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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몸의 사리와 법의 사리

이원익/태고사를 돕는 사람들 대표

다른 이야기에는 꾸벅꾸벅 졸다가도 어느 스님한테서 사리가 몇 알 나왔다는 이야기에는 눈을 반짝 하는 이들이 있다. 불교에는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기적 얘기 같은 게 흔치 않아서인가? 입적하신 스님이 남기신 거룩하신 가르침에는 뜻이 없고 오로지 다비를 한 그 몸에서 정말로 영롱한 구슬이 나왔나 신비한 빛을 띠는 유리 조각 같은 것을 몇 알이라도 남겼느냐만 관심거리다.

본래 사리란 거룩한 이의 주검을 뜻하는 사리라에서 온 말로 유해 그 자체를 가리켰다. 곧 전신 사리다. 그러다 이 주검을 다비하면 즉 불태우면 알맹이 뼈만 남는데 이 불타고 남은 뼛조각을 잘게 빻은 것을 사리라고 일컫게 되었다. 말하자면 쇄신 사리다.

우리 누구나 죽어서 화장이 된다면 이런 뼛조각 즉 쇄신 사리가 안 나올 리 없다. 혹시 화장을 했는데도 빻아서 뿌릴 아무 사리가 없다면 조상을 탓할 수밖에 없다. 뼈대도 제대로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얘기가 될 테니까.

어쨌든 전신 사리든 쇄신 사리든 영롱한 유리구슬 따위와는 본래 관계가 없는 말이고 그런 얘기는 다 나중에 생긴 것이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그 전신 사리는 향나무 더미 위에 뉘어져 다비가 되었다. 그런데 다비가 끝난 후 부처님의 뼛조각 가루 곧 쇄신 사리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당시의 정치 세력들 사이에 큰 다툼이 일어났다. 예나 이제나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유명인사의 장례식만큼 본의 아니게 세속의 권력 판도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것도 드문 것이다. 다행히 중재가 되어 부처님의 사리는 여덟 나라에 고루 나뉘어졌다. 이 나라들은 각기 큰 탑을 세워 이 사리를 모시니 사람들이 찾아와 부처님을 우러르고 기리는 믿음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후 몇 백 년이 지나 인도를 통일한 전륜성왕인 아쇼카 왕이 나타났다. 왕은 부처님의 고향인 카필라 성의 탑만 남겨 두고 나머지 일곱 곳을 헐어 사리를 꺼내어 온 인도 땅과 해외에까지 골고루 나누어 보내 수많은 불탑을 만들게 하였다. 전세계에 불법을 퍼뜨리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보내진 불사리의 일부가 중국을 거쳐 저 멀리 한국에까지 닿았고 이렇게 전래된 불사리는 다섯 군데에 모셔져 한국 불교의 5대성지가 되었다. 영취산 통도사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오대산 상원사 그리고 설악산 봉정암이 그 곳인데 모두 적멸보궁으로 일컬어져 신심 깊은 불자들의 순례 코스가 된 지 오래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이러한 불사리뿐만 아니라 고승들의 사리도 챙겨져 숭배와 신앙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한국에서는 근래에 효봉 스님에게서 많은 사리가 나온 일을 즈음하여 이러한 경향이 심화 되었는데 요즘은 이러한 육신 사리의 신앙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부작용까지 일부 나타나게 되었다.

부처님이나 고승들의 사리는 참으로 소중한 것이지만 전신 사리든 쇄신 사리든 결국 몸의 사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사람의 몸이란 법을 잠시 담아 두고 가두어 둘 그릇이요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러한 방편이요 그릇일 뿐인 몸 그 몸의 한 부스러기인 몇 조각 사리에 너무 혹하여 그 그릇에 담아야 할 본래의 음식마저 잊어 먹어서야 되겠는가. 무엇이 그 음식인가? 우리에게 불멸의 빛을 주신 부처님의 진리 육신의 사리가 아닌 그 법신의 사리야말로 우리가 쉼 없이 찾아나서야 할 구도의 참 대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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