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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따라잡기] "잡스에게 투자한 것 후회한다" 비난 쏟아져

이정필/전직 언론인·디지큐브대표

픽사.넥스트 잇단 적자

천방지축 스티브 잡스가 90년대를 맞이했을때 그는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자신을 걷어찬 애플에 대한 복수심으로 넥스트(NeXT)를 세우고 조지 루카스로부터 컴퓨터 애니메이션 회사인 픽사(Pixar)를 인수했던 잡스였지만 두 회사 모두 성공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넥스트의 설립 목적은 워크스테이션급 교육용 컴퓨터 개발. 잡스는 수많은 대학 관계자들로부터 2000달러 정도의 컴퓨터여야만 구매가능하다는 조언을 들었다. 하지만 88년 개발이 완료 됐을때 넥스트 컴퓨터의 소비자 가격은 6500달러. 여기에 2000달러짜리 프린터는 별도였다.

잡스는 소형 워크스테이션을 요구하는 기업과 특수전문가 회사를 찾아 나섰다. 유닉스 기반의 혁신적이고 사용하기 쉬운 GUI운영체제 넥스트 Step이 포함됐고 개인용 워크스트이션급 컴퓨터이니 당연히 가격을 제대로 받아야한다는 생각이었다.



실제 넥스트의 하드웨어와 시스템 소프트웨어(운영체제)는 잡스의 장인정신이 담긴 제품답게 테크업계가 놀랄만한 창조적인 최신 기술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컴퓨터 주류시장에는 이미 사용하기 복잡해도 쓸만한 저렴한 제품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소수의 잡스 추종세력에게 넥스트 컴퓨터는 전설과도 같은 창조물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컴퓨터 주류시장을 파고들기에는 턱 없는 가격이었다.

7년동안 판매된 넥스트 컴퓨터는 겨우 5만대. 넥스트 컴퓨터의 뛰어난 성능 때문에 CIA와 월스트릿 증권가에 공급하는 성과도 있었지만 회사 재정을 도울만한 실적과는 거리가 멀었다.

투자자였던 로스 페롯은 한 TV인터뷰에 출연해 "잡스에 관한 TV 다큐멘터리를 보고 짝사랑을 키웠는데 그에게 투자한 것을 후회한다"고까지 말했다. 3억 달러가 넘어가는 넥스트 자본금을 거의 말아먹은 상황에 대한 회한이란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빌 게이츠의 유명세

93년 잡스는 넥스트 직원 500명 중 절반을 내보내야했다. 또 "최고의 제품을 디자인하겠다"던 자신의 꿈을 접고 하드웨어 부서를 없앴다. 넥스트에서 개발한 운영체제 사업부만 꾸려가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그 역시 잘 될 것이란 보장은 없었다.

넥스트의 실패가 자명해지면서 실리컨 벨리의 아이돌스타 스티브 잡스의 명성도 서서히 사라져가는 판국이었다. 그의 자리를 대신해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유명세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잡스의 이름이 언론을 탔던 이유는 그가 조지 루카스로부터 사들인 픽사 때문이었다.

존 레세테의 등장

원래 그래픽 컴퓨터 전문회사로 시작했던 픽사였지만 86년 잡스가 인수할 당시 존 레세터란 에니메니션 프로듀서가 혼자힘으로 회사의 명맥을 이었다.

일본 만화계의 대부 데즈카 오사무를 존경하던 레세터는 디즈니에서 새로운 만화를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하다 결국 해고 당했다. 컴퓨터 에니메이션의 미래를 확신했던 레세터는 픽사에 새둥지를 틀고 자신이 원했던 에니메이션에 꿈을 태웠다.

그가 처음 만든 2분18초짜리 단편 'Luxor Jr.'는 할리웃 사상 최초의 컴퓨터 그래픽 만화영화였다. 상상을 뛰어 넘는 '귀여운 이미지'의 레세터 작품은 86년 아카데미상 단편만화부문 후보에까지 오르며 세상을 놀래켰다.

이후 레세터는 열악한 제작여건 속에서도 컴퓨터 애니메이션 장르를 개척했다. 88년 4분짜리 'Tin Toy'가 아카데미상 단편만화 최우수상을 수상하자 레세터와 잡스의 이름이 할리웃을 휩쓸었다.

계속되는 재정난

하지만 픽사 역시 돈먹는 하마였다. 픽사의 시도는 할리웃과 테크업계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지만 수익모델은 여전히 요원했고 잡스는 적자운영을 떼우기 위해 자신의 개인자금까지 털어 넣고 있었다.

90년 봄 잡스는 픽사 의 하드웨어 분야를 비아콤(Viacom)에 매각해버린다. 회사의 그래픽 컴퓨터 기술로 한몫 잡으려했던 잡스는 만화제작 인원들만 남기고 엔지니어들 모두 내보냈다. 또 픽사를 어떻게든 다른 회사에 합병시키려했다. 그 중 마이크로소프트가 관심을 보였지만 인수결정을 마지막에 포기했다.

장편 만화 제작비가 없어 단편에만 매달려오던 픽사에 92년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월트 디즈니의 제프리 카잔버그였다. 당시 최고의 만화제작자로 명성을 날리던 카잔버그가 픽사의 가능성을 염두하고 장편만화 제작을 협의하려던 시도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와 디즈니의 마이클 아이즈너 회장 사이에서 파워게임이 시작되면 픽사와의 진행사업도 모두 중단됐다.

아이즈너는 80년대초 절박한 위기의 디즈니 대표로 취임해 회사를 반전시킨 할리웃 최고의 거물. 그는 혁신경영기법으로 디즈니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었고 카잔버그와 손 잡고 '미녀와 야수''알라딘'그리고 '라이언 킹' 등 잇달은 블록버스터 히트작을 제작해 제 2의 월트 디즈니 부흥기를 가져온 장본인이다.

아이즈너의 오른팔이었던 카잔버그는 자신의 유명세가 정점에 오르자 더 많은 권한을 원했다. 하지만 카리스마의 지도자형인 아이즈너는 카잔버그가 만화에만 몰두하길 바랬다.

결국 카잔버그는 디즈니를 박차고 나가 스티븐 스필버그와 손잡고 드림웍스 SKG를 세워 디즈니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다시 찾아온 기회

다급해진 아이즈너는 카잔버그에게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수를 쳐야만했다. 스티브 잡스의 픽사 5년 동안 3편의 장편영화 제작을 계약하자며 2500만 달러의 거금을 제의했다.

넥스트를 절반으로 줄이고 픽사를 팔아치우려던 잡스에게 갑자기 하늘로부터 호박이 덩쿨째 떨어진 사건이었다. 덧붙여 할리웃 초특급 거물 아이즈너는 스스로 자기집에 호랑이를 불러들이고 말았다는 사실을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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