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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완섭 칼럼] 임재범의 눈물

광고본부장

짧은 머리에 허스키한 목소리, 절규하는 창법. 가수 임재범은 야생마다.

율동으로, 몸짓으로 노래하는 가수가 아니라 가슴으로 노래하는 가수다. 그가 대한민국을 울리고 있다.

투병중인 아내를 생각하며 ‘독종’을 부르던 그가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청중들도 울고, 시청자들도 울었다.

‘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그는 또 한 번 청중들을 울렸다. 윤복희 노래 ‘여러분’ 을 마무리하며 청중들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숨죽이며 듣던 시청자들은 눈물로,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진행자도, 동료 가수들도 넋을 잃었다. 그건 감동을 넘어선 일종의 충격이었다.

지금 한국은 임재범 신드롬에 휩싸여 있다. 그의 동영상 조회 건수는 단숨에 1000만 건을 넘어섰다.

그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가슴이 먹먹하다’ ‘많이 울었다’ ‘행복했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진정한 가수다’ ‘너만 가수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사람들은 왜 임재범에 열광하는가. 간단하다. 가수다운 가수, 감동을 준 가수이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10여 년이 넘게 가요계에는 가수다운 가수가 없었다. 요컨대, 노래로 승부하는 가수가 별로 없었다. 현란한 율동과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가사, 번쩍이는 조명으로 청중들을 뒤흔들어 놓는 가수와 노래들은 많았지만 마음에 와 닿는 노래는 듣기 어려웠다.

최근 10여 년간 한국 가요계는 힙합의 시대였다. 미국 흑인 청소년들의 뒷골목 문화의 상징인 힙합이 쓰나미처럼 한국을 휩쓸었다. 젊은 가수들은 너나 없이 힙합을 불러댔고, 시청률 높이기에 혈안이 된 방송사들은 쇼 프로그램 단골손님으로 10대 힙합 가수들을 내보냈다.

게다가 기업형 매니지먼트 회사들이 이에 가세, 걸그룹·보이그룹을 양성해 내면서 가요계는 현란한 율동에 점령당했다. 발라드나 록 음악은 밤무대로 밀려났다.

그 결과 40~50대 음악애호가들은 대중가요시장에서 철저하게 소외됐다. TV를 켜거나 라디오를 켜면 혼을 쏙 빼놓는 10대들의 힙합 송을 귀가 따갑게 들어야 했다. 빠른 스피드로 읊조려대는 가사 내용도 알아듣기 어렵지만 알아본들 아무런 감동이 없는 가사, 뜻 모를 영어 가사들이 판을 쳤다. 가수 이은미 말대로 ‘박수는 있어도 감동이 없는’ 세대가 가요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고로 대중가요란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마음을 파고들어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는 법. 가수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부르는 이 따로, 듣는 이 따로 식이면 가요로서의 기능을 포기한 것이나 진배없다. 특히 작곡자와 작사자, 가수 등 가요 공급자들이 팬들과 더 멀어진 것은 대중가요의 정체성 상실에 있다. 예컨대, 우리말로 노래하다 느닷없이 ‘오 마이 베이비’ 하고 흐느끼거나 ‘오, 예’ ‘아이 러브 유’ 하고 토막 영어로 외쳐대는 정체불명의 가요들을 마구 생산해 낸 것이 공급자와 수요자를 유리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름조차 영어로 짓는 정체불명의 가수들. 그리고 국적불명의 노래가 판을 치는 현실. 그 속에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어느 날 임재범 노래를 듣고 깨달은 것이다. 그 동안 듣고 싶은 노래를 들어온 것이 아니라 팔리는 음악을 강요당한 것이라는 사실을.

임재범은 김현식의 애절함과 JK김동욱의 허스키한 목소리, 언더그라운드 가수 김재성의 바리톤 저음을 두루 갖춘 가수다.

득음의 경지에 이른 그의 소리에 사람들은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오랫동안 참아 왔던 갈등이 확 풀어지는, 해우(解憂)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법하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노래보다 더 깊고 애절한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애환, 삶의 진정성에 더 감동하고 있다. 노래에서 뚝뚝 묻어나는 혹독한 소외감과 외로움, 병마에 시달리는 아내를 향한 자책감 같은 것들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동병상련의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것이리라.

포효하는 ‘호랑이’ 임재범은 꽃미남, 꽃미녀 가수들이 판치는 한국 가요계에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그의 등장으로 ‘가수는 노래로 승부해야 한다’는 명제를 한국 가요계는 다시 떠안게 됐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진정성이라는 평범한 진실을 우리는 그의 부활을 통해 새삼 깨달았다.

절규에 가까운 쉰 목소리, 투병중인 아내를 생각하며 흘리던 임재범의 눈물이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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