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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에서] 책임감

김세환 목사/LA연합감리교회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합니다. 못난 사람은 못난 사람대로 그리고 잘난 사람은 잘난 사람대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핑계와 변명'을 입에 달고 살아갑니다.

잘못된 행동이나 결과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의 책임 밖의 영역 언저리에 분명하게 금을 긋고 습관적인 '무죄선언'을 반복합니다.

항상 자신에게 부여할 '면죄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옛말에 "잘되면 자기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처럼 사람은 철저하게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입니다.

자기를 되돌아보고 반추하기 보다는 먼저 남을 탓하고 비난합니다. '팔자타령'이나 '애매한 운명론'은 자신의 실수와 과오를 벗어나려고 하는 대표적인 책임 회피의 모습입니다.



최첨단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도 자신의 결함과 오류를 유전자(DNA)의 탓으로 돌립니다. 소위 '못된 유전자'때문에 자신의 현재 모습이 산출되었다고 넋두리 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결단의 부족을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인 결함으로 돌리려는 교묘한 술수입니다. 사람을 죽이고 사기를 치고 강도 짓을 하고 심지어는 강간 행위를 한 것도 자신의 죄악된 모습에서 문제를 찾기보다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나쁜 유전자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합니다.

요즘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사람이 게으른 것도 불평 분만을 하는 것도 그리고 화를 잘 내는 것도 부모에게서 물려 받은 유전자의 결함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마치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었기 때문에 자식들의 이가 시게 되었다"(예레미야 31: 29)고 말하는 무책임한 구약 백성들의 모습을 반복하는 행위입니다. 자기 합리화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예수님에게도 책임 회피를 위한 치명적인 유혹의 순간이 있었음을 성경은 말해 줍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그냥 지나가게 하옵소서!" (마태 26:39) 십자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예수님의 두려움이 한껏 베어 있는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입니다.

예수님도 다른 핑계거리를 대며 그 '죽음의 그늘'을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유전자는 남 다르고 독특해서 쉽게 고난의 잔을 마신 것이 아닙니다.

또 그것이 당신의 운명이었기 때문에 포기하는 마음으로 순순히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힘든 결단과 영적인 싸움의 결과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의 수동적인 운명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아니라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하겠다"는 그 분의 '능동적인 결단'이 만들어낸 구원의 역사입니다.

모든 인류의 죄를 당신의 죄로 끌어 안고 십자가를 통해 '사망'을 '생명'으로 바꾸려 하신 위대한 결단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십자가는 처절하리만큼 아름다운 것입니다. 주어진 인생을 책임 있게 사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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