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산화한 젊은이들의 핏빛 애국
권소희/소설가
사랑과 전쟁은 이미 수많은 작가들이 다루어왔음에도 그 감동은 늘 새롭다. 감동을 주는 면에서 소재의 공통점이 있지만 그 배후에 깔린 의식은 전혀 다르다. 사랑이 사람들의 갈망이라면 전쟁은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기 위해 작가들이 의도적으로 접근하는 소재다.
사랑 중에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건 아무래도 남녀 간의 사랑일 것이다. 비극이든 희극이든 연인 간의 사랑은 누구에게나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이기적인 열정이라는 점에서는 전쟁을 소재로 다룬 것보다는 한 수 아래다.
전쟁에서 보여준 사랑은 이타적이면서 모든 이에게 포괄적이다. 뭔가를 쟁취하기보다는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하기에 존경심마저 갖게 한다.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 '디어 헌터'는 오래전에 나온 영화임에도 볼 때마다 생각을 되짚게 만든다. 펜실베이니아 철공소에서 일하던 동네 친구 닉과 스티브 그리고 마이클은 베트남전에 참전하게 된다. 베트콩이 '러시안 룰렛' 게임으로 포로를 한 사람씩 쏴 죽일 때 극도의 공포를 경험했던 닉은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자신을 찾아온 마이크 앞에서 자기 머리에 총구를 겨누다 그만 세상을 달리하고 만다. 'God Bless America'를 합창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감정이 복잡해지고 미묘하다 못해 경건함까지 밀려든다.
그 영화가 내게 단순하지 않은 건 그들은 러시아 부근에서 온 이민자들이기 때문이다. 영화에 설정된 인물이 전부 백인으로 이루어졌다면 그 영화를 볼 때마다 고민도 갈등도 없었을 것이다. 이민자로 미국에서 살아보니 그 영화의 배경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감독은 이민자들에게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심어주고 싶었던 건가?
한국전쟁 때 3년 동안 죽어갔던 미군의 숫자가 5만4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라크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전사한 한인 미군도 20여명이라고 하는데 살아남은 군인에게도 전쟁의 상처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직업이라 해도 사람은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지는 않는다. 미국이 이익 때문에 전쟁을 일으킨다고 해도 군인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면 참전은 불가능할 것이다.
죽는 줄 알면서도 군인을 직업으로 택하는 젊은이들. 세계 평화는 자신의 일이라는 마음의 선택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살아가는데 자유가 절대적이라면 전쟁 또한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들이 고맙고 감사하다.
너무도 화창하게 6월이 시작되고 있다. 전쟁터에서 산화한 젊은이들의 넋 때문일까. 길을 걷다 활짝 핀 붉은 장미꽃을 바라다본다. 어느 땅에 스며들었을 전사자의 핏빛도 저렇게 붉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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