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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마당] 15분과 45분 사이에서 생각하다

박유선/월간 '수필문학' 등단

"아이고 5분 일찍 왔네." 아들 집에 닿자 내가 그러니까 그이도 "정말 그러네"한다. 5분을 어쩐다? 구시렁거리다 동네구경을 나섰다. 우린 우스갯소리 삼아 막내아들을 짠돌이라 부른다. 물론 그렇다고 진짜 짠돌인 아니다. 아들은 그렇듯 낭비없는 인생을 계획 실천한다. 첫째 경제관념도 정확하고 알뜰해 결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현대엔 시간이 제일 소중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를 초대해도 언제나 15분 아니면 45분으로 정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건 우리를 초대할 때만이 아니라 우리 집에 올 때도 대충 몇 시쯤이라고 어름하는 법이 없다. 모든 일에 있어서 '중용의 도'를 잘 지키는 것 같다. 결코 기분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리라.

나는 대수롭잖은 그 일을 좀 생각해봤다. 어째서 항상 15분 아니면 45분인가? 그러다 내 안에서 공명이 울려 나왔다. 그건 무척 바쁜 아들의 시간관리 방식내지는 지혜라는 걸. 한시간을 사등분 해보면 15분 30분 45분 이런 식이니까. 며칠 전 우리를 초대하며 '30분'하더니 '45분'으로 정정한다. 우리는 웃으며 그 시간에 맞춰서 갔다.

그런데 그들은 그 시간에 샤워를 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그린 레이크에서 둘이 뛰고 자전거를 타느라 시간이 모자랐단다. 아들이 정하는 시간을 조금은 못마땅해 하는 그이가 그로써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시간을 나눠 쓰면 더 절약이 된다는 걸 일찍 터득한 아들의 생활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나 역시 시간을 칼같이 지키려고 노력한다.



지난 어느날 아들이 들려준 의미있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외할아버지가 저 어릴 때 "시간은 인간이 쓰는 것 중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라고 했단다. "당신은 인생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라. 인생은 시간으로 되어있다." 프랭클린 대통령의 명언까지 들려줘 깊이 각인돼 그때부터 지금껏 생활습관이 됐단다.

아들의 시간관리 맥락처럼 나도 젊은 시절 알뜰 살림의 일환으로 생활비를 항목별 봉투에 따로따로 넣고 썼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돈이 그 돈이련만 그리해 놓고 써보니 정말 더 절약이 되었다. 남는 돈은 은행에 적금 넣으며 알뜰히 살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마음을 정리해가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런 연유로 우린 5분 빨라도 안 된다고 농을 하는 것이리라. 한데 시간뿐 아니라 그 이외 모든 게 아들과 난 서로 닮은꼴이다. 언젠가 올케가 "형님은 아낄 땐 1전도 아끼면서 큰돈 쓸 때는 크게 쓰세요"하던 생각이 난다. 선물도 상대가 부담 느끼지 않을 선에서 정하느라 항상 신경 쓴다. 만약 상대가 받아서 부담을 느낀다면 그건 선물이 아닌 뇌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받기보단 나누기를 즐기는 편이지만 그게 두고두고 속 편한 경험을 어디 한두 번했던가.

대기업에서 다니는 아들은 온 세계를 품에 안고 너무 바쁘게 날아다닌다. 유럽을 제집 드나들 듯하며 출장이 잦으니 말이다. 며느리 역시 회사에 다니다 보니 정신이 없다. 일과 후에도 운동 취미 모임 마라톤 주말엔 둘이 '사랑의 집짓기' 봉사로 팔을 걷어붙이고 집 지으러 다닌다. 그런가 하면 요즘 아들은 에코운동에 푹 빠져 자전거로 출퇴근을 한대서 나를 걱정시킨다. 이젠 아예 시애틀에서 포틀랜드까지 자전거로 달리는 행사에도 참여한단다.

그렇게 바쁘게 지내면서도 둘이서 여행은 꼭 다닌다. 해외로 또는 국내로 여러 곳을 다니는 것을 보면 저 아이들은 정말 열심히 일하더니 인생을 제대로 즐기는구나 싶다. 물론 이민 1세대가 고생해 다진 발판 위에서 저희들 또한 열심히 노력해 얻은 보람이리라.

주말이면 우리를 꼭 찾아오는 아이들은 때론 시간이 모자라 머리도 젖은 채 올 때가 많다. 그런가 하면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아기가 없다. 처음엔 그 이유를 "집이 작아서"라고 했다. 아들이 새로 3층 집을 짓겠다더니 언제 집을 짓고 아기를 가질까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 집을 세놓고 큰 집을 사서 이사를 했다. 나는 속으로 "옳지 그러면 그렇겠지" 싶었다. 그런데 큰 집으로 이사를 하고도 아직 무소식이다.

다시 그이가 물으니 '바빠서'라는 간단 명료한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슬며시 어느 엄마가 했다는 말이 떠올라 미소를 짓고 말았다. 어떤 엄마가 아들에게 "왜 너희는 아직 아기가 없느냐"고 물었단다. 그 아들 역시 '바빠서'라고 하더란다. 그때 엄마 왈 "얘야 그거 3분이면 돼. 딱 3분"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웃었던지 다시 떠올라 또 웃음이 난다.

시간을 사등분해서 쓰는 계획적인 아들을 녹슨 내 머리로 어찌 따라 잡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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