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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우에 핀 꽃] 늦게 배워도 30년은 사용한다

법장 스님/필라화엄사 주지

사미계를 받을 때, 처음으로 광목에 먹물 들인 승복과 장삼을 받은 이후 그 옷이 다 떨어질 때까지 옷 한 벌 사주는 사람이 없었다.

법주사 강원을 거쳐 해인사에서 공부할 때도 옷이 없어 애를 먹었다. 가끔 공양주나 채공(菜供), 혹은 바느질 하는 보살님들의 방을 가보면 스님들이 입다 버린 옷들이 한쪽 구석에 정리돼 쌓여 있었다. 거기서 내가 쓸 만한 것을 골라 기워 입으며 해인 강원을 졸업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장삼(長衫) 한 벌 해드리겠노라고 하면서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로터리에 사시는 관음심 보살님이 오셨다. 너무나 뜻밖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관음심 보살님과 인연이 된 것은 부군께서 세상을 뜨신 이후다. 관음심 보살님께서는 개운사에 오셔서 49일 천도도 드렸고, 그리고 나에게 장삼 한 벌을 해 주셨다.



그러나 장삼 기지를 사는 흥정을 하는데 차마 나는 얼굴이 뜨거워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 과정을 지켜본 후 아무래도 보살님을 공부시켜야 할 것 같아 내가 “공부 좀 해보시죠. 보살님!” 했다.

그랬더니 보살님께서 “스님, 이 나이 먹어서 무슨 공부를 합니까?”하시며 사양 하시기에 “보살님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공부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제가 공부를 가르쳐 드릴 터이니 한번 해보십시오!”하고 재차 권하고 헤어졌다.

이후에 어느 날 보살님으로부터 마음을 내어 공부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신설동 보살님 집을 일주일에 2~3번을 오가며 우선 천자문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명심보감까지 가르쳤다. 한문 공부 시작할 때 아주 작고 간단한 옥편을 드렸는데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너덜너덜 떨어진 옥편을 한번 본 일이 있다.

이후로 내가 선방에 갈 때 공부를 그만두게 되었는데 신문의 한문은 다 읽고 경전도 한문이 섞여있는 해석된 글을 모두 읽었다. 뿐만 아니라 가끔 전화를 해서 어려운 한자를 묻기도 하였다.

본인이 “아니, 보살님께서 어떻게 그런 글자를 다 물으세요?”하면서 “다 이것이 누구 덕분인데요. 법장 스님 참말로 감사합니다. 나 같은 늙은이에게 눈을 뜨게 하여 사는 맛이 납니다” 하는 소리를 들은 지가 엊그제인데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세상을 뜨셨다는 소문을 들었다.

53세에 한문을 배워 30년 이상을 사용하고 몇 년 전 86세로 운명하셨다. 공부란 끝이 없지만 죽음의 순간까지 공부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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