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론] 미국 상원이 주는 교훈
이길주/버겐커뮤니티칼리지 교수
하지만 이 빛나는 민주사회의 청사진에 아주 고약한 비민주적 독소조항이 심겨져 있다. 바로 연방 상원(Senate)이다. 미국의 헌법을 제정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한 가지 심각한 아이러니를 해결해야 했다.
이들은 물론 민주사회를 원했다. 그러나 민중은 신뢰하지 않았다. 결론은 민중(유권자)의 요구는 지역의원(하원)들이 대변케 하고, 상원은 지역적 이해관계와 득실계산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미국의 장래를 구상토록 하는 이중구조를 만들었다.
그리고 상원의 역할을 보장하기 위해 비민주적 장치를 고안했다. 먼저 각 주는 2명의 상원의원을 워싱턴으로 보낸다. 이들은 1913년까지 유권자가 직접투표로 선출하지 않았다. 주 의회가 연방 상원을 선출했다.
또 상원은 임기가 6년이다. 재선에 대해 덜 민감하다. 상원의 힘은 막강하다. 연방정부의 주요 공직은 상원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이 상원의 이 전통을 가장 잘 대변했다. 케네디는 메사추세츠 출신이지만 그 지역 이익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의 영향력 덕분에 메사추세츠로 국가 기관이 옮겨가고 공항, 역사가 만들어졌다는 기록은 없다.
그는 미국사회 전체의 약자들을 대변했다. 저소득층, 이민자, 여성, 아동, 노년층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그래서 그는 '상원의 사자 (Lion of the Senate)'로 불린 것이다.
상원의 중요성은 상원의원 경력을 가진 대통령의 숫자에서도 나타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해 43명의 미국 대통령 중 16명이 한때 상원의원이었다. 전후 만 따지면 12명의 대통령 중 상원출신이 5명이나 된다.
미 상원은 상징 인장까지도 독특하다. 대통령을 포함해 미국의 국가 기관의 상징은 날개를 활짝 편 독수리가 오른발에는 올리브 가지를, 왼발에는 화살을 움켜지고 있는 모습이다. 평화를 원하지만 전쟁을 피하지 않는다는 의지의 상징이다.
하지만 상원 인장의 중심에는 미국 국기 무늬의 방패가 있다. 그 양 옆으로 올리브 가지와 참나무(Oak) 줄기가 둘러싸고 있다. 상원은 이익집단의 요구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으로 평화를 유지하고 나라를 지킨다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상원은 정치적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큰 정책적 그림을 그리는 곳이다.
상원이 제 구실을 못해 미국의 시련에 빠진 예는 많다. 베트남 전쟁이 그랬다. 1964년 8월 2월 존슨 대통령은 인도차이나의 통킹만(灣)에서 북베트남의 어뢰정들이 미 해군함정을 공격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이틀 뒤엔 또 다른 공격이 보고됐다. 정확한 사실 파악이 안 됐지만 존슨은 전쟁수행에 관한 의회의 그야말로 '백지수표'를 요구했다. 8월 7일. 사건 발생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의회는 통킹만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애국심으로 들끓는 지역 민심을 의식한 하원의원 전원이 찬성한 것은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상원이 심도 있는 토의를 포기하고 단 2명의 반대표로 통과 시킨 것은 오점이었다.
상원에서 더 많은 반대표가 나왔으면 존슨과 닉슨의 안하무인격 확전은 막을 수도 있었다는 분석은 설득력이 있다. 그 후 11년을 끈 베트남 전쟁이 남긴 정치, 경제, 정신적 후유증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지금 한국에서는 '지역 숙원사업'이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자 해당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다. 분노한 지역 '민의'를 전달키 위해 삭발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역정서를 극복하고 나라 전체의 장기적 이익을 생각하는 상원을 고안한 '건국의 아버지'들이 슬기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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