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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현의 시가 있는 벤치] 열아홉의 비망록 - 이대흠

임창현/시인·문학평론가

몰래 마신 소주처럼 시간은 흘러갔다 무엇이든 하고 싶었으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나는 담 너머의 매화 꽃봉오리가 터지는 순간을 기다렸다
기대할 수 없는 내일만 많았던 겨울, 눈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 쌓였고
눈 덮인 산을 보면서 나는 차라리, 라는 말만 반복했다
해바라기야 해를 따라가라 달맞이꽃은 저 달을 품으렴
슬픔이 직업인 나는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갈 것이다
의지는 이치에 대한 배반이고 나의 좌절은 나를 치유하지 못할 것이다
꽃씨는 인과에 떨어지지 않고 늦은 밤에 나는 나의 성기에서 신을 죽였다


어딘들 꽃피우지 못하랴 허방이라도 땅을 삼을 것이니
속된 자여 네가 먼저 웃으리라
겨울은 길었고 삼월이 되어도 유월이 되어도 눈이 내렸다 나를 배반하는 게
쉽지 않아서 나는 머뭇거렸다 내 몸에서 끊어낸 살점을 징검돌로
삼을 수 있다면, 나는 죽음으로 건너려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꽃이여
모든 꽃이 울음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나에게 꽃잎의 향기 따위를
늙은이의 목젖에 붙은 햇살 같은 것이니, 나를 도려내 너를 심을 수 없으니,
나는 가는 것이다 보이는 것이 안개뿐인 세상으로 나를 던져
버리는 것이다. 꽃을


우리들의 틴은 그런 세월였던가? 기대할 수 없는 내일만 많았던. 그때는 야망도 터무니없었지만 슬픔도 직업인 때였다. 성기에서 신을 죽였던 잠 못 들던 밤들. 그리고 꽃을 울음이라고 알아버린, 그래서 꽃도 던져버렸던 날들, 열아홉의 비망.

웃으려고 사는 일보다 웃을 줄 잘 모르고 살던, 알아도 자꾸 잊어버리고 싶었던 시간들, 그래서 차라리 슬픈 쪽이 마음 더 편해지는, 그들이 열아홉 청춘이요 시인이었던가. 잠시라도 기쁘고 나면 그 기쁨 뉘에겐가 미안해서, 금세 다시 외로워지는. 그들이 건너온 열아홉 저 언덕, 아팠던 고개였구나.

꿈보다 고뇌 더 무거웠던 기차였구나. 지금 이순에 이른 시인의 열아홉의 비망, 오늘 열아홉 젊음들은 어떤 비망 적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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