 달, 별, 천둥 번개의 신전들이 있었으나, 일제시대의 경복궁 앞에 총독부(중앙청)를 지은 정도가 아니라 스페인 정복자들은 아예이 태양의 신전의 핵심이라 할 태양의 신전은 산토 도밍고라는 성당으로 개조하는 등 옛 모습을 없애 버렸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박물관에서 그들이 성녀라고 추앙하는 인디오 처녀 ‘로사리오’의 조각과 여러 의상부터 칼 등 여러 물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내가 가이드에게 이곳에 온 페루인 특히 인디오 원주민이 이것들을 보면서 굴욕감이나 허다 못해 싫어하는 기색이 없느냐고 물었다. 가이드의 대답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렇게 이야기 하겠습니다. 지난번 월드컵 결승에서 스페인이 우승했을 때 스페인보다 이곳 페루인들이 더 난리가 날 정도로 온통 축제 분위기이었습니다.”

사실 소수의 스페인 정복자가 전 페루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잉카제국이 타 종족을 정복 하면서 매우 잔인했고 그래서 타 종족들이 스페인 정복에 협조적이었기에 스페인들은 소위 이이제이(以夷制夷)로 정복했다고 생각했을 것이었고, 원주민들은 자기들이 잉카 제국을 무찌른 연합군의 일원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스페인의 정복을 자기들과 같이 진행했던 정복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그래서 잉카 제국이 망한 후 주인 없는 무주공산에 그저 누구든지 자기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면 누구나 좋다는 인식이 일본계의 후지모리를 대통령으로 뽑았을 지도 모르겠다.

쿠스코에 있는 대성당 광장에서 얼마 동안 사람 구경으로 꽤나 재미있게 보낸 후 푸노로 가는 비행장을 향하면서 꽤나 흥미로운 것들을 보았다. 집 용마루마다 무엇인가 붙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소 모양이었다. 본래 소는 스페인들이 말과 함께 가지고 왔다 한다. 그런데 그들이 보니 소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아주 유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소는 복이라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이 오라고 집 용마루에 올려놨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를 같이 올려놓은 집도 있다. 또 하나는 집에 긴 장대 끝에다 비닐뭉치를 만들어 걸어 놓았다. 이것이 무척 재미가 있었다. 장대를 내건 집은 ‘영업 집’이라는 표시란다. 빨간색 비닐이면 대포 집, 하얀색이면 밥집, 파란색이면 여자가 있다는 뜻이란다.

대포 집에서는 ‘치차’라고 옥수수로 막걸리 같은 것을 만든다고 한다. 이러한 영업집들은 간판 같은 것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버스 창 너머 보니 그냥 보통 집이었다.

거의 두 시간에 걸친 비행 후에 도착한 곳이 훌리아까(Juliaca)였다. 이곳에서 다시 거의 두 시간 버스를 타야 푸노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은 해발 4000미터가 되는 곳으로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그런데 이곳에 일본인들이 이 곳에 첫 뿌리를 내렸다 한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이야기 한다면 유구 왕국(오끼나와)의 유민들이 이곳에 와서 밀, 보리 같은 농사를 시작했다 한다.

해양선의 높이에서 4000미터까지 그 높이에서 자라는 씨앗도 다르고, 또 농사라고는 감자와 옥수수 밖에 모르는 이곳에 다양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는 등 일본인들의 노력이 대단했다 한다. 그리고 당연히 이곳 농과대학이 이러한 의미에서 매우 중요하다는데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그 정계 진출의 첫 단계가 바로 농과 대학 총장으로부터 라고 한다.

그 다음날 전라도 크기라는 해발 3800미터의 티티카카 호수에 있는 우로스 섬으로 갔다.

잉카 제국이 세워지기 전인 11세기 경부터 이곳에는 꼬야 족과 우로 족이 살았는데 호전적인 꼬야족이 우로족을 잡아 노예로 삼고 노동력 착취를 하므로 우로족들이 이 티티카카 호수로 피난 가서 갈대로 수상집을 만들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의 생활이 관광 자원이 되어 우리가 찾아 간 것이다. 흥미 있게 그들의 삶을 보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기분 좋았던 것은 한국의 어느 선교사가 그들에게 ‘거지처럼 그냥 얻어먹지 말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으라’ 하면서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한국의 동요와 찬송가를 합창으로 서비스해 주었고 갈대로 소품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어느 누구인지 몰라도 그 선교사에게 마음속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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