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위기의 한인 '실버 부부'] '둘만의 시간' 길어지며 묵혔던 감정 폭발
70대 한인이 별거 중인 60대 부인을 흉기로 폭행하고 자신은 자살한 사건은 한인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백년해로'를 기약하며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부부가 노년에 이 같은 불행한 사건으로 '부부관계'에 비극적인 파탄을 맞이한다는 것은 전통적인 한인 부부관에 비추어 볼 때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폭행.별거.이혼.살해 후 자살 등 부부간에 벌어지는 사건의 유형은 다양하지만 이 같은 파탄이 수십 년 성상을 함께 거쳐온 노년 부부에게도 자주 발생해 '노년 부부'의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북가주에서 수년 전 '황혼 이혼'한 70대 한인 조모씨가 재결합 문제로 갈등을 빚다 60대 전처를 살해한 뒤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황혼 이혼' 계속 늘어
은퇴 남편 "무시당한다" 소외감
아내 "평생고생" 피해의식 팽배
▶황혼이혼=한국은 물론이고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황혼이혼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60대가 넘어서도 새 출발을 믿고 이혼을 마음 먹는 경우가 많아진 탓이다.
전문가들은 "폐경 이후 아내들은 남성 호르몬이 늘어나면서 굉장히 파워풀해져 그 동안 자신이 거추장스럽게 지고 있던 부담들을 덜어버리고자 한다"며 그 중의 하나가 남편이 될 수도 있다고 진단한다. 한인가정상담소 등 상담 기관에도 60대 이상 부부의 갈등 문제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빈 둥지'시간의 증가=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자녀들을 사회로 떠나 보내고 부부가 함께 지내야 하는 '빈 둥지' 시간이 예전에 비해 훨씬 늘어난 것도 노년 부부 갈등의 요인이 됐다.
이 때문에 이 기간을 현명하게 보내야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즉 이전에는 자녀들이 독립한 뒤 부부 단둘이 사는 기간이 짧았지만 기대수명이 늘어난 베이비붐 세대는 부부만 사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상담전문 기관인 민들레 소망재단의 엄성현 목사는 "빈 둥지 기간 동안 특히 남자들은 소외감을 많이 느끼고 여자들은 지난 시절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피해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고 분석한다.
엄 목사는 "남자들은 은퇴하고 집에만 있게 되면서 무시당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기 쉬운데 무시당한다는 생각은 곧잘 폭발적인 행태로 분출되기 쉽다"고 조언했다. 얼마 전 한국의 한 심포지엄에서도 2010년 기준 전체 부부 가구에서 노인 부부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39%지만 2030년에는 54.2%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만큼 '빈 둥지 노년 부부'가 급증하고 있어 사회적인 관심이 시급한 실정이다.
'창피하다' 생각 말고…
가족·친지 적극 나서 대처 강구
친구·양로원 등서 교제늘려야
▶문제와 대책=노년 부부 문제가 불거지는 이유는 대개 '숨겨진 갈등'이 불거져 나오기 때문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젊은 시절에는 자녀들 양육 문제는 물론이고 부부 갈등의 요인을 다른 활동으로 해소할 수 있었지만 부부가 항상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면서 수면에 가라앉아 있던 갈등 요소가 드러나면서 감정이 악화될 소지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특히 이전에 부부관계가 원만치 못했을 경우 더욱 두드러지게 갈등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남가주 한인정신과의사협회 조만철 회장은 "부부가 고립해서 살게 되면 감정 표출을 상대 배우자에게 할 수밖에 없어 갈등이 불거질 소지가 많다"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친구 모임이나 양로센터 등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노년 부부들은 부부 갈등 문제를 창피하게 생각해 숨기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지들이 이를 발견해 문제가 있을 때는 상담치료 등 적극적인 방법을 강구하라고 조 회장은 권했다.
엄성현 목사도 "노년 부부가 자주 말다툼을 벌이고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잦다면 이는 이미 본인들 스스로 해결할 단계를 넘어선 것"이라면서 "부부가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반드시 전문가에게 SOS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원영 기자 sky@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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