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입양 한인들의 '빛과 그림자'] 노숙자로 떠돌이 쌍둥이 자매 "부모 계신 한국에 보내주세요"
한 해 1000명이 넘는 한국 아이들이 미국으로 입양됐다. 미국 가정에 입양돼 자라면서 정체성에 번민하고 또 한 번 버림받는 아이들도 늘었다. 2007년부터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벗고자 한국은 해외 입양아동 수를 제한하는 쿼터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번에는 쿼터제로 입양이 막힌 한인 부모의 마음이 타들어갔다. 해외 입양과 관련한 '빛과 그림자'를 조명해본다.자매는 집이 없다. 스스로 미국인이란 사실도 잊었다. 그저 기억에도 없는 부모를 찾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뿐이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던 지난 12일 오후. 워싱턴 DC 영사관 건물 옆 풀숲에서 민미경.미영 자매를 만났다. 첫 마디는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그 다음은 영어로 "우리는 한국 사람이다. 한국에 가고 싶다"였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질끈 묶은 긴 머리 앳된 얼굴이 학생 같기만 한데 행색은 초라했다. 겹겹이 덧입은 옷에는 더러움이 잔뜩 묻어있었다. 이들 자매는 노숙자다.
미경은 "우리는 한국 사람인데 한국에 안 보내준다. 비행기 표도 살 수 없다. 한국에 가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미영 역시 같은 말만 반복했다. 누군가 한국의 부모에게서 자신들을 떼어내 미국에 데려왔다고 했다. 미영은 "우린 한국 사람이라 무시를 많이 받았다. 백인 흑인들이 우릴 놀렸다. 이젠 갈데도 없다"고 말했다.
언제부터 노숙자 생활을 했는지 부모는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대화를 시도했지만 같은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고, 주변을 경계하는지 계속해서 두리번 거렸다. “경찰이 우리를 때렸다. 중국 식당 직원들이 우리가 모아둔 돈을 훔쳤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영어를 구사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고, 한국말은 간단한 인삿말과 ‘밥, 김치, 한국’ 정도만 아는 수준이었다.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영사관을 찾아 들어갔다. 직원들 역시 이들 자매에 대해 알고 있었다.
강필호 영사에 따르면 이들 자매는 1981년생 쌍둥이로 1987년께 미국에 입양됐다. 네바다의 서로 다른 두 가정에 입양됐으나 언제인지 가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자매가 워싱턴 DC에 나타난 것은 올해 1월. 한참 춥던 어느날 밤 9시 누군가 자매를 영사관 앞에 데려다 준 것이다. 강 영사는 “그때부터 이들 자매를 돕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고, 한국의 동방사회복지관에도 연락을 해봤다”며 자매에 대한 기록이 담긴 서류철을 내보였다.
그는 “문제는 자매가 시민권자라 한국 정부가 여권을 발급할 수 없는 상황인데다, 친가족을 찾으려면 본인이 신청해야 한다는 점”이라며 “셸터(보호소)는 절대 가기 싫어 하고, 가끔 영사관 민원실에 들어와서 ‘(돈 벌게) 일을 시켜달라. 하룻밤 재워달라. 여권 만들어달라. 비행기 표를 달라’는 등의 난동을 부리기도 해 곤란할 때도 많다”고 말했다.
영사관을 나오자 밖에는 아직도 자매가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얼마 전부터 자신들을 도와준 사랑나눔센터의 장두영 목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들은 장 목사가 사들고 온 김치 한 봉지와 흰 밥을 받아들고는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그러더니 말없이 허겁지겁 밥과 김치를 먹기 시작했다. “맛있냐”고 물으니 “김치는 정말 오랜만이다. 너무 맛있다”고 답했다. 허기가 가시자 또 다시 “우리가 왜 여기에 왔는지 모르겠다. 부모님을 만나러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장 목사는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정신상담센터 같은 곳에도 들어갔다가 도망쳐 나온 것 같다. 한국에 보내도 부모를 찾을 수나 있을지, 만나도 제대로 생활은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밤에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머물 곳이라도 구해줘야 할 텐데…”라며 말을 흐렸다.
길 위에서 위태로운 하루 하루를 버티는 한국인 자매. 이들의 “다음에 또 올거냐”는 말이 자꾸 발길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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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림 기자 ysl1120@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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