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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빚으로 굴러가는 병든 선진국…그 몰락에 대한 섬뜩한 경고

미국이 파산하는 날
담비사 모요 지음


복지다 경기부양이다 나라가 한해 한해 빚을 내어 살림을 한다. 담보대출이다 신용카드다 빚으로 꾸려가는 건 가계도 마찬가지다. 그럴듯한 일자리는 날로 줄고 부양해야 할 노년층은 해마다 늘어간다. 젊은 근로자는 제대로 일할 능력도 땀 흘려 일할 생각도 없다. 고속 성장하는 신흥국 우리 안방에서 또 세계시장에서 치솟는 그들과의 경쟁에서 생존하는 게 발등의 불이다.

신간 '미국이 파산하는 날'(원제 How the West was lost)에 나타난 병든 선진국(주로 미국)의 '불편한 진실'이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 같지 않은가. 바로 우리의 얘기가 아닌가.

선진국들이 어쩌다 오늘의 지경에 이르렀나. "자본이 어떻게 배분되고 노동자가 어떤 자세로 일하며 어떤 종류의 기술이 개발되느냐가 국가의 경제적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다." (34쪽) 나라를 살찌우고 수준을 높이는 3대 요소 즉 돈.사람.기술(金.人.術)이 사회적 기여가 없을 곳으로 흘러가도록 나라 정책을 편 것이 오늘날 선진국의 몰락을 가져왔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 담비사 모요는 아프리카 최빈국 잠비아에서 태어나 미국.영국에서 공부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될 만큼 요즘 주목 받는 거시경제학자다.



무책임한 주택정책은 돈의 흐름을 왜곡시킨 주범이다. "담보대출을 보조하고 그 이자를 세금 감면해 차입 유인을 제공했다. 또 대출 금융기관에 보증을 제공해 이들이 담보대출을 취급할 동기를 부여했다." (72~73쪽) 그래서 돈이 주택으로 몰리게 하고 생산적인 투자를 외면케 했다. 돈이 묶인 가계는 신용카드로 생활비를 보충했다.

지난 수십 년 정부도 빚으로 복지국가를 건설했다. 거기에 과잉부채.과잉금융으로 야기된 2008년 금융위기를 벗어나겠다고 택한 정책은 나라 빚을 더 쌓았다. "위기를 초래한 게 바로 파멸적인 부채였는데도 각국 정부는 난국에서 벗어나기 위한 만병통치약으로 부채를 제공하는 선택하기에 이르렀다."(74쪽) 나라와 가계의 근검절약을 요구하는 정책은 엄두도 못 냈다. 정부도 민간도 아니 선진국 전체가 '부채의존형 사회'가 된 것이다.

노동력은 자본보다 문제가 더 심각하다. 노동시장이 왜곡되고 교육의 질이 떨어져서다. 우선 지난 수십 년 선진국이 연금제도를 도입하면서 노동비용이 실제보다 싼 것처럼 왜곡됐다. 그 덕에 연금재정 빚은 감당할 수 없게 늘어났고 선진국 근로자는 신흥국 근로자와는 경쟁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고도 기술을 요하는 제조업이나 (의사 등) 서비스 부문에 대한 보상이 비생산적인 서비스 업종보다 낮게 책정된 것이 비생산적 부문으로의 노동 이동을 부추겼다. 이민법을 강화한 것도 우수한 글로벌 인재의 진입을 막아 국가적 (인적자원의) 손실을 낳았다. 평등주의에 찌든 교육은 교육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보다 교육의 질적 저하를 가속시켰다.

그 결과 선진국의 "노동인력은 갈수록 제대로 훈련 받지 못하고 신흥시장의 근로자들이 일하는 만큼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으며 연금과 의료보장 등 각종 복지혜택에 대한 기대만으로 겨우 움직일 정도가 됐다."(174쪽)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에 이르면 선진국의 처지는 더 처량하다. 신흥국에 비하면 비참할 정도다. TFP는 나라 성장세의 반 이상을 책임진다. 그런데 "대부분 선진국(미국 일본 등)에서 TFP 증가율은 연간 1% 미미한 수준이다. 반면 중국의 연평균 TFP 증가율은 4%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211쪽)

생산성 제고 능력의 저하도 선진국이 자초했다. R&D 분야에 대한 투자는 위축되고 혁신을 끌고 갈 공학과 과학기술 등 고등교육은 소홀히 취급됐다. 선진국의 영광 되찾기에 앞장서야 할 그 인적자원이 부족해 진 것이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낱낱이 까발린 저자는 "앞으로 10년간 획기적인 정책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오늘날 선진국은 무자비한 경제적 몰락을 겪게 될 것이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서구 특히 미국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씨앗을 뿌리는 행위를 중단하고 하루 빨리 더 나은 정책" '단호하고 창의적이며 과감한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도 가계도 빚을 얻어 소비를 하는 짓을 당장 접고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하고 '다시 한번 사람에 투자'해 양질의 숙련된 노동력을 키워야 하며 신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지적재산권을 보호해 선진국의 잠재력에 합당한 생산성의 우위를 되찾아야 한다고 저자는 강변한다. (297쪽) '이치에 맞게 살아가기'를 권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파산하는 날'은 선진국의 얘기가 아니다. 바로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선진국이 스스로 들어가 빠져 나오지 못하는 바로 그 함정 '우리에겐 내일이 없다' 식의 무절제와 포퓰리즘의 함정에 지금 우리가 빠져 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오늘 한국의 바른 선택을 이끌어 가야 할 내일의 리더들이 누구보다 먼저 읽어야 할 책이다. '무상.무상 복지.복지'를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는 우리 정치인이 가장 읽기 불편한 책일 것이다.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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