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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에세이] 잡스와 게이츠가 대학서 배운 것

김홍선/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1980년대 중반 미국 유학 시절 얘기다. 컴퓨터 작업으로 거의 밤을 새우고 이른 새벽에 학생 라운지에 들어섰다. 중년의 건장한 남자가 혼자 콜라를 마시며 쉬고 있었다. 학생은 아닌 것 같았고 교수 명단에도 없는 얼굴이었다. 누구일까?

그 대학이 자랑하는 전산시스템을 총괄 관리하는 책임자였다. 컴퓨터를 네트워크로 연결해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는 그의 역량이 워낙 뛰어나 학교는 물론 컴퓨터 업계에서도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의 명성을 말해주는 일화가 있다. 당시 중형 컴퓨터 업계의 선두였던 디지털이큅먼트(DEC)는 출시 직전의 제품을 그 대학에 기부하자 그는 그 컴퓨터를 학생들이 과제나 기타 용도로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했다.

출시전 제품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소위 버그(bug)를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학생이 다양한 형태로 컴퓨터를 돌리는 과정에서 각종 문제점이 발견됐다. 하지만 수정을 거듭하면서 한 학기가 지나면 제품은 훌륭한 완성품으로 탈바꿈했다. 제작사가 학생들을 상대로 베타 테스트를 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고성능 컴퓨터를 개인적으로 구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무료 제공된 컴퓨터는 연구와 교육을 위한 풍요로운 환경을 제공했다.

제작사와 대학의 이 같은 '윈윈' 전략의 중심에 그의 관리 능력과 실력이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 "교수는 없어도 되지만 그가 없으면 학교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그의 존재가치는 컸다.

그가 구축한 우수한 환경 덕분에 컴퓨터를 주제로 자유로운 토론과 학습의 문화가 형성됐다. 그러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을 실전처럼 훈련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이 마련됐다. 이는 강의실에서 이루어지는 이론 교육과는 또 다른 형태의 커다란 교육의 축이 됐다.

교육에서 유연한 사고와 다양한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단순지식은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게 됐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이러한 환경에서 교육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인간의 잠재 역량을 끄집어내고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경영학자 게리 해멀은 '미래의 경영'에서 인간의 능력 중 지성과 근면이 기업의 성공을 위해 공헌하는 비중은 각각 15%와 5%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 얻는 지식이 이 정도밖에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심지어 복종의 공헌도는 0%다. 해멀이 꼽은 나머지 80% 역량은 열정 창의성 추진력이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이클 델 마크 저커버그는 세 가지 역량을 겸비한 대표적 모델이다. 이들은 세계적 기업의 CEO이면서 대학 중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중도 하차했지만 짧은 대학 시절에 결정적 동인을 찾았다. 대학 친구들을 대상으로 만든 페이스북은 세계적 서비스가 됐고 청강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기초로 다양한 서체(font)를 구현한 애플컴퓨터가 탄생했다.

요컨대 교육의 의미는 졸업장이나 외형적 스펙보다 내재적 역량을 끄집어내는 데서 찾아야 한다. 특히 개인의 역량 발휘가 기업이나 국가 차원에서 절실한 시대다. 이를 위해 다양한 관점에서 교육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실질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자발적 커뮤니티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가 가능한 환경 생각을 훈련하는 활발한 토론 문화는 기본이다.

최근 '반값 등록금' 논의를 계기로 대학 교육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이 같은 교육 환경과 다양성과 자유로움 지적 훈련과 같은 교육 본질에 대한 논의는 보이지 않는다. 현재 드러난 문제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어떤 교육이 우리에게 필요한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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