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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서 밀라노까지 '종횡무진'…세계적 스타들과 어깨 나란히 수퍼모델 강승현

'꺽다리' 놀림 당하던 소녀, 세계적 수퍼모델 '우뚝'

모델·디자이너·사업가 강승현의 3색 라이프
뉴욕·런던·파리·밀라노 오가며 맹활약
블루밍데일 광고로 NYT 3개 면 장식
"영어는 마지막 조건…과감하게 도전하라"


지난달 24일 뉴욕타임스 메인(A) 섹션에 눈에 띄는 백화점 광고가 실렸다. 한 면의 절반을 차지한 블루밍데일 백화점 컬러 광고에 수퍼모델 강승현(24)씨가 등장한 것이다. 민소매 셔츠에 컬러풀한 진 팬츠 차림의 강씨가 주인공으로 나선 이 광고는 3개 면에 걸쳐 이어졌다. 올 여름 블루밍데일이 선택한 얼굴이 바로 모델계에서 ‘효니(Hyoni)’로 알려진 강씨였다.

강씨는 2008년 포드 세계수퍼모델 대회에서 50개 국 모델들을 제치고 아시안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대회 28년 사상 최초의 아시안 우승자였던 것. 효니는 수퍼모델 신디(크로포드), 나오미(캠벨), 지젤(분천)이 활동한 패션의 4대 도시 뉴욕·런던·파리·밀라노의 런웨이를 종횡무진 달려 왔다.

뉴욕패션위크의 마크제이콥스·필립림·DKNY 등 런웨이를 걷고, 라코스테·베네통·빅토리아시크릿 등 글로벌 광고에 등장했다. 최근엔 화장품 ‘로레알 파리’의 모델로 발탁된 강씨는 ‘모델 효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2009년 소호에 빈티지 의류를 재디자인해 판매하는 ‘리본 프로세스(Reborn Process)’를 오픈하며 디자이너 겸 사업가로도 지구촌을 누비고 있다.

모델-디자이너-사업가, 스물네살에 자신의 세가지 삶을 디자인하고 있는 강씨를 만났다.

빈티지의류 디자인과 사업도

-어떻게 ‘리본 프로세스’를 시작하게 됐나.

“포드모델 대회에 왔을 때 알게 된 스타일리스트 윤애리씨와 포토그래퍼·비디오그래퍼 이준엽(J)씨, 그리고 나 세 사람이 어느 날 의기투합해서 시작했다. 난 전부터 빈티지 룩을 좋아했다. 리본 프로세스는 빈티지 의류를 현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디자인해서 팔고 있다. 버튼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트리밍해 팔·등·컬러 등을 개조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지난해 9월엔 우리의 컬렉션도 내고, 대량 생산을 하고 있다. 앞으로 한 벌뿐인 옷(one of a kind), 우리의 컬렉션, 그리고 타 브랜드를 포괄하는 멀티 브랜드숍으로 만들고 싶다.”

-‘리본 프로세스’ 컬렉션은.

“지난해 워싱 느낌을 주는 프란넬을 소재로 한 체크 버튼다운 셔츠 12벌을 첫 컬렉션으로 선보인 후 미국·베를린·홍콩·일본, 그리고 한국의 신세계 블루핏과 갤러리아 스티븐 알란 등지에 나갔다. 첫 시즌부터 반응이 좋았다. 몇 벌을 파느냐보다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고객은 어떤 사람들인가.

“패션 피플이 찾아서 오는 스토어다. 가게를 오픈했을 때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느낌보다 패션 피플이 찾아서 오는 숨어 있는 플레이스의 느낌을 원했다. 실제 뉴요커들은 자신들만 아는 공간을 찾아 다니는 걸 좋아한다. 일본 톱 모델인 타오(오카모토), 중국 톱 모델인 리우 웬, 슈 페이, 그리고 재클린 자블론스키, 시리(톨레로드) 등 모델 친구들이 찾아오는 것도 늘 반가운 일이다. 타오는 ‘올 때마다 하나씩 구입하게 된다’며 투정 아닌 투정도 부린다. 한국에선 서인영·이연희·엄지원·한지혜·손담비·타이거 jk·윤미래 등이 다녀갔다.”

-왜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했나.

“지금 이 나이 아니면 못할 것 같았다. 모델의 수명은 길지 않다. 모델 친구들은 ‘빈티지 좋아하더니,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고 ‘열심히 하는 모습 보기 좋다’ ‘부럽다’고들 한다. 원래 꿈이 많았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되고 싶다는 것보다,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지금 모델 일을 통해 배운 것을 토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또, 새로운 것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다. 살면서 경험을 많이 하고 싶다. 사람들은 늘 ‘OO을 하기에 너무 늦었다’고 하는데 이해할 수 없다. 기회는 엄청나게 많이 온다. 무엇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놓치고 싶지 않다.”

키 컴플렉스에서 수퍼모델로

-어려서 모델이 꿈이었나.

“엄마 영향을 받았다. 키가 크고, 마르고, 예쁘고, 옷도 세련되게 입으신다. 가정주부셨지만, ‘보그’지 구독자셔서 난 중학교 때 ‘보그 걸’을 정기구독하며 남들보다 빨리 접했다. 김동수 선생님 책을 읽고 동덕여대에 모델학과에 대해서 알게된 후 들어갔다.”

-어려서 키 때문에 놀림 당했나.

“내 키(5ft 10”, 178cm)는 컴플렉스였다. 지금보다 더 말랐고, 구부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자 아이들이 내가 커서 ‘젓가락’ ‘꺽다리’ 등으로 놀려대지 않았나 싶다. 고등학교 때 반에서 이름으로는 1번, 키로는 마지막 번호었다. 한국에선 키가 커서, 뭘 하나 잘못해도 두드러져 보였다. 한국에선 ‘말라 비틀어졌다’고 하지 않나. 지금은 내 직업으로 과거의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게 됐다. 키에 대한 컴플렉스가 모델 일을 시작하면서 가장 큰 장점이 됐다.”

-아시아 출신으로는 최초의 포드모델 우승자였다. 왜 ‘강승현’이었을까.

“합숙하면서 세계 50개 국에서 온 모델들과 잘 사귀었다. 영어도 못하는데, 세계대회에 와서 1주일간 중국 모델과 같은 방에 배정이 됐다. 우리끼리만 있으면,'동양 애들이라 저런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중국 모델에게 말했다. ‘우리 여기서 즐겨보자’고. 세계 각국 모델들과 잘 사귀었고, 난 한국의 이미지라도 잘 심고 돌아가고 싶었다. 우승한 후 포드 측으로부터 들으니 나의 ‘캐릭터(성격)’가 맞았다고들 하더라.”

-모델계에서 ‘효니’의 이미지는 베이비 페이스인 것 같다.

“예전엔 사실 아시아계 모델에 불과했지만, 효니라는 ‘Young하고, 밝고, 건강한 캐릭터’를 잘 지켜나가고 싶다.”

최근 중국계를 비롯한 아시아계 모델 광풍이 불고 있다.

“몇 년 전 보그지 아시아판에서 아시안 모델 8명을 '팡!' 터트렸다. 그 후로 아메리칸 보그, 중국판 보그지, WWD(※여성패션신문) 커버 등에서 아시아계 모델 특집을 하면서 붐이 일었다. 중국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디자이너들이 많고, 그 시장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도 어떤 캐스팅에 갔다가 ‘어느 나라 출신이냐’ 물어서 ‘한국’이라 했더니 안된 적이 있다. 기왕이면 중국 모델을 쓸 테니까.”

“내가 돌아갈 곳은 한국”

-뉴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지난해 겨울 타임스스퀘어 ‘아메리칸 이글 아웃피터스’ 빌보드에 내 사진이 걸렸을 때다. 모델 대회에 참가하러 뉴욕에 처음 와서 1주일 합숙할 때 이틀 동안 뉴욕을 관광했는데, 제일 처음 간 곳이 타임스스퀘어였다. 처음 와서 가장 두근거렸던 장소에 내 사진이 걸려 있었다. 오빠와 함께 보러 갔는데, 그 동안의 뉴욕 생활이 스쳐 지나가며 느낌이 각별했다.”

-힘들었던 때는.

“모든 모델이 힘들다. 정말 외로울 수밖에 없는 직업이다. 정처가 없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다.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왜 내가 이렇게 살고 있나’하고 회의가 드는 순간이 있다. 모델은 어린 나이에 시작하기 때문에 정체성을 잃기 쉽다. 외국 모델 중에서는 14살에 와서 쇼하고, 너무 좋다가도 외로워져 마약하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얼마나 잘 이겨내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힘든 것을 남에게 잘 말하지 않는다. 내 자신에게 물어보고 대답하는 성격이다. 혼자 공원 가서 보내는 시간도 많다.”

-다이어트도 하나.

“한식을 좋아해서 집에 밥통도 있다. 기본적으로 하루 4끼를 먹는데, 조금씩 자주 먹는 편이다. 한식은 많이 먹어도 살이 잘 안찌는 것 같다. 거의 매일 일하고 활동량이 많다. 집에 가만히 있는 걸 안 좋아해서 많이 돌아다닌다. 하지만, 체중이 늘면 다이어트도 한다.”

-요리를 하나.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 기본적인 것은 할줄 안다. 월남 쌈, 랍스터도 사다 해먹는다. 엄마가 오시면 뼛국을 끓어서 30개 정도 냉동해놓고 가시면, 매일 하나씩 꺼내 먹는다. 내 속 자체가 하루에 한 번 한식을 먹어야 한다. 외국 나갈 때 햇반이나 3분 요리를 갖고 가서 호텔 룸서비스를 부탁해 해먹는다.”

-계획은.

“이제까지 쉼 없이 달려왔다. 매 시즌마다 수많은 새 모델들이 나오고 사라지는 패션계이기 때문에 상당히 치열하게 살아온 것 같다. 앞으로는 여유를 갖고 내가 그 동안 만들어 온 모델로서 나만의 이미지로 다른 모델들과 차별화해 조금 더 한국 모델의 위상을 알리고 싶다. 그리고, 나중에 한국에 돌아갈 것이다. 내 수많은 꿈 중 하나가 여기서 경험을 통해서 한국의 모델들이 진출하게 도와 주는 것이다. 돌아가서 나중에 대학교도 졸업할 예정이다. 뉴욕이 싫은 것은 아니다. 한국은 내가 스물한살 때까지 산 곳이며 내가 돌아갈 곳이다. 외국에서 일하는 것은 좋지만, 이 경험을 토대로 한국에서 터전을 잡고 싶다.”

-세계적인 모델을 꿈꾸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영어가 큰 장벽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언어는 마지막 조건이다. 중국 모델들의 도전 정신은 놀랍다. 영어 한마디 못해도, 키가 크지 않아도 그들은 정말 당당하다. 과감하게 도전하라.”

박숙희 문화전문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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